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무게

by 행동하는독서

쿵!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내와 나는 저녁 식사하다가 서로의 눈만 바라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아이들 방문을 열었다. 둘째 아들은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큰아들은 이층 침대 위에서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손에는 베개가 들려있는 걸로 봐서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베개 싸움을 하다 둘째가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 뻔했다. 6살 차이나 나는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베개 싸움이 되겠는가? 형아의 일방적인 공격이었을 테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 아빠를 보자 둘째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4살 된 둘째가 이층 침대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아찔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바닥에 선혈이 흘러 있었다. 아무래도 형아의 베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부터 떨어진 모양이다.

머리가 깨진 것인가? 얼굴을 살펴보니 특별히 찢어진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럼 저 피는 뭐란 말인가?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보니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귀가 안 들리는 건 아닌지 최악의 순간이 스치고 지나갔다. 울기만 하는 아이를 엄마에게 맡기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내가 차를 빼올 테니 아이 안고 나오라 했다. 손이 떨리고 정신이 없으니 차 키가 어디 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두리번거렸다. 사람이 당황하면 갑자기 차 위치도 헷갈린다. 차 키를 눌러 위치를 확인했다.


마음속으로 당황하지 말자를 되뇌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둘째와 아내를 태우고 멀지 않은 종합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아이의 울음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피를 봤으니 저도 두려움이 밀려온 모습이다. 응급실 간판을 찾아 아이를 업고 뛰어 들어갔다. 사정이고 뭐고 귀에서 피가 난다고 머리를 다친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설명했다. 젊은 의사가 잠시 보더니 그 병원은 이비인후과가 없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러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냐며 매달렸지만, 큰 이상은 없어 보인다며 귀 이야기만 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를 업고 나와 다시 차에 태웠다. 아내는 더 이상 피도 흐르지 않는다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지만, 자기 증상을 뚜렷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이라서 자세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학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어둠을 뚫고 속도를 높였다. 제한 속도 70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100킬로 이상의 속도로 달렸다. 주차 시킬 겨를도 없이 응급실 앞에 차를 버려두었다. 큰 아들 때문에 한번 가봤던 그 병원에 둘째 아들을 업고 들어갔다. 제법 진정이 되었는지 아들은 병원이 무섭다고 했다. 어린 아들을 등에 업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거울에 보였다.

CT 찍으러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니 그제야 큰 아들 생각이 났다. 아무리 형아라도 해도 이제 갓 10살 된 아들이 아닌가? 그 밤을 혼자 집에 있으려니 무섭기도 했겠다. 야속하기도 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혼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름 걱정이 되었는지 푹 꺼진 목소리에 화를 낼 수 없었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말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도 둘째 아들은 큰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 수면 청력 검사까지 했지만, 듣는 데 큰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귀에 앉은 피 딱지를 빼는데 애를 좀 먹었다. 둘째가 공부 머리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때 침대에서 떨어지지만 않았으면 100% 서울대 갈 건데, 만약 못 가면 모두 형아 때문에 그런지 알아!"

둘째를 처음 업은 것도 아닌데 귀에 피 딱지가 선명하고 눈에는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아이를 업었던 느낌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빠가 아이를 등에 업는다는 것은 묵직한 연결고리처럼 느껴진다. 아버지가 나를 업었던 기억이 난다.

1960년대 산업화 시대,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 하나의 붐처럼 일어나던 시절, 아버지가 자리 잡은 서울로 아버지 사촌, 조카들이 모여들었다. 덕분에 내가 태어난 곳에는 많은 인친척이 모여살게 되어 시골로 가지 않아도 근처에서 제사를 다 모실 수 있었다. 종갓집도 멀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지만, 수많은 제사를 빠질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집안 모든 제사를 쫓아다녔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5살 정도 된 나는 잠들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나를 업고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오셨다. 그때 아버지 등은 넓고 따뜻했던 기억이 난다. 볼에 밤공기를 맞으며 깨다 잠들다를 반복했다. 눈을 게슴츠레 뜨면 하늘에 보이던 별들이 기억난다. 아버지의 등에서는 담배 쩐 냄새가 코를 찔러다. 그래도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움직임은 자장가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오랜 병 투병으로 마르고 좁은 등이었지만, 내게는 가장 넓은 아버지의 등이었다. ​


아이를 업고 30분을 걷는 건 쉽지 않다. 지금의 나보다 덩치도 작으셨던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내가 둘째를 업고 정신없이 병원을 뛰어다니던 초인적 힘이 그분에게도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