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브롱Quiberon 반도를 걸으며
휴가지를 결정하고도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악천후로 악명 높은 브르타뉴를 다녀온 친구들 증언이 자꾸 맴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 관광청 사이트의 안내문구 중 여행 적기는 7월에서 9월이란 정보는 일 년에 단 3개월 정도만 봐줄 만하다는 의미로 읽혔다. 떠나기 전 브르타뉴가 고향인 E와 우연히 만날 일이 있었는데, 날씨 걱정을 하니 별 고민을 다한다는 투로 “폭풍우의 브르타뉴는 해 뜰 때와는 다른 매력이 있지!” 란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비가 와도 좋은 곳은 그 나름 대로의 풍경을 갖고 있을 테니. 화창했지만 인파에 부대낀 곳, 유명 관광지지만 폭우가 쏟아져 한산했던 곳, 둘을 놓고 굳이 비교해보자니 후자가 더 나았던 것 같다.
남 브르타뉴의 도시 반느 Vannes을 베이스캠프로 두고 인근의 도시와 섬에 방문하는 것으로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떠났다. 집에서 반느까지 쉬지 않고 운전해도 5시간이 넘는 거리라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일곱 시였고 저녁을 먹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났다. 둘째 날이 돼서야 휴양지로 유명한 퀴브롱Quiberon으로 첫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육지와 반도를 잇는 길은 편도 1차선 도로뿐이다. 이 어설픈 연결목 때문에 섬이 되지 못했다. S도 몇 년 전 주말에 들렀다 엄청난 정체에 치를 떨었다며 무조건 평일날 가야 한다고 했다. 5성 호텔마저 보유하고 있는 휴양 지건만 1km 도 채 되지 못한 구간을 더 넓히지 않는 게 의아했다. 양 옆 바다를 조금만 매립해도 더 넓은 차로를 만들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퀴브롱에 들어서서 잠깐 걷다 보니 이런 투정이 아차 싶다. 지천에 널린 공사현장을 놀이터 삼아 자라온 탓 인지 나도 모르게 황당한 생각이 튀어나왔다.
지역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를 제외한 해안길은 땅이 파일까 자전거 조차 이용 불가한 엄격한 생태보호구역이다. 자연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그저 좁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만 허용된다. 들풀 한줄기, 자갈 하나 집어가서도 안 된다. 그뿐인가 쓰레기통도 없다. 방문객들이 만든 쓰레기는 각자 되돌아갈 때 함께 가져가야 한다. 관리자들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엄격한 보호 규제는 방문하는 모두의 번거로움으로 유지되고 있다.
“여기도 자연보호지역의 개념이 잡힌 지 얼마 안돼. 영광의 30년 Trente Glorieuses 시절엔 무조건 개발하고 그랬지. 못생긴 해변가의 시멘트 건물들은 다 그때 지어진 거야. 누구나 바캉스라는 걸 즐기기 시작하니 좋은 곳이면 어디든 인파는 폭발적으로 몰리고, 자연은 그만큼 파괴되고. 잃기 시작하니가 관리도 시작한 거지 뭐 ”
S는 휴양지 개발에 대한 생각은 나만 떠올린 게 아니라며 죄책감을 덜어줬다. 그와 함께한 여러 유람들은 함께 걸은 걸음수만큼이나 행복한 기억을 몽글몽글 담아온다. 9년 동안 꼭 아홉 군데의 행선지를 같이 했는데, 올 휴가만큼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무척 좋았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도 다양한 존재들과 바다의 어우러짐은 유독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름 모를 들꽃과 야생 덤불, 왱왱대며 열심히 꽃을 오가는 꿀벌과 파도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쉬고 있는 바닷새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고, 한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운 사람을 만난 듯 반갑기도 했다.
오랜만에 고교 동창들과 만나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어느 골목을 걷던 날. 담장 너머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를 마주한 순간은 아직도 액자처럼 기억에 남아 있다. 깊은 가을의 석양빛을 그대로 담은 능소화 덩굴을 바라보느라 수다는 단숨에 끊기고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자연과 꽃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나이 든 거라며, 엄마들 카톡 프로필 봐봐. 우리도 이제 나이 먹었나 봐" 친구의 말에 여고시절로 돌아간 듯 다들 까르르 웃어 대었다. 길가에 어여쁘게 핀 꽃을 만나면 좋다 못해 탄복해 눈물 날 지경이니 이젠 먹을 만큼 먹은 나이가 되었다. 신나고 설레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잘 견뎌내야 할 고단한 것이 더 많아지니 세상에 피워낸 작은 생명 하나하나 모두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