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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Mar 04. 2024

20. 눈물 젖은 빵

<행복의 조건>

20. 눈물 젖은 빵

배정환


[은지 이야기]


프랜차이즈라고 해서 다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를 끼고 있고, 공단이 가까워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빵이 잘 나갈 거란 예측이 빗나갔다. 그들은 바빠서 주말에 주로 마트를 이용한다고 들었다. 마트에서 빵을 더 저렴하게 파는데 굳이 은지 가게를 들르기 위해 시간 낼 필요가 없었다. 9시에 영업종료하려 했지만, 가게를 닫을 수 없었다. 만들어 놓은 빵이 다 나가지 않아 아르바이트생을 다 퇴근시키고 혼자 남아 고객을 기다렸다. 


절치부심 끝에 9시 넘어 들어오는 고객에게는 50% 할인을 해주기로 했다. 오늘 다 처리하지 못하면 폐기해야 했다. 폐기보다는 원가라도 건지는 게 나았다. 피 같은 돈인데 내다 버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소비자 손에 들려 보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리를 지켰다. 본사에서 반값으로 팔면 주변 영업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30% 선으로 맞추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프랜차이즈가 원망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빵을 적게 만들어 내놓았더니 8시만 되어도 매대에 빵이 비어 보였다. 살만한 빵이 없다며 돌아서는 손님을 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열심히 팔아도 인건비 빼고, 재료비, 가맹비 빼고 나면 사장 인건비 정도만 남는 게 현실이었다. 


은지는 지역 불우이웃 돕는 단체에 전화를 돌렸다.

"혹시 팔고 남은 빵을 기부하고 싶은데요. 오늘 가져갈 수 있으세요?"

빵집을 오픈한 동료들이 알려준 대로 재고로 남은 빵을 처리하기로 했다.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몇 시에 가져가면 되나요?"

사무적으로 대답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당황했다. 도움을 주는 건 난데 마치 자기들이 도와주는 것 같은 이 말투는 뭐지? 

"9시 30분이면 좋겠습니다. 가게 문도 닫아야 해서요."

"네. 그 시간에 맞춰 보내주신 주소로 방문하겠습니다."


매일 9:30이면 장바구니 가득한 빵이 불우이웃 돕기란 거창한 이름으로 기부되었다. 좋은 일을 하는 거라 자신을 설득해도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아파트 이웃들에게 선물할 빵을 조금 남기고 박스에 기부할 빵을 채웠다. 문을 닫으려는데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는 젊은 30대 중반 사장이 들어왔다.

"애고 늦었네요. 우리 딸 빵 사다 주기로 했는데요. 빵이 없네요."

"아.. 이거 집에 가져가려고 한 건데 사장님 그냥 가져가서 드세요."

은지는 여유 빵을 봉지에 넣어 핸드폰 사장에게 내밀었다.

“사장님… 자꾸 빵을 무료로 주지 마세요. 그럼 재고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냥 다 기부하세요. 그게 차라리 나아요. 우리도 할인에 익숙해진 손님 때문에 제값 받으면 도둑놈 취급받거든요.”

"그러네요. 핸드폰은 제값 주는 거 못 봤어요."

"그냥 얼마나 싸게 주느냐가 일상입니다."


핸드폰 가게에 들어오면 일단 묻는 것은 두 가지라 했다. 잘 나가는 핸드폰 추천해 주세요. 얼마나 싸게 줄 수 있어요? 필름을 서비스로 붙여주고, 케이스를 주는 것으로는 고객의 마음을 사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은지가 보기에는 아르바이트라도 없으니 혼자 벌기에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제빵사와 홀에 최소한 두 명이 있어야 돌아가는 시스템이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그나마 얼마 전에 생겼던 카스테라 전문점이 문을 닫아 다행이다. 바로 길 건너에 생긴 대만인지 뭔지 카스테라를 대빵 크게 만들어 파는 통에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TV에서 카스테라에 식용유 사용량이 너무 많다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소비자는 눈을 돌렸다. 마침 계란 값도 올라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소비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으니, 어찌 그리 TV에 좌지우지되는지 모르겠다. 은지는 몸조심, 말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계기였다.


자영업을 시작하면 남들과 경쟁이 없을 줄 알았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비슷한 업종 하나가 가게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자, 예민해졌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회사나 자영업이나 마찬가지였다. 핸드폰 가게 사장도 카스테라를 거기서 많이 구매하곤 했는데, 이제는 은지네 빵을 구입하고 있다. 다른 경쟁 업체가 생기면 그의 마음이 다시 어떻게 될지 몰랐다. 고객의 마음 닿는 대로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다른 운영을 생각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어서 답답하던 차였다. 


돈 안 받으려고 카드 단말기가 꺼졌다고 했더니 현금을 내밀고 나갔다.


한 달 정산을 하고 보니 오히려 가게세를 낼 돈이 부족했다. 도대체 한 달 동안 뭘 했단 말인가? 가게 오픈하고 일 년은 그렇게 잘 되던 것처럼 보였는데, 대형 마트가 들어서며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일 만들어파는 베이커리 특성상 타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조금씩 매출이 떨어지더니 드디어 가게 임대료를 걱정하게 되었다. 


퇴근하는 길에 아파트 입구에서 수민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이제 퇴근하세요. 늦네요."

"네. 정리할게 많아서요. 참! 이거 드세요."

은지는 집으로 가져가려고 챙긴 빵 봉지를 건넸다. 어차피 집에는 어제 가져간 빵도 그대로 있으니 음식물 쓰레기가 될지도 몰랐다. 

"고마워요. 그런데 수민 엄마 이거 눈물 젖은 빵 아니에요?"

"네. 제 피눈물입니다." 울컥하는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파트 현관으로 향하는데 울음이 쏟아졌다. 가게가 잘 안 된다는 소문까지 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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