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에 읽었던 다양한 책

by 행동하는독서


대학은 꿈꾸던 것처럼 낭만이 넘쳐나는 곳만은 아니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데모의 연속이었고 교내는 최루탄이 흩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조 때문에 교문을 사이에 두고 전투경찰과 대치했던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교문에 모였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까지 했는지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친구들과 대학교 전교조 모임에 동참했다가 정학을 당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몇몇 친구는 실제로 정학을 당했습니다. 반말 심리로 삭발을 했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옳고 옳지 않고를 떠나서 그때는 그런 열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읽었던 책 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었습니다. 이 책 정도는 읽어줘야 사회문제를 고민할 자격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과 독서 소모임에 신청하고 나니 선배들이 읽으라고 던져준 책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습니다. 전철에서 읽고 또 읽으며 뭔가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회문제를 다루던 책을 추천받아 읽었습니다. 그래서 오래가지 못하고 탈퇴했습니다. 기타를 잡으면 <광야에서> 정도는 불러줘야 하는 시대, 운동권 노래를 즐겨 불렀던 시대, 그런 시대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예술분과 동아리로 알아보다 클래식 기타 동아리를 만났습니다. 마침 같은 기계과 동기도 같이 신청을 했기에 둘이서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운동권 노래에서 벗어나 클래식이나 뉴에이지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동아리를 통해 접한 책은 <카르카시 기타 교본>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 책도 지금은 목사를 하고 있던 고등학교 친구가 빌려 간 후 돌려받지 못했네요.


당시에는 어디를 가도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울려 퍼졌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 중에 하나였던, 그가 남긴 유작 음반이 때아닌 유행을 이루었습니다. 지금도 그 음반에 있던 <넋두리>라는 노래를 가끔 듣곤 합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절규하던 그를 떠올려 봅니다. 그때는 인생의 허무함이나 애잔함이 묻어났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고치려 해도 어쩔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지배하던 시기입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사회를 걱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행히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대학원을 준비하겠다는 결심을 입학했을 때부터 세운 터라서 전공서적을 가장 많이 읽었습니다. 새벽에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10시 정도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1학년 때부터 학점관리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많이 읽은 책은 <크라운 영한사전>과 <토플 독해>인 것 같습니다. 그 두꺼운 책을 매일 사물함에서 껴내왔다가 다시 가져다 놓기를 반복했습니다. 전공서적 외에 토플을 준비했기 때문에 항상 끼고 다니던 책입니다.


최근에 아이들에게 그 사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스마트폰에 다 있는데 이 무거운 책을 왜 가지고 다니느냐고 하더군요. 세상이 이렇게 확 바뀌어버렸습니다. 당시는 삐삐를 가지고 다니던 게 유행이던 시대였는데요. 공중전화가 주변에 그렇게 많았는데 이제는 구경하기도 어렵습니다. 도서관에 박혀 있다 보면 어느새 울리는 삐삐. 당구 치자고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배운 당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마수가 올라갔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기 친구들이 모여지면 어김없이 당구장으로 향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출현하기 전에는 당구가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습니다. 다마수는 금방 200을 찍었고, 군대 가면서 멈춰진 다마수는 아직도 200에 멈추어 있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 읽었던 기억이 나는 책은 대우 그룹 오너였던 김우중 회장인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기억에 남습니다. 세계경영을 외치던 김우중 회장은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내용 중에 스페인 사람들의 낮잠, 시에스타를 게으름으로 평가해서 말이 많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등학교 제2외국어가 스페인어였기 때문에 시에스타를 그렇게 표현한 글을 보며 너무 편파적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당시 이 책은 젊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어필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찾아보려던 시기입니다. 비록 몇 년 후에는 IMF와 함께 문제를 일으켰지만 당시는 대단한 오너로 평가되던 시기입니다.


당시 읽었던 책들을 기억해 보면 <거지왕 김춘삼>이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실존 인물이라 해서 화제가 된 책으로 나중에는 MBC에서 드라마로도 나왔습니다. 가장 밑바닥에서도 배짱으로 살아간 인생을 보며 도전의식을 배운 책입니다. 그를 위한 평가는 호불호가 있지만 힘든 역동의 세월을 살아낸 의지만은 배울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한국 고전 문학에 관한 책이 많았습니다. <소설 토정비결>이라는 책을 전철에서 열심히 봤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마도 민중을 위한다는 스토리가 시대적인 상황과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 동의보감>이라는 책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수년이 지나서 드라마 <허준>으로 방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역사의 인물을 중심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유행이었던 시기였나 봅니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목민심서>라는 책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태연 시집도 이때부터 유행을 시작했습니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란 시집을 구매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지만 감각적인 단어와 구성으로 된 시집이 좋았습니다. 친구들 집에 가면 원태연 시집 하나 정도는 책장에서 보였을 정도입니다.


20대 초반에 읽은 책은 대부분 사회문제적, 사회 반항적이면서도 사회에서 성공이란 주제를 조금씩 준비하던 것들입니다. 군대를 가기전이라서 불안했고,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공허함이 느껴졌습니다. 뭘해도 결과를 맺을 수 없었고, 군대를 다녀 온 후가 진짜 나의 삶으로 이어질 것만 같았던 시절. 열심히 살기보다는 많은 것을 그냥 해보는 것으로 만족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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