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고 있다는 착각

by 킴프로


최근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연이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나 부모라면 잘 알 것이다. 이 글의 발행을 앞두고 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았다. 그 기사는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하는 학교가 급감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어느 초등교사가 자신이 받았던 민원을 댓글로 달았다.


그것은 우리 애 스트레스받게 왜 숙제를 내냐는 민원이었다.


도대체 숙제가 뭐길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 초반에만 하더라도 숙제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다. 학원이든 과외든 수업을 선택했다면 숙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의 단순했던 내 생각이 참 초라하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숙제를 하지 않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숙제는 물론 수학, 국어, 한자, 파닉스 등의 학습지에 피아노 연습까지 엄마가 시키기 전에 모두 스스로 했던 학생이었다. 물론 매일 예습복습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자기주도학습’의 표본이었다. 나에게는 ‘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내가 9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매 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특별한 정기 시험 없이, 담임교사의 재량에 따라 단원평가 정도만 치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험도 없는데 요즘 초등학생들의 숙제를 하기 싫어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이들이 하루와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바쁘다’라는 핑계를 자주 대는 아이들이 해야 하는 학교 및 학원 숙제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했다.


우선, 놀랍게도 만나는 아이들마다 공통적으로 학교 숙제가 없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학교를 가면 쉴 수 있는 시간이 더 많다는 말도 들었다. 이 말은 곧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이 훨씬 힘들다는 의미였다.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 숙제에 치이고 있었고, 종종 학교를 빠지고 그 시간에 밀린 학원 숙제를 하는 6학년 학생도 있었다.


학원을 많이 다닐수록 책 읽기와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렸다. 심지어 내 수업을 하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면 그 자리에서 영어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준 것은 해결하지도 않고 내 앞에서 참 당당하기도 했다.






아이들마다 숙제를 하지 않는 모습은 다양했다.


막상 하면 재미있지만, 혼자 하는 것을 싫어하는 유형. 선생님이나 부모님과 함께 하기를 선호(수업시간에 신나게 하고는 시간이 부족해 남은 것만 다음 시간까지 해오면 되는데도 그 조차 혼자서는 하기 싫어한다.).

수학과 영어 숙제가 과도해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유형. 이미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학생.

재미없는 숙제는 하기 싫은 유형. 왜 숙제를 해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재미가 없어서 하기 싫어하는 학생.

부모님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하는 학생.

영어 숙제는 안 하면 엄마에게 혼나지만 국어 숙제는 하지 않아도 혼나지 않아서 안 하는 학생.

숙제는 그냥 다 싫은 유형까지.


각각에 해당하기도, 복수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숙제는 없는 것이 베스트이다. 숙제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보상제도를 도입하기도 했고, 분량을 직접 조절하게도 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숙제를 부담으로 느꼈고, 선물을 받기 위한 마음도 곧 시들해졌다.


외재적 동기는 수명이 짧다.


한편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놀랍게도 숙제를 했을 때 아이들의 태도에 있었다. 배운 것을 제대로 적용해서 과제를 잘 해결했을 때에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의기양양하게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반대로 하지 못한 날은 수업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연락이 온다. 오늘 숙제를 하지 못했다고 이해해 달라는 메시지다. 아이들이 엄마가 대신 선생님에게 말해달라고 조른 것이다. 내가 숙제를 안 했다는 이유로 혼을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마음을 쓰고 엄마에게 미리 사정했다는 것은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숙제는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 점이 있다. 숙제를 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의 ‘의지 부족’ 뿐만은 아니다. 아이들과 숙제를 둘러싼 환경에도 문제가 있다.






숙제는 단순하지 않다.


배운 개념을 스스로 소화하고, 이를 확장하여 재구성하며,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보완하여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앞서 사고의 범위를 미리 확장해 두고, 다음 시간에 배워야 할 것을 미리 눈여겨 두는 준비과정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자의 복습과 후자의 예습 사이에 지식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 역시 숙제의 영역이다. 즉, 숙제는 ‘예습-복습-메타인지’를 통합하는 학습 장치여야 한다.






과연 이러한 숙제의 기능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상당수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 내용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학교 교과 과정에 대한 예습복습 루틴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학원에서 쏟아지는, 선행을 위한 숙제를 하는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있을까.


단원평가를 치르면 반에서 만점을 받는 학생이 단 한 명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학교 선생님들의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 과외 선생님에게 짜증을 낼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밤늦게까지 숙제를 하고, 때로는 숙제를 하기 위해 학교를 가지 않고, 학원 숙제를 도와주는 과외 선생님을 다시 고용하면서까지 2-3학년 높은 레벨을 선행한 아이들이 정작 제 학년 학습 수준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과연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학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지금의 교육현실이다. 도대체 아이들이 지금 무슨 ‘숙제’를 하고 있을까.


이런 상태의 아이들에게 내가 어떤 과제를 들이민다 하더라도 내 것이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이야기 책 읽기보단 영어학원 숙제가, 글쓰기 숙제 보단 사고력 문제를 푸는 것이 부모도 아이에게도 더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은 읽기와 쓰기이다. 스스로 읽고 쓰지 않으면, 학습에서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든다. 수학 문제를 선생님이 옆에서 ‘읽어주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아이가 실제로 존재한다.


숙제를 하지 않으면 그것이 어떤 과목이든 그저 공부하고 있다는 착각만 가질 뿐이다. 나는 숙제를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은 그것을 해 내야 한다.


다만 아이들의 현실을 조금 더 자세히 알고 나서 한 가지 염두에 두는 것이 있다. 이 수업이 부모의 일방적 결정인지 학생이 필요로 느껴서 하는 공부인지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다.


즉, 학생이 내재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다시 한번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을 갖도록 한다.


여기에 더해 현재의 스케줄로 내가 제공하는 숙제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여유가 되는지 아닌지를 학부모와 학생이 충분한 대화를 통해 검토해 보도록 한다.


학생이 수행평가의 수준이 높아 짐에 따라 힘에 부쳐 글쓰기를 배워야겠다는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영어 수학 학원 숙제와는 별개로 읽고 쓰는 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정신적, 물리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지 반드시 살펴보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간, 월간 학습 계획을 직접 짜고, 자신의 시간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다. 이 기회에 한 번 살펴보라는 목적 또한 포함이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분량의 학습을 제대로 그리고 느리게 해 나갔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언젠가 학생으로부터 오늘 학교를 가지 않아서 내가 준 글쓰기 숙제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상 타는 글쓰기(1), (2), (3)’ 때의 일이었다.


물론 이 아이가 내 수업을 듣고 금상을 타 온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겠지만, 학교를 빠지고 내 숙제를 하는 것이 말이 되나 싶었다. 그냥 학교를 갔어야지 그랬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게 없어요.’라는 말을 종종 한다. 물론 이것은 8학군의 일부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밟아 나아가고 있는 학습의 징검다리가 흔들리고 있음을 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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