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를 향하여
"줄리아, 조심해. 호텔까지 경찰차가 앞뒤로 두대씩 붙어서 호송한다더라."
나이지리아 비행은 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가장 위험한 도착지 중 하나라는 소문이 승무원들 사이에 자자했으니, 도무지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터. 그래도 인생에서 언제 또 경험해보겠는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비행에서 뜻밖의 기쁨을 만났다. 바로 한국인 승객분. 언제나 한국인 승객을 만나면 내 안에 뭉쳐져있던 향수의 강이 마구 흘러넘친다. 하지만 무슨 일로 머나먼 땅 나이지리아까지 가시는 걸까. 적어도 17시간에 가까운 대장정일텐데. 피어나는 호기심과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합해져 나도 모르는 새 그 앞에 딱 멈춰섰다.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받다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천연가스와 관련 된 사업으로 2년 정도 나이지리아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 가족들과 떨어져있다는 게 벌써 마음이 아린다고 했다. 아, 어찌나 그 심정이 헤아려지던지. 공통분모를 찾아서일까. 내 마음 속 묵혀뒀던 불안함이 입밖으로 술술 풀어 나왔다. 절대 호텔 안에서만 머물러야 하고, 지금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더라며 재잘재잘대다, 아차 싶어 말을 멈추고 입을 꾹 다물었다. 2년의 시간이 이제 시작인데 내가 지금 뭘한건가. 그래도 신사분께선 씩 웃어주시며 고개만 끄덕끄덕하셨다.
짧지만은 않았던 약 6시간의 동행이 끝나갈 때 쯤, 그 승객분께선 마지막으로 기내를 둘러보던 나를 톡톡치며 불렀다. 그러더니 비행내내 읽고 계시던 책을 슥 내미는 게 아닌가. 나이지리아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책이었다. "이거, 한 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거 같아서요." 세상에, 이렇게 따스하다니. 비행 중에는 승객분께 챙김을 받을 때마다,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뭐라도 내가 더 해드려야한다는 책임감이 든달까. 두 손과 마음이 무거운 채 자리로 돌아와 한번 펼쳐보니, 제일 첫 장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빼곡했다.
'마음이 복잡한 하루 입니다. 새로운 도전에 기대와 희열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친구를 두고 지구 반대편에 있을 생각으로 외로움이 물밀 듯 들어옵니다. 승무원님의 불안한 눈빛을 보고, 저와 비슷한 심정이라 감히 짐작해봅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책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읽는 순간에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 정도 생각 정리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면 업무에도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마음의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행운을 빌며.' 손바닥으로 정성어린 글씨들을 한번 슥 만져본다. 그래, 그렇지. 분명 작은 행동이지만 절실했던 나에겐 이렇게 커다란 감동이 되어주는구나.
덕분에 모두가 꺼리는 나이지리아 비행은 내게 있어 가장 멋진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리어 다른이의 힘듦에 더 관심을 가져보라는 혹자의 말이 떠올랐다. 조그만 관심과 행동이 누군가의 하루를 만들 수 있음이 다시금 기억되어 참 감사했던 하루. 그 날 나이지리아엔 종일 비가 왔고, 내 마음엔 온화한 물줄기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