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에 대한 이야기
지난 화에서 밝혔듯, 학교 폭력에 연루된 아이와 수업을 하기도 했지만 역으로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오랜 시간 괴롭힘을 당해왔던 학생과도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이 경우는 앞선 사례와는 조금 다르다. 학생과 수업을 시작한 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학생의 어머니께서 내게 공유해 주신 경우였다.
진오(가명)는 괴롭힘의 주동자와 그의 무리들을 ‘나쁜 애들’이라 불렀다. 약 열 명(진오는 공부방 벽에 그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두었었다.)의 학생들이 진오를 ‘바보’와 같은 말을 쓰며 비난했고, 말투를 이상하게 흉내 내며 조롱했다. 몸을 밀치거나 넘어트리는 행동도 매일 반복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약 두 달간 지속되고 있었다.
진오가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매일 노출되는 동안, 담임교사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 사실은 결국 같은 반 친구의 부모를 통해 뒤늦게 진오의 어머니 귀에 들어갔다.
진오는 그동안 학교의 일을 부모님께 단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학교만 다녀오면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을 내고, 주먹으로 쿵쿵대며 물건을 치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건이 드러나기 직전의 수업이었다. 평소보다 더 나쁜 태도를 보이는 진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진오가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진오는 답했다.
“매일매일 기분이 안 좋아요.”
이어 학교에서 이상한 말로 자신을 따라 하며 놀리는 나쁜 아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평소 수업 시간에 진오는 내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왔었다.
“잘못하면 학폭을 당해야 해”
“벌칙을 받을 때는 맞아도 돼.”라는 말을 하며 인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무서운 표정을 짓고, 인형을 책상 그리고 천정과 바닥에 반복적으로 내리쳤다. 말 그대로 패대기를 친 것이다.
집단 괴롭힘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다는 진오의 말만 듣고 진오의 부모님에게 학교에 사실을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과외 선생님이라는 나의 역할이 나를 소극적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고, 또한 진오의 인형을 향한 태도를 진오의 어머니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선뜻 개입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진오의 말이 한 두 차례 더 반복될 경우, 어머니에게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개입하기 전에 사건이 먼저 드러났다.
이후, 어쩌면 진오는 누구보다 가장 먼저 나에게 신호를 보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사실 진오는 이전 글 ‘우리 애 천재 아니야?’에서 언급했던 학생이다. 이미 한차례 밝혔듯 첫 수업부터 쉽지 않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나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진오의 모습을 단순한 학습 태도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고 말이다.
만약 특정 이름의 진단이 내려질 만큼의 정서 또는 행동 장애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분명 이 아이에게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성, 감정표현, 의사표현이 내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비쳤다.
물론 수업 중 관찰되는 모습을 어머니께도 솔직하게 공유했다. 어머니께서도 진오에 대한 나의 시선을 불편해하지 않으셨고, 종종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다만 상담이나 치료에 대한 계획은 확인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진오의 태도를 인지하고 있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진심으로 상담이나 치료를 받아보라는 제안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는 아동 심리, 정신건강의학, 교육학 그 무엇에도 전문가가 아니고, 나의 섣부른 판단이 혹여 부모와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마음에만 담아두고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학부모가 불쾌한 마음에 내 수업을 그만두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진오를 위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나의 생각은 이것이다.
자녀에게 ‘틱’으로 의심되는 행동이 보인다고 가정해 보자. 부모로서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행동이 교정되지 않고 반복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바람대로 틱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으면 부모는 더 이상 아이에게 그 ‘특정 행동’을 억지로 교정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안정을 찾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때까지 아이를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틱이 맞다면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시를 틱으로 들었지만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특정 행동이 반복되고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아동의 치료에는 반드시 그 적기가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특히 진오의 경우처럼 감정 조절의 어려움과 충동적인 반응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그것이 단순한 학습 태도 문제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보인다면, 그것이 일시적인 반응인지 지속적인 문제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은 상담이나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고, 이 사실을 진오의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진오와의 수업은 정말 한 발 나아가면 두 걸음 뒤로 물러나듯 했다. 앞으로 나아간 ‘한 발’에 의미 부여하며 진오를 독려했고, 한편 선생으로서 부족한 나의 자질을 탓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제를 리뷰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어 물었다. 진오의 입에서 믿기 힘든 충격적인 말이 나왔다.
‘놀려도 되는 애’
‘바보 같은 애’
‘괴롭혀도 되는 애’
같은 반에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놀려도 된다는 말이 진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수업을 하면서 학교 또는 친구와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혹시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을 억지로 들게 하는 것일까 봐 조심했다. 그러나 진오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는 순간 진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내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초등 저중학년이라면 자신이 어떤 나쁜 일을 당했을 때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당한 것만큼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마음이 현실이 되어 나보다 더 약하다고 생각되는 자에게 향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나는 진오에게 말했다.
“네가 벽에 적어 놓았었던 나쁜 아이들이 너를 괴롭히고 놀렸을 때 속상하고 힘들었잖아. 그런데 똑같이 행동하면 될까? 그럼 진오도 진오가 말한 그 ‘나쁜 아이’가 되는 거 아니야?”
그러나 진오는 ‘될까?’라는 질문에 ‘네, 돼요.’라고 끊임없이 말장난을 하며, 살짝 웃었다. 진오의 표정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뒤늦게 깨닫거나 반성하는 마음을 담고 있지 않았다.
진오의 어머니께서 ‘집단 괴롭힘’에 대해서 공유해 주셨던 메시지에는 어머니의 확신이 있었다. 그동안 진오의 가정에서의 모습이나 나와의 시간에서의 수업 태도가 학교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메시지의 답에 힘주어 강조했다. 진오의 행동이 괴롭힘에 대한 일시적 반응인지,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보이고 있었던 행동인지, 또는 내외부 요인이 상호 영향을 끼치면서 병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함을 말이다. 만약 전자에 해당한다면, 괴롭힘이 중단됨에 따라 진오의 태도는 차츰 개선되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진오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은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보게 했다.
첫째, 괴롭힘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둘째, 괴롭힘은 끝났지만 진오의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
셋째, 문제 행동은 괴롭힘과 직접적인 관련 없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작용하고 있을 수 있다. 예상외의 요인이 진오를 행동하게 하는 것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4학년이 되어버린 진오는 새 학기가 되자 수업에 집중은커녕 예상하지 못했거나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여전히 물건을 던지고, 버릇없이 말하며 짜증을 내고, 충동을 자제하지 못했다(나는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물건을 던지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은 나이와 관계없이 그리고 단 한 번의 해프닝 일지라도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그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 반드시 학습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부분을 여러 번 언급해도 이해하길 바란다.).
보상이나 본인이 좋아하는 시간을 빼앗는 식의 벌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제 계약서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본 계약을 다음과 같이 체결한다.’ 참고).
진오는 마치 귀를 닫은 듯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힘들고, 피곤해서 집중하기 어려운 컨디션이라면 “힘들어요. 피곤해요. 집중이 안 돼요.”라고 정확히 말로 표현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면 평소와는 다른 방식의 수업을 진행해 볼 수도 있다고 여러 선택지를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진오는 내면의 상태를 말할 줄 몰랐다. 진오의 이런 태도는 때로 60분 내내 이어졌고, 내 수업 때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월급루팡이 아니다. 단 말 한마디, 한 문장일지라도 최소한의 학습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오와 나의 만남에서는 그 어떤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 서로의 마음을 상처 내는 것만을 반복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오의 어머니는 진오를 계속 맡아주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나는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수업의 중단과 함께 상담 또는 치료를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감정 표현과 행동의 원인이 생물학적인 것인지, 단지 불안과 예민함에 있는지(‘불안한 아이들’ 참고), 과거의 상처 또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외부적 요인에 있는지 밝혀내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모가 자녀의 문제적 태도를 교정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데 애쓰는 것보다 오히려 학습량을 늘리는 쪽으로 더 무게를 싣는 환경에 놓여 있는 학생을 더 이상 억지로 가르치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도 있다.
그리고 내 수업과 내가 주는 숙제를 들어내서라도 부모님과 진오가 진오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상담이나 치료와는 별개로 남자아이들만 갈 수 있다는 미술 학원을 다녀보면서(진오는 그림을 정말 잘 그리지만 미술 학원만 다니지 않고 있다.) 성인 남자와의 건강한 소통을 경험해 볼 수도 있고,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순수한 노동을 하는 체험 활동을 해 볼 수도 있다. 축구나 야구와 같이 여럿이 하는 스포츠 클럽을 다니거나 창작 활동을 배워볼 수도 있다.
나중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말이다.
물론 그 시간은 내 의도대로 흘러갈지 모르겠다. 당분간 다른 선생님이나 학원을 찾는 것은 멈추고, 독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어머니의 메시지로 조금은 기대해 볼 수 있으려나.
나는 어쩌면 본인보다 약한 아이를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진오에게 크게 실망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마음이 싹튼 원인을 진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가해 학생들 그리고 사건 전후로 세심하게 진오의 마음을 살피지 못한 어른들에게도 분명 그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유로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아이를 그저 감싸줄 수는 없다.
진오의 문제적 태도에는 단지 불안정한 학교 생활, 학업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상황(내가 자세히 알기 어려운 가정 내에서의 문제들까지)이 상호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타인에 대한 무례함, 폭력적인 언행과 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헤어졌다.
진오가 마지막 시간에 내게 물었다. 조금 더 커서, 집중을 잘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다시 수업을 할 수 있냐고 말이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래의 너에게 미루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말이 수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오롯이 진오에게 있다는 것으로 들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