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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2216편

[시선] 편집위원 석규

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오전 8시 59분, 방콕발 무안행 제주항공 2216편 항공기가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새떼와 충돌했다. 2216편은 즉각 즉시 착륙을 중단하고 다시 상승한 뒤 급격히 선회하여 반대 방향으로 활주로에 재진입했다. 그러나 오전 9시 3분, 미상의 이유로 랜딩기어(착륙바퀴)를 펴지 않은 채 동체착륙하였고, 속도를 충분히 감속하지 못해 활주로를 벗어나 계기착륙 유도 시설인 로컬라이저 구조물에 충돌하여 폭발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탑승객 181명 중 승객과 승무원 179명이 사망했고, 승무원 2명이 부상을 입은 채 구조되었다.


비행 기록 장치, 조종석 녹음 장치, 교신 기록, 추락 잔해 등을 정밀히 조사하는 데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항공사고의 특성상 사고의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기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로서 추정되는 원인은 조류 충돌로 인한 엔진 손상이고, 쉽게 부서지지 않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로컬라이저 구조물이 피해를 키웠다는 평가가 주류 의견이다. 그러나 3분만에 급하게 착륙을 다시 시도한 이유와,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이유 등은 여전히 의문 속에 남아있다. 게다가 비행 기록 장치와 조종석 녹음 장치가 추락 4분여 전부터 작동하지 않았음이 밝혀지면서 진상 규명까지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1] 보잉 737 여객기의 결함 여부나 제주항공의 무리한 기체 운용, 정비 불량 등 확인되지 않은 다른 사고 원인 역시 조사 중에 있다.


12·3 내란으로 인해 대통령,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 사고에 대응할 주요 직책이 공석이 된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최상목 경제부총리,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 고기동 차관, 경찰청장 직무대행 이호영 차장 등이 사고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곧바로 무안군 전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한 뒤, 참사 당일부터 일주일 후인 2025년 1월 4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무안국제공항을 임시 폐쇄했다.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전라남도 등의 관계부처 공무원들은 무안국제공항에 배치되어 유가족 지원을 담당했다. 참사 사흘 만인 12월 31일에는 10.29 이태원 참사 당시와는 달리 희생자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합동 분향소가 무안국제공항에 설치되었다.[2]


유가족들은 대응을 위한 협의회를 빠르게 구성했다. 정부가 유가족 간의 연락을 막아 유가족 협의회 구성에 한 달이 넘게 걸린 10·29 이태원 참사와는 대조적이었다. 12월 30일 발족한 유가족 협의회는 희생자 신원 확인, 장례 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사고 수습과 진상 규명에 노력하고 있다.


한편 유가족 협의회의 대표를 맡은 박한신 씨가 ‘가짜’ 유족이라는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사고로 희생된 동생 박병곤 씨의 이름이 초기 언론에 보도된 탑승객 명단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오기된 명단이었다)과, 박한신 씨가 SNS에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게시글을 올린 적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3] 이 외에도 MBC의 방송사고 화면에 등장한 ‘탄핵 관련:817’이라는 문구와 생성형 인공지능 ‘Chat GPT’를 근거로 해당 참사가 북한과 좌익 세력이 벌인 테러라는 등의 황당무계한 음모론이 등장하기도 했고, 충돌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조작되었다거나 영상 제보자가 사고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등의 음모론도 등장했다. 사고의 책임이 무안국제공항에 국제선 항공편을 유치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나 전라남도에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참사를 이용해 야당과 호남 지방을 비난하는 극우 네티즌들도 있었다.[4]


특히, 참사 초기에는 사고의 원인을 무안국제공항의 구조물로 단정짓고는 참사의 명칭을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공업계의 국제적 관례에 따르면 항공사와 숫자로 이루어진 사고기의 항공편명, 즉 ‘제주항공 2216편 사고’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5] 국토교통부와 제주항공이 공식 명칭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재확인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단체들은 여전히 ‘무안공항 항공 사고’로 표기하는가 하면, 극우 기독교 세력의 지도자 중 하나인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사고라며 망언을 내뱉기도 했다.[6]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여자 기장은 걸러야 한다”며 근거 없이 기장의 성별을 추측하고 비난하는 등 여성 혐오를 조장하거나 저비용항공사(LCC)를 선택한 희생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등 희생자와 유가족을 조롱 또는 비하하는 악성 게시글이 등장했다. 전라남도 경찰청은 이러한 악성 게시글 작성자를 추적하여 6명을 검거하였고, 427개의 게시글 및 댓글을 삭제 및 차단 조치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섰다.[7]


혐오 세력이 활개친 온라인 공간과 달리, 사고 현장에서는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다. 전라남도에 따르면 사고 이후 무안국제공항에는 하루 평균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들었다.[8] 초등학생부터 휴가 나온 군인까지, 수많은 이들이 연말 휴일을 포기하고 유가족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식당과 카페에는 어느 시민이 이들을 위해 ‘선결제’를 해두었다는 안내문이 붙었고, 핫팩과 담요, 양말과 세면도구 등 기부된 생활용품들이 도착했다. 컵라면과 김밥 등이 배달되고, 〈흑백요리사〉(2024)로 이름을 알린 안유성 셰프와 인근 지역 주민 등이 전복죽과 떡국 등을 준비해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끼니를 제공해주었다.


연대의 손길은 12.3 내란으로 탄핵 시위가 한창인 광장에서도 계속됐다. 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은 12월 31일로 예정되었던 ‘아듀 윤석열 송년 콘서트’를 취소하고 전국 기자회견으로 대체했다. 1월 4일에는 비상행동 개최 5차 시민대행진에서 추모를 위한 묵념으로 집회를 시작했고, 이후 많은 참가자들은 추모의 뜻을 담은 검은 피켓을 들거나 깃대 위에 검은 근조 리본을 달기도 했다.[9] 제주항공의 모기업이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책임을 지기도 하는 애경그룹에 대한 불매운동 역시 다시 주목받았다.


희생자 179명의 신원이 모두 확인된 이후, 1월 8일 3살 자녀를 포함한 일가족 3인의 발인을 마지막으로 모든 희생자들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됐다. 1월 1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희생자들의 합동 영결식과 추모식 개최로 무안공항에서의 상황은 마무리되었지만, 1년여 간 이어질 사고 조사와 이후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는 여전히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음모론과 혐오를 깨어내고, 연대하는 시민은 참사의 상처를 치유해낼 것이다.


편집위원 석규 | ksk030306@gmail.com




[1]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저장 안돼” (2025.01.11.). 한겨레.

[2] 이태원참사 유가족 "윤석열 직무정지돼 그나마 다행" (2024.12.31.). 오마이뉴스.

[3] “‘가짜 유족’ 음해에 큰 고통”…제주항공 참사 유족 법적 대응 (2025.01.03.). 한겨레.

[4] 제주항공 참사 제보자도 분노한 유튜버들의 선 넘은 '음모론' (2024.12.30.). 오마이뉴스.

[5] 국토부·유가족 "사고 공식 명칭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2024.01.10.). 연합뉴스.

[6] 전광훈, 제주항공 참사에 "사탄에게 허락한 것" 발언 논란 (2024.12.31.). 뉴시스.

[7] 전남경찰,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모욕 누리꾼 추가 검거 (2025.02.07.). 연합뉴스.

[8] “남일 같지 않은 재난…뭔가 보태고 싶어” 무안공항 달려온 사람들 (2024.12.31.). 한겨레.

[9] '응원봉' 대신 '검은 리본'‥'추모' 담은 탄핵 촉구 집회 (2024.12.30.). MBC.




참고문헌


기사 및 온라인자료


박성우 (2024.12.30.). 제주항공 참사 제보자도 분노한 유튜버들의 선 넘은 '음모론'. 오마이뉴스. Retreived from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2556

손구민 (2024.12.30.). '응원봉' 대신 '검은 리본'‥'추모' 담은 탄핵 촉구 집회. MBC. Retrieved from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desk/article/6672194_36515.html

이영광 (2024.12.31.). 이태원참사 유가족 "윤석열 직무정지돼 그나마 다행". 오마이뉴스. Retrieved from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92885

이정하 (2025.01.11.).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저장 안돼”.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7414.html

정다움 (2025.01.10.). 국토부·유가족 "사고 공식 명칭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연합뉴스. Retreived from https://www.yna.co.kr/view/AKR20250110128000054

정인선, 정대하 (2025.01.03.). “‘가짜 유족’ 음해에 큰 고통”…제주항공 참사 유족 법적 대응.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area/honam/1176180.html

정인선, 천경석 (2024.12.31.). “남일 같지 않은 재난…뭔가 보태고 싶어” 무안공항 달려온 사람들. 한겨레. Retrieved from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75692.html

정회성 (2025.02.07.). 전남경찰,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모욕 누리꾼 추가 검거. 연합뉴스. Retrieved from https://www.yna.co.kr/view/AKR20250207116500054

홍주석 (2024.12.31.). 전광훈, 제주항공 참사에 "사탄에게 허락한 것" 발언 논란. 뉴시스. Retrieved from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231_000301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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