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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립소 Jul 01. 2021

교만한 식탁

르크로와직에서 해산물 한 접시

갈색 털을 가진 묘한 가스코뉴만의 갈매기는 빽빽거리며 가느다란 두 다리로 뒤뚱뒤뚱 해안 길을 거닌다. 한가한 인도를 유유히 움직이는 내게 마치 제 경로를 막지 말라는 경고의 클락션 같다. 서둘러 왼쪽으로 한 발짝 옮겨 비켜주자 무슨 바쁜 용무가 있는 건지 녀석은 잰걸음으로 나를 추월해 버린다. 점심 식사를 위해 예약해둔 해산물 식당을 향하는 길 내내 조용하고 한산하다. 학기 방학 시즌도 넘기고 평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마치 동네 마실 나온 것 마냥 옛 브르타뉴의 관광지를 조용히 즐길 수 있는 건 코로나 시대의 아이러니한 장점이기도 하다. 지금 한산한 이 거리는, 분명 작년 이맘때엔 성격 급한 갈매기가 미약한 두 다리를 땅에 디뎌 볼 시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인파에 꽉 막혔을 것이다.


식당에 도달하자 입구 테라스 석에 삼삼오오 채워진 손님들을 마주하고 숨기고 싶던 교만을 잃었다가 몇 발자국 더 깊이 다가선 텅 빈 실내 석을 보고 왠지 모를 안도를 했다. 거리 두기 지침 때문에 좌석 간격은 예상보다 널찍했고, 열 테이블 남짓의 채워지지 않은 손님을 보니 어쩌면 굳이 예약절차가 필요 없었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평안함이 무너질까 잠시 두려워했던 마음은 죄책감으로 변했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식당 입구 문짝과 모두 열어젖힌 폴딩 통창 덕분에 우리의 실내 식사 자리는 지붕만 있다 뿐이지 테라스와 다름없다. 식사를 위해 마스크를 벗어버려서일까? 오히려 해안 길을 걸어올 때 보다 짠 바다 냄새가 콧속으로 훅 파고들었다. 서빙되어 온 알맞게 익혀진 소라와 고둥, 새우, 신선하게 살아있는 굴 몇 조각들을 음미하며, 팬데믹 시대의 희한한 감정들이 뒤섞인다. 오늘은 상당한 시간 만에 즐기는 외출이다. 죄책감 없이 즐기자. 아직 공식적인 셧다운은 아니지 않은가. 몇 개월 동안 텁텁한 실내 공기에 내 몸뚱이는 막혀 있었고, 바깥공기의 기억을 잃어버리기 직전 겨우 느껴본 상쾌함이니까 괜찮다. 하지만 모두의 상황은 마찬가지인데, 인파에 질리지 않는다는 건 지금의 나 빼고 대부분 걱정하며 외출을 자제하는 반증이기도 하다.


바다는 새파란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다. 좀 더 들여다보면 자갈 하나하나 그 모양새까지 다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다. 처음 접해보는 도심 해안의 맑은 물가라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릴 정도다. 근처 게랑드 소금 생산을 위해 생태관리가 엄격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여기서 30km 더 동쪽 루아르 강 방향으로 향하면 커다란 생나제르 (Saint Nazaire) 산업 항구 도 있어 더욱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줄어든 인간의 발길 덕에 올해가 유난히 맑은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이 투명한 바닷물이 내륙 갯벌로 굽이 흘러 반짝거리는 소금 결정체로 피워내겠지. 올여름 채취된 소금은 왠지 예년보다 더 청결할 거란 생각에 돌아가는 길에 천일염을 구입했다. 1kg에 2유로가 채 되지 않는다. 뙤약볕에서 고생했을 팔뤼디에 (Paludiers, 염전 일꾼)의 한 줌의 대가는 1유로를 넘겼을까? 소금 한 포를 사면서 또다시 뻔뻔한 걱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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