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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립소 Jul 18. 2021

벨빌과의 결별

중국식 수타면 국수

벨빌 Belleville, 아름다운 도시라는 이름과는 달리 오랜 기간 이민자의 동네로 파리의 몇 안 되는 빈민 구역 중 한 곳. 80년대부터 중국인들이 터를 잡기 시작해 파리의 또 다른 중국인 동네가 되었지만, 13구와 1구의 차이나 타운과는 뭔가 다른 더 묵직하고 암울한 공기가 맴도는 곳이다.

그럼에도 파리 20구에 살던 시절 나는 벨빌에서 많은걸 해결했다. 집에서 머물었던 그대로 눌린 머리 손가락으로 쓱 한번 빗어내고 외투만 걸쳐 슬렁슬렁 나서도 부담 없는 곳. 유학생의 주머니 사정에 걸맞은 값싸고 맛있는 식당들, 한국 식재료도 구비된 저렴한 아시아 슈퍼마켓들, 현지 미용실의 절반 가격인 중국인 미용실. 거기다 최대 5유로로 사치를 부릴 수 있는 힙스터 카페들의 언발란스함도 좋아했다. 공강으로 낮 시간이 여유로운 평일과 목전에 둔 과제나 시험이 없는 날에 어김없이 벨빌로 향했다.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동북아인들로 고향에 온 느낌이라고 하면 좀 과한 표현이지만, 인종차별 경험들로 켜켜이 쌓인 피해의식 때문에 살짝만 눌러도 어디로 튀어버릴지 모를 용수철 같은 내 감각들은 분명 벨빌에서만큼은 느슨해졌다.

무엇보다도 이곳의 중심도로 동명의 벨빌 길 언덕배기 초입에 위치한 수타면 집 동파는 내가 그 동네를 드나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투박한 면에 짭짤하게 훈연된 돼지, 야채 육수에 담겨 나오는 7,5유로짜리 ‘숩 스페시알 Soupe spécial’을 무척 사랑했다. 넉넉한 국수 위로  청경채, 육수에 푹 고아진 잘잘히 썰어낸 고기 조각, 중국식 무청 절임이 얹히고, 게다가 계란을 풀어 쪽파까지 종종 썰어 낸 모습이 마치 우리의 손 칼국수 같은 착각마저 들곤 했다.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홀 배식 창을 통해 여트막히 보이는 주방의 정력 넘치는 면치기를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였다. 소매를 어깨까지 말아 올린 중년의 아주머니는 끊임없이 손목을 움직이며 밀가루 덩어리를 늘이고 치대는 일을 반복한다. 그녀의 몸짓에 맞춰 늘어지는 흰 반죽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수타면은 그 면치기 여사님이 퇴근하는 오후 네시 이후에는 맛볼 수 없었다. 국수가 잘 팔리지 않아 저녁까지 치댄 면이 남아 있으면 모를까, 대부분 저녁에 주문하는 숩 스페시알은 시판용 중식면으로 삶기 때문에 숩 노말 Soupe normal, 그냥 평범한 국수가 되어버린다. 추운 겨울, 더운 여름 계절을 가리지 않고 몇 년 동안 점심을 위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었다. 가지런함은 찾아볼 수 없는 차림의 여사장은 살갑게 환영해주지는 않았어도, 검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로 맛보라는 동사를 툭 내뱉고는 만두 몇 알이 담긴 멜라민 접시를 슬쩍 밀어주거나, 잔돈은 쿨하게 받지 않거나 하는 단골에 대한 요즘 말로 츤데레스런 호의도 종종 베풀어 주었다. 중국인 손님에겐 엄청난 수다쟁이로 변신하며 걸걸한 목소리를 뽐냈던걸 보면 사장은 아무래도 불어를 잘하지 못해 내게 어쩔 수 없이 무뚝뚝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학생 신분이 종료됨과 동시에 낮시간이 없어진 탓에 나는 동파에 발길이 자연스레 뜸해졌고, 파리 외곽으로 이사한 뒤로는 벨빌을 가는 일 자체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부슬비가 쉬지 않고 내리던 어느 날. 동파 손칼국수가 갑자기 그리워져 퇴근길 S와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지하철 2호선 벨빌 역은 여전히 정신 사납고, 칙칙함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동파의 간판이 조금 다른 한자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저 한자만 바뀌고 간판 색이나 내부는 변함이 없어 2인석에 자리 잡았는데 그때의 츤데레 사장은 없었고 방긋방긋 잘 웃는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맞이했다. 그녀에게 수타면 소진 여부부터 물었다. 다행히 아직 남아있다고 대답했고 망설임 없이 숩 스페시알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날 서빙된 국수 그릇에는 여느 날과는 다른 고명이 하나 더 얹혀 있다.

풀어진 계란 위에 검고 구불구불한  하나. 누가 봐도 그건 인간의 은밀한 곳에서 떨어진 털이였다.  노란 계란 오믈렛 위에 선명하게 앉아있는  가닥은 보색 때문에 형광펜 그어진 단어처럼 눈에 띄었는데 음식을 내준 자도 서빙을  자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시간 동안 비어있는 상태라 잔뜩 쪼그라든 위장이었지만, 시각의 충격은 뇌관을 통해 재빨리 식사의 욕구를 잃도록 조종했다. 보통의 나라면 서버를 불러 분명  소리 했을 테지만, 그날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먹지 않을 국수 그릇에 젓가락을 담아 가라앉은 면을  한번 돌려 고명 위로 올려놓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오히려  녀석을 그릇 안으로  깊게 숨겨준 것이다. 식당을 향해 위생에 대해 큰소리 내는  지난  년간   국수로 치유받은  추억까지 와장창 깨부수는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콜라  병을 시키고 글라스 잔을 홀짝이며  집과 영원한 작별을 다짐했다. 그저 식당 하나 발길 끊는 일인데 지긋지긋한 오랜 연애의 마지막을 결심하는 감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날 저녁 S는 중국 식당 위생문제를 고발하는 르포타주 유튜브 링크를 문자로 보내줬다. 사람이 씻는 욕조 안에서 만두소를 위한 냉동 새우를 녹이는 장면을 보며 애인의 탈선을 목격한 것 마냥 가슴속이 묵직하고 메슥거렸다. 그렇게 난 아름다운 도시에 발을 끊었다.


2016년에 찍은 동파 수타면의 마지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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