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요즘 꽃에 관심이 가더라?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형 덕분에 가족끼리 외식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피어있는 꽃을 보고 형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나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이 형이 갑자기 뭘 잘못 잡수셨나
이제 서른 초반인데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해?
형이 갑자기 왜 그러나 싶었다. 부모님께서 꽃이 핀 것을 반기며 사진을 찍어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해놓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형은 아직 젊을뿐더러 복잡한 서울살이로 인해 꽃에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벚꽃시즌때처럼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꽃 축제에서 꽃 사진을 찍고 즐기는 짧은 기간동안이 아니라, 단지 일상적으로 아무 길거리에 피어있는 꽃을 좋아라하는 것은 어르신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터라, 형의 그런 발언을 무작정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의문이 생긴 나는 먼저 형이 아닌 엄마에게 물어 보았다. "사람들은 왜 나이가 들수록 꽃 사진을 많이 찍을까?" 엄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아마 스스로도 그 나이때 꽃이 좋아지는 것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감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라 왜 좋아하는 지에 대한 이유를 말로 표현하려니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셨나 보다. 마치 애인이 '내가 왜 좋아?'라고 물어보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만들어내는 과정처럼.
호기심이 줄어서 그래
연인간의 사랑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가 엄마에게 던진 질문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특별한 답변을 기대하지 않았다. 엄마가 찾아낸 이유는 바로 '호기심'과 관련된 것이었다. 부모님 나이 즈음이 되면 지난 세월동안 수없이 다양한 경험들이 축적되어 왔다.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어보고, 전국 방방곡곡 여행도 다녀보고, 수많은 글과 영상들을 접해보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져보는 등 자녀 세대들보다는 절대적인 인생선배님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과 내 주변의 어른들을 보았을 때만큼은 그러하다. 특히 우리 아버지의 경우를 말하자면, 내가 재밌다고 느낀 책이나 드라마 및 영화를 아버지께 추천해드리면 아버지께서는 종종 "어차피 뻔한 이야기인데 뭘" 이라 하시고, TV에서 멋진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와서 내가 "와 가서 먹어보고 싶다!" 라고 하면 "저기서 먹나 여기서 먹나 거기서 거기지 뭘" 이라는 말과 함께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본인들이 축적해온 경험들의 부피가 너무 큰나머지 호기심이라는 감정이 들어갈 만한 자리가 부족했던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호기심은 줄었는데 왜 유독 '꽃'에는 집착하는 것일까?
호기심이 줄어든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면 꽃에도 관심이 없어야하지 않을까? 그건 아마도 부모님의 관심을 끄는 그 '꽃'이 그들의 찬란했던 과거 시절을 투영하는 존재라서 그러지 않을까.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따스한 봄을 맞이하며 화려하게 핀 꽃은 주변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존재다. 아름답게 핀 꽃은 사람들의 감정을 따듯하게 녹이고, 꿀벌들에게는 달콤한 꿀을 선물해준다. 이와 동시에 꿀벌들은 꽃가루를 지니고 여기저기 옮겨다녀 꽃의 아름다운 자손들이 널리 퍼지도록 도움을 준다. 꿀벌들을 유혹하여 꿀을 주고 자손을 남기고 난 후 다시 추위가 오면 시들어지는 그 꽃은 마치 한 사람의 인생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순간을 반영한다. 부모님의 화려한 전성기 시절에도 본인들만의 멋진 매력을 마구 뽐내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성공한 후 자식들을 낳아 본인들이 가진 사랑을 끊임없이 남겨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흘러 시들고있는 부모님의 마음을 훔친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니, 그것이 바로 과거의 찬란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회상시켜주는 존재인 그 꽃인 것이다.
하지만 형은 왜그럴까? 형에게도 물어봤다. "그러면 행님은 왜 꽃에 관심이 가는데?" 형의 답변은 "감정이 메말랐나봐" 였다. 형은 스무살에 서울 소재의 대학에 진학을 한 후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방보다는 서울의 생활환경이 각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가족들이 전부 서울에 살았더라면 내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서울이 고향이 아닌 우리 형에게 서울살이는 결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이 틀림없다. 우리집이 부유했더라면 서울에 사는 형의 마음의 여유도 부유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던 형은 10년이상 서울에서 치열하게 살아온거 같다. 그 결과 형은 나름 회사에서 본인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고 앞으로 커리어에 대한 가능성도 탄탄해보인다. 그렇지만 혹독한 타지살이에서 본인만의 자리를 잡기까지 수없이 많은 시련들이 있었을 것이며, 그 시련들이 결국 우리 형의 감정이라는 우물을 메마르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우물을 가뭄속의 단비가 조금식 채워주기를 기대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형도 꽃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일까.
사람들마다 점점 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무의식적이라도 존재할 것이고, 제각각 다를 것이다. 우리 엄마처럼 나이가 들면서 점점 호기심이 줄어들어 꽃에 관심이 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우리 형처럼 각박한 사회생활에 지쳐 감정이 메말라 꽃에 관심을 두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아직 모르겠다. 꽃이 이쁘긴하지만 사진을 찍으며 프로필에 올릴 정도는 아니다. 꽃사진을 찍는 것도 보통 일년중 벚꽃이 필 무렵만 그렇지 4계절내내 길거리에 널브러져있는 꽃을 찍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꽃에 갖다대는 순간이 오지않을까. 그러한 나 자신을 보게 된다면 나는 도대체 왜 꽃에 호기심을 가지는 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