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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립소 Jun 29. 2021

빨간 쌈무의 계절

팬데믹 상황만큼 혼란한 생계 생활 탓에 하루 한 끼 제대로 차려먹을 시간조차 없는 처지지만 주말마다 장 보는 일은 멈출 수 없다. 생필품도 필요하고 제철 식재료를 살펴보는 걸 좋아한다. 지난 주말에 들린 농산물 매장에 유난히 신선한 야채들이 그득했다. 멜론이나, 복숭아 등 여름 과일들이 이르다 싶고 설익었을 거라 잠시 의심했지만 의외로 단내가 향긋하다. 정신 차리고 곱씹어 보니 우린 6월 중순을 넘기고 있다. 의외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래디쉬는 활짝 피기 전의 사루비아 봉오리마냥 멀리서부터 황홀한 모양새로 장바구니에 넣어 달라며 유혹했다. 어쩌자고 잘 먹지도 않으면서, 줄기까지 붙은 한 다발 그중에서도 제일 이쁜 녀석으로 골라 홀리듯 사 왔다.


요 녀석으로 무얼 해 먹을까 고민하다 몇 알은 생으로 오독오독 씹어 먹고, 몇 알은 샐러드에 편 썰어 모양을 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이틀 고민한 사이 시들어진 이파리 뭉치를 발견했다. 더 놔두었다간 모조리 다 버릴 거 같아 얼렁 다발을 풀러 깨끗이 씻어내고, 무청과 래디쉬 알맹이를 분리했다. 결국 비빔국수에 살아남은 무청을 함께 비벼 상큼한 한 끼로 때웠고, 알맹이는 얼마 전 담근 쌈 무 유리병 빈 공간에 조심스레 차곡차곡 넣었다. 몇 분 지나자 래디쉬의 피부가 식초물에 우러나 예상치 못한 붉은 절임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올여름 쌈무는 고운 색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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