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아 Jul 27. 2022

첫번째 바닥

나이지리아를 향하여



"줄리아, 조심해. 호텔까지 경찰차가 앞뒤로 두대씩 붙어서 호송한다더라."

나이지리아 비행은 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가장 위험한 도착지 중 하나라는 소문이 승무원들 사이에 자자했으니, 도무지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터. 그래도 인생에서 언제 또 경험해보겠는가?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비행에서 뜻밖의 기쁨을 만났다. 바로 한국인 승객분. 언제나 한국인 승객을 만나면 내 안에 뭉쳐져있던 향수의 강이 마구 흘러넘친다. 하지만 무슨 일로 머나먼 땅 나이지리아까지 가시는 걸까. 적어도 17시간에 가까운 대장정일텐데. 피어나는 호기심과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합해져 나도 모르는 새 그 앞에 딱 멈춰섰다.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받다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천연가스와 관련 된 사업으로 2년 정도 나이지리아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 가족들과 떨어져있다는 게 벌써 마음이 아린다고 했다. 아, 어찌나 그 심정이 헤아려지던지. 공통분모를 찾아서일까. 내 마음 속 묵혀뒀던 불안함이 입밖으로 술술 풀어 나왔다. 절대 호텔 안에서만 머물러야 하고, 지금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더라며 재잘재잘대다, 아차 싶어 말을 멈추고 입을 꾹 다물었다. 2년의 시간이 이제 시작인데 내가 지금 뭘한건가. 그래도 신사분께선 씩 웃어주시며 고개만 끄덕끄덕하셨다.


짧지만은 않았던 약 6시간의 동행이 끝나갈 때 쯤, 그 승객분께선 마지막으로 기내를 둘러보던 나를 톡톡치며 불렀다. 그러더니 비행내내 읽고 계시던 책을 슥 내미는 게 아닌가. 나이지리아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책이었다. "이거, 한 번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거 같아서요." 세상에, 이렇게 따스하다니. 비행 중에는 승객분께 챙김을 받을 때마다,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뭐라도 내가 더 해드려야한다는 책임감이 든달까. 두 손과 마음이 무거운 채 자리로 돌아와 한번 펼쳐보니, 제일 첫 장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빼곡했다.


'마음이 복잡한 하루 입니다. 새로운 도전에 기대와 희열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과 친구를 두고 지구 반대편에 있을 생각으로 외로움이 물밀 듯 들어옵니다. 승무원님의 불안한 눈빛을 보고, 저와 비슷한 심정이라 감히 짐작해봅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책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읽는 순간에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 정도 생각 정리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들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면 업무에도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마음의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행운을 빌며.' 손바닥으로 정성어린 글씨들을 한번 슥 만져본다. 그래, 그렇지. 분명 작은 행동이지만 절실했던 나에겐 이렇게 커다란 감동이 되어주는구나.

승객분께 받은 편지_Lagos, Nigeria

덕분에 모두가 꺼리는 나이지리아 비행은 내게 있어 가장 멋진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리어 다른이의 힘듦에 더 관심을 가져보라는 혹자의 말이 떠올랐다. 조그만 관심과 행동이 누군가의 하루를 만들 수 있음이 다시금 기억되어 참 감사했던 하루. 그 날 나이지리아엔 종일 비가 왔고, 내 마음엔 온화한 물줄기가 흘렀다.



이전 15화 글로벌 오지라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