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편집위원 하영
지난 2024년 9월 5일, ‘디지털 성폭력에 함께 분노하는 정치인들’이 주최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에 《고대문화 편집위원회》가 패널로 참여하였다. 토론회에는 장혜영 전 정의당 국회의원,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수진 초등성평등교사모임 아웃박스 교사,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이 참석했다.
[그림1]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 패널 단체사진 ⓒ장혜영
왼쪽부터 장혜영, 박지현, 원하영, 백운희, 김수진, 정지혜, 권김현영 패널. 패널들 뒤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라고 적힌 화면이 보인다. 그림 설명 끝.
[그림2] “디지털 성폭력 박멸하라!” 피켓 ⓒ장혜영
토론회 참여자들과 패널들이 함께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하라!”, “디지털 성폭력 박멸하라!”, “정치가 해결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림 설명 끝.
다음은 고대문화 발언문 전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고려대학교 교지 고대문화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인 원하영입니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로 불거진 디지털 성범죄는 오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거 소라넷부터 N번방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해서 발생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20년 N번방 사건은 국민적 관심을 받았으며, 2021년에 법무부는 디지털 성범죄 대응 TF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취임 직후 TF를 해산하였을 뿐 아니라,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번 딥페이크 사태는 디지털 성범죄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명백한 정부와 그리고 정치의 잘못입니다.
현재 딥페이크 성범죄는 연예인뿐 아니라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인까지 그 피해 범위가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 여성 교사까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그리고 10대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수라는 사실은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 교육 현장에서조차 기본적인 상호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게 하고, 그동안 여학생들에게 ‘조심’하라고 ‘교육’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혹자는 딥페이크 범죄에 악용될까 두려워 자신의 사진이 드러난 SNS를 비공개 처리하는 여성들에게 ‘유난’이라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이는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것은 유난이라 치부하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수사를 통해 가해자를 찾아내고 그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는 것만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책무가 끝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물론 가해자에게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것은 피해자의 회복과 응보적 차원에서 당연히 수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고, 디지털 성범죄를 일부 ‘악마 같은’ 개인의 범죄로 치부하는 것에 그친다면 딥페이크 범죄는 그 형태만 바뀌어 계속해서 등장할 것입니다. 마치 2020년 N번방 이후 2024년 현재 딥페이크 범죄가 발생한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처벌을 넘어 우리는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딥페이크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가능케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반드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개별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중심적인 우리 사회 속 여성 혐오의 명백한 결과입니다. 개별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고 악마화하는 것은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감출 뿐입니다. 텔레그램에서 ‘지인 능욕방’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인물의 사진 혹은 불법 촬영물 등을 업로드하고 유통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능욕’이라는 단어로 알 수 있듯 피해 여성은 가해자가 소유하고자 하는 객체로 여겨질 뿐입니다. 또한 딥페이크 합성물을 유통하고 돈을 벌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여성의 신체를 ‘상품’이자 돈이 되는 ‘자원’으로 여기는 행위입니다. 결국 딥페이크 성범죄는 일부 사회 구성원, 일부 가해자의 ‘악마 같은’ 행위라기보다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일종의 상품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여성 혐오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에브리타임과 같은 학내 커뮤니티에서는 ‘22만 명’이라는 숫자가 통계적 오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며. ‘모든 남자들이 그런 건 아니다’,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마라’라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저 또한 22만 명이라는 아연한 수가 그저 통계 오류이길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로 가해자가 22만 명인지 아닌지를 따지고,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니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지 말라는 말들은 피해자의 회복에도, 그리고 또 다른 범죄를 예방하는 것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다수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히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범죄를 지금껏 암묵적으로 묵인한 것이 바로 우리 사회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끝내 함께 살아가길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텔레그램 방의 모든 가해자를 잡아 평생 감옥에 보낸다고 한들 비슷한 범죄는 그 형태만을 바꾸며 계속해서 등장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ㅡ피해자와 연대하고,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ㅡ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더 거대한 구조를 논하고 그에 균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림3] 다른 패널들의 발언문이 담긴 토론회 자료집 링크 ⓒNAVER
토론회 자료집에 접속할 수 있는 QR코드. 그림 설명 끝.
편집위원 하영 | choibook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