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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립소 Jul 05. 2021

이방인의 국밥

완도 여객터미널에서 순댓국


다시 떠올려봐도 참 미련한 여정이었다. 김포에서 제주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S은 굳이 육로로 이동하여 완도에서 페리를 타고 입성하고 싶어 했다. 하루를 꼬박 이동만으로 허비하는 일정이었지만 움직이는 동안 차창 너머로도 풍경을 구경할 수 있지 않냐며 계획만으로도 신나 했다. 정작 고속버스 안에서 눈부신 석양에 물든 완도대교를 만났을 때 그는 열심히 고갯 춤추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이마저도 한국 우등버스의 안락함을 경험하였으니 또한 좋은 일이었다고 두고두고 얘기한다.


5시간이 넘는 버스 이동시간 중에 두 번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S는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장르의 일렉트로닉 뮤직 뽕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후각까지 자극하는 군것질 향연을 보며 새로운 세상을 만난 양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호기심에 구입한 이런저런 주전부리 때문에 완도에 도착했을 땐 저녁시간이 지났음에도 허기가 지지 않았다. 여객터미널 근처에 잡아 둔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밤섬을 걸었지만, 낮과 다름없이 환한 도심과는 다르게 이곳은 참 적막했다.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듬성듬성 켜진 가로등과 정박된 아롱거리는 배들의 불빛으로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며 걸었다. 인근을 짧게 산책하고 더 이상 할 게 없자 결국 저녁이나 먹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막상 뭔가 먹으려고 하니 문 연 식당은 없었다. 너무 시간이 늦어버린 거다.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불이 환하게 켜진 노란 간판의 순댓국집을 만났다. S에게 순댓국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더니 흔쾌히 먹어보겠다고 했다. 입구를 열고 들어가니 티브이를 보며 홀을 지키던 주인아주머니가 어서 오셔 하며 앉아있던 의자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우릴 맞이한다. 한 그릇은 순대만 넣어주고 다른 한 그릇은 부속 내장까지 넣은 일반 순댓국으로 두 그릇을 주문하자 주방에 들어가 몇 분 뚝딱 거리시더니 금세 한상 차려져 나온다. 서빙된 국밥을 앞에 놓고 낯선 언어로 대화하는 우리를 빤히 보더니 아주머니가 " 외지에서 오셨나베?" 라며 툭 던지듯 질문을 하신다.


" 네,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데 한국에 휴가 왔어요"


" 웜매, 완도 바닥에 나보다 멀리서 온 양반들은 또 첨 보네 "


" 사장님은 어디서 오셨는데요? "


" 나는 쩌어 부산서 완도로 시집왔지 "


아닌 게 아니라 아주머니 말투에서 전라도의 억양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산 사투리를 쓰는 거 같지도 않았다. 본래 부산에서도 크게 사투리를 쓰지 않는 지역에서 자랐거나, 아님 시집와 사는 세월 동안 찐한 전라도 사투리에 그녀의 원래 말투가 희석된 것이라 생각했다. 부산에서 완도, 한반도 남쪽 바다 동, 서의 끝자락. 어마어마한 큰 내륙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극단의 거리도 아니지만 한국인인 내가 살고 있는 딴 나라보다 완도 여객터미널 근처에서 순댓국집을 하고 있는 부산 출신의 50대 여주인이 왠지 더 이방인스럽다. 어떻게 완도 남자를 만났을까 하는 사사로운 궁금증도 생겼지만 차마 묻진 않았다.


썩 배고픈 상태는 아니었지만, 뽀얗게 우러난 돼지 육수가 전두 지휘하는 순댓국의 건더기를 열심히 집어먹고 남은 국물에 흰쌀밥까지 말아 깨끗이 비웠다. 향긋한 부추 절임은 돼지 국물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동남아식 억센 부추 말고 부드러우면서 강직하게 제 향기 뿜어내는 고국의 이 부추가 그리웠다. 제주를 통과하는 길목이었을 뿐인 완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순댓국을 오래고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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