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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ADHD

[꼬문생각] 민상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하루에 유튜브 스크린 타임이 2시간이라고 하는데요, 그중 다수를 쇼츠 시청에 사용하는 남자! 하지만 하찮은 피크가 될 운명이죠.[1]


독자 여러분은 루퍼트의 눈물을 아시는지. 녹인 유리가 급속히 냉각될 때 장력과 응력이 신묘한 조화를 이뤄 만들어지는 물질로, 총알에 맞거나 유압프레스에 눌려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경도를 자랑한다. 이때 냉각 속도에 따라 루퍼트의 눈물의 경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유리를 물에 떨어뜨릴 때 나름의 기술이 요구된다. 유튜브 쇼츠에서 관련된 영상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이젠 준비 상태만 봐도 실험의 성패가 보일 정도다. 뜨거운 유리가 물에 떨어져 빠르게 식으며 쉬이익 소리가 날 때, 나는 엄지손가락을 스와이프해서 다음 영상으로 넘긴다. 결말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난 당최 무엇을 위해 몇 시간째 엄지손가락을 위아래로 휘적이고 있는 걸까. 엄지손가락 운동을 위해서?


지금 두 달 동안 콘서타를 먹지 못했다. 작년 9월에 처음으로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2주 간격으로 약을 받아 꾸준히 먹어오다가, 예약일을 한번 까먹은 뒤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쪽팔림 반, 우유부단함 반이다.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도파민의 재흡수를 억제해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콘서타는, 치료제가 아니라 약효가 지속되는 12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시켜주는 안경이나 인공보철에 가깝다. 처음 콘서타를 복용했을 때가 생각난다.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집중’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게 된 날이다. 나는 그때까지 ‘집중’과 ‘몰입’을 구분하지 못했다. 몰입이 곧 집중인 줄만 알았다. 아무것도 보이고, 들리지 않는 무아지경, 주화입마의 경지 말이다.


문제는, 그런 몰입의 상태에 도달하지 않으면 집중을 요하는 대개의 일들에 착수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콘서타를 먹은 각성상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타고났지만 적절한 수준의 산만함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자극에 열려있으면서도,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각성이 아니었다. 1초에도 수 개씩 떠오르는 딴생각들을 실천에 옮기지 않아도 되도록 억누르는 쪽에 가까웠다.


독립철학자 김곡은 ADHD가 단순한 정신병리 현상이 아니라 현대인의 존재론적인 상태가 반영된 사회적 질환에 가깝다며, 자아와 세계 사이의 경계가 해체되어 끝없이 뻗쳐나가는 ADHD적 자아의 기제를 ‘나르시시즘’이라고 명명한다.[2] 당사자로서는 괜히 삐뚤어져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산만하고 쇼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6.76인치의 스크린으로 비춰볼 수 있는 세계가 산만하고 바다만하고 하늘만하고 우주만해서이다. 이것 좀 놔봐 니가 먼저 꼬셨잖아인 것이다.


이연숙은 트위터에 대해 ‘한심하고 쓸모없는 중독자들을 양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매체라고 한 적 있지만,[3] 쇼츠는 한심함과 쓸모없음과 중독자 양산의 모든 부문에서 트위터를 압도한다. 트위터가 팔로워, 리트윗, 맘찍 등의 사교적인 것으로 위장한 보상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쇼츠에는 그런 것조차 없다. 열심히 몇 시간 동안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기진맥진함과 한껏 뻐근해진 존재감, 시간을 허비했다는 공허함이 남을 뿐이다. 쇼츠는 트위터와 같은 느슨한 공동체(처럼 보이는 것)조차 형성하지 못한다. 아무리 ‘채널 추천 안 함’을 눌러도 여자 아이돌들의 논란, 관음증적인 편집 영상, 좌·우를 가리지 않는 렉카형 정치 유튜버들의 저질 영상을 ‘추천받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쇼츠는 공동체를 생성하는 대신 논란의 네트워크에 시청자를 강제로 연루시킨다.


여기에는 어떠한 낙관도 불가능하다. 대신 나는 하나의 통일성 있는 알고리즘으로 집약되지 않는, 우연하고 쓸데없고 알고리즘 바깥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알고리즘들에서 그나마의 숨통을 찾는다. 내 경우엔 어린 시절, 공룡을 좋아할 때 열심히 보았던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의 쇼츠였는데, 불현듯 ‘테리지노사우루스’라는 이름이 머릿속을 스친 이후 그 시절 좋아했던 모든 공룡의 학명이 기억나버려 지금도 내 눈앞을 어른거린다. 그 김에 내가 어릴 때는 앞발과 손톱 화석밖에 발견되지 않아 미지의 공룡이었던 테리지노사우루스의 골반 화석이 추가로 발견돼 생물학적인 윤곽이 더 명확해졌다는 그의 근황(?)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 티라노사우루스를 제치고 가장 큰 육식공룡으로 잘못 알려졌던 스피노사우루스, 알도둑이라는 누명을 썼던 오비랍토르, 한때 나의 장래 희망이었던 벨로시랩터도 모두 반가운 이름들이다. 벨로시랩터를 몇 번 검색했더니 렙틸리언 음모론 영상이 알고리즘에 추가되었다. 대개가 이런 식이다. 지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렙틸리언과 그림자 정부를 걱정하면서 이미 마크 주커버그와 순다르 피차이가 나의 뇌에 매설해 놓은 도파민 회로를 따라간다.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말랬는데, 그러기에 이 길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길이므로.

 

다음 주에는 꼭 콘서타를 받으러 가야겠다.


민상 | hitch9662@gmail.com


[1] ‘여기 한남자가 있습니다’는 다른 유튜버의 영상에 TTS 나레이션을 붙여 가공하는 다수의 양산형 쇼츠가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오프닝 멘트이다. ‘하지만 하찮은 피크가 될 운명이죠’는 다양한 재료로 피크를 만드는 유튜버 ‘잼스기타’의 오프닝 멘트이다.

[2] 김곡 (2021). 과잉주체. 25. 

[3] 이연숙 (2023.07.13.). 〈진격하는 저급들〉 5장: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 [온라인 게시물].


참고문헌


단행본

김곡 (2021). 과잉주체. 한겨레출판.


기사 및 온라인 자료

이연숙 (2023.07.13.). 〈진격하는 저급들〉 5장: 한심하고 쓸모없는 트위터 중독자들 [온라인 게시물]. 접속일 2024.02.18.. Retrieved from http://semacoral.org/features/yeonsooklee-advancing-of-low-5-pathetic-useless-twitter-addi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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