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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인 전문직

[꼬문생각] 석규

  얼마 전, 1종 대형 면허를 취득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최근 카투사를 지원했다가 추첨에서 떨어진 것이 시작이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공군 운전병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알아보니 대형 면허는 가산점이 붙는다고 해서 곧바로 운전전문학원에 등록했다. (그저 간지가 난다든가, 언젠가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지면 버려진 버스를 몰고 도망갈 수 있다든가 하는 이유도 아주 조금은 있었다)


  1종 대형 면허는 대형 승합차와 화물차를 운전할 수 있는 면허다. 시험에는 약 11m 가까이 되는 길이의 대형 버스가 사용된다. 마침 시내버스의 운영 환경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기에, 게다가 집 바로 앞에 큰 버스 차고지가 있었기에 어쩐지 친숙했다. 사실, 재수를 하던 시기에는 ‘수틀리면 그냥 마을버스 회사나 들어가지 뭐~’ 하는 생각으로 성적에 대한 부담을 덜기도 했다. 뭐랄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운전 일을 좀 우습고 만만히 여긴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막상 (좀 많이) 커다란 운전대를 손에 잡자,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클러치와 액셀 페달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차가 울컥거리거나 시동이 꺼지기도 했고, 코너를 돌다가 연석에 올라타기도 했다. 무엇보다 앞바퀴가 운전석보다 뒤에 있고, 뒷바퀴는 훨씬 더 뒤에 있는 버스의 길이에 적응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다. 바퀴를 좌우로 정렬할 때마다 핸들을 돌리는 어깨가 아파왔고, 왼쪽 다리는 클러치를 조절하느라 뻐근했다. 2시간 교육을 받고 나면 기운이 축 빠져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흐느적거리곤 했다. 아마 학원 강사가 하나하나 알려준 ‘공식’이 아니었다면 한 번에 합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겨우 대형 면허를 취득하고 나니, 걱정이 앞섰다. ‘아, 이거 못 써먹겠는데?’ 면허는 땄지만 실제 도로에서 버스나 화물차 같은 대형차를 운전할 자신이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매일 타고 다닌 시내버스의 기사님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나는 혼잡한 도로 위에서 능숙하게 버스를 몰며 승객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일을 화장실도 몇 시간씩 참아가며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 그러니 문득 드는 생각은, 소위 전문직이라 하는 변호사니 회계사니 하는 이들만큼이나 버스 기사들 역시 엄-청 어려운 일을 맡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이들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른바 미숙련 직종이라 불리는 직업들이 다들 그렇지 않나 싶다. 물론 변호사니 의사니 하는 이들 역시 분명히 우리 사회에 필요하겠지만, 버스나 화물차 기사, 경비원, 카페 알바생, 청소 노동자, 요양보호사나 배달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필요하지 않나? 마찬가지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이들 아닌가? 꽤 오래전 트위터에서 본 ‘미숙련 직종은 빈곤 임금을 정당화하기 위한 계급주의적 미신이다’라는 짤이 생각난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이들보다 훨씬 더 우리 생활에 가까이 있는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가까운 만큼이나 쉽게 잊힌다. 내가 ‘수틀리면 들어갈’ 직업으로 여겼듯이,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여겨지거나, 역할 자체를 무시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불법 주차된 차들로 가득한 골목길을 능숙하게 지나가는 버스 기사나, 리프트 없는 트럭에서 대형 냉장고를 손수레 위로 물 흐르듯 내리는 설치 기사가 ‘미숙련’ 노동자일 수가 있나? 다른 게 전문직이 아니라 이게 전문직 아닐까?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직업을 전문직으로 대하기로 했다. 충분히 전문적인 1종 대형 면허는 변호사 면허와 구분할 수 없으며… 어쩌구…


[그림 1] ‘“미숙련 직종”은 빈곤 임금을 정당화하기 위한 계급주의적 미신이다’ ⓒ트위터(현 X)
출처: https://twitter.com/anarchistart_/status/1751793989181693954


석규 | ksk0303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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