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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Aug 05. 2022

글로벌 오지라퍼

아무도 한국인을 건드릴수 없다!



INFJ. 나의 MBTI다. 그렇다. 단번에 알수 있듯 나는 결코 외향적이지 않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도 낯을 가리는 편이다. 내 직업의 가장 큰 단점을 꼽으라면 밤낮이 바뀌는 것,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다른 동료들과 팀을 이뤄서 일을 해야하는 것이라 말할수 있는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해야할 말을 하지 못해 우물쭈물한다거나 소심한 마음에 무리한 부탁도 거절 못하는건 아니다. 다만 아직 마음을 열지 못한 상대와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다는게 내게는 늘 도전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외국항공사의 승무원이고 늘 새로운 동료, 처음 보는 승객을 마주해야하는데 말이다.

로마의 골목

그러던 내가 희한하게 오지라퍼가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났을 때. 특히나 그 한국인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라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나도 인식하지도 못한 순간, 어느새 그들의 옆에 바짝 붙어서 무슨 상황인지 재빠르게 파악하고 일을 척척 해결해준다. 한국인을 위해 한정된 수호천사가 되는 것이다.

스페인 계단_Rome, Italy

첫 시작은 이탈리아 로마였다. 그 곳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스페인 계단에 가면 너른 광장이 펼쳐져있고 전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라 장미꽃을 판매하는 길거리 상인들도 즐비하다. "당신의 연인을 위해 꽃을 선물하세요!"라고 말하는 그들때문에 슬그머니 지갑을 여는 커플들도 꽤나 보인다. 이런 장면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나의 한국인 레이더가 번쩍!하고 작동하는 순간이다. "아니, 안살건데.. 저는 그냥 주시길래 받은거라, 도로 가져가세요." 내 레이더망의 분석에 따르면 가족여행을 온 부모님, 그리고 딸과 아들이었다. 분명 어려움을 겪고있는 듯해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들어보니, 영어를 잘 할줄 모르는 한국인을 상대로 장미꽃을 강매하는듯해 보였다. 상인은 "네가 꽃을 받았으니 돈을 내야한다."라고 큰 소리로 반복하고 있었고 네 가족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냅다 장미꽃을 쥐어주고는 받았으니 돈을 내야한다고 떵떵거리는 상황. 하, 이거 이거 참을 수 없지.


"Hey, Why did you give them the flower even they didn't want to buy it? Just take it back and go away.(저기요, 이분들이 꽃 안사고 싶어하는데 왜 준건데요? 도로 가져가고 저리가세요.)" 칼같은 끼어들기, 단호한 얼굴, 게다가 쏘아붙이는 말투. 장미꽃을 들고 있는 상인도 퍼뜩 놀란 얼굴이었다. 슬쩍 웃더니 장미꽃을 다시 돌려받아선 저 멀리 후다닥 가버렸다. 해결돼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한국인 가족을 향해 돌아보니 그들의 눈엔 내가 마치 슈퍼히어로 같았나보다. 눈을 반짝이며 연신 감사인사를 하셨다. 아니라고 손사래 치며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고 헤어진 후, 문득 내가 지금 제대로 한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두 번 생각해도 내 가족이 이런 곤란을 겪는다고 상상하면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 나를 글로벌 오지라퍼로 만들어버렸나보다.

트레비 분수에 소원 동전 던지기

이후로도 몇 년만에 아들과 태어난 손자를 보기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가는 나이 지긋한 부부, 영어를 잘 할줄몰라 공항에서 환승에 어려움을 겪는 승객, 해외의 식당이나 심지어 인쇄 가게에서까지 한국인을 도울 기회가 있었다. 내향적인 내가 슈퍼맨처럼 확 옷을 뒤집어입는 순간이다. 한민족이라는 뜨거움. 정말 피는 못속이나보다.

로마의 한 식당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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