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편집위원 정후
0. 학생회에 들어가기까지
나는 2024년 3월에 총학생회 재선거를 통해 당선된 고려대학교 제54대 총학생회 [나날]에서 인권복지국장을 맡았다. 생활도서관과 소수자인권위원회 등에 속해 있던 나는 2022년 총학생회 퀴어퍼레이드 참가 무산 사건,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차원의 지속적인 세종캠퍼스 혐오 발언 등을 같은 단위에 속한 선배들에게 들어왔기 때문에 제53대 총학생회 [새솔] 출신들이 주축이 된 [나날]에 대한 경계가 있었다. 하지만 2023년에 겪은 인권 주간 무산과 퀴어퍼레이드 불참에 대한 어떠한 논란조차 제기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며 그렇게 행하는 총학생회를 비판하면서도, 직접 학생 사회에 개입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말해봤자 에브리타임에서 욕만 먹고 끝날 거야’ 식의 분위기가 팽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점점 학내 인권 단체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안전하게 갇힌’ 공동체를 만들고, 소위 ‘이대남’을 욕하는, 트위터와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버전이 되는 게 아닐까 등의 생각을 했다. 따라서 주변의 수많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당 직을 수락했다.
나는 「학생회에 새솔이 날 수 있을까요」에서 언급한 선택지, ‘학생회에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1] 국서의 충분한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받은 상태로 임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 국서만 따로 인권 정책을 실행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국원 차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국서의 부국장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여러 학내 단체의 장 혹은 위원들에게 국장/부국장직을 제의했으나, 다들 총학생회 활동보다 자신들의 단위에서 활동하는 게 더 유의미할 것 같다는 의견과, 해당 단위를 유지하는 데에도 많은 힘이 소진된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 의사를 밝혔다. 국원 면접을 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단위의 성원들에게 국원직을 제안했으나 앞선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모두 수락하지 않았다. 면접에 지원한 국원들조차 인권 의제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1순위로 지원한 국서는 따로 있고 2순위로 ‘무난하게’ 지원한 것이었다.
1. 고려대학교 축제 준비위원회
그렇게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4·18 기념, 5·18 기념사업들이 지나면 간식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고, 7월은 농민 학생 연대활동, 8월은 정기 고연전 준비, 9월은 정기 고연전 진행, 10월은 인권 주간과 지속 가능 주간 준비, 11월은 인권 주간과 지속 가능 주간을 진행했고, 중간에 회칙개정특별위원회와 배리어프리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나니 어느새 임기가 끝나 있었다.
퀴어 퍼레이드에 관해서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 인권복지국의 이름으로 참여하자는 안건을 올렸으나, ‘전체 학우의 의견을 모르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뻔한 이유로 부결되었다. 그들의 근거는 에브리타임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롯되었다. 고려대 재학생으로 인증받은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퀴어에 대해 불호의 입장을 표하는 학우들이 존재하므로 이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정치적 중립은 허상’이라고 끝없이 말해봤자, 그들에게 그것은 ‘지켜야만 하는 허상’이었고, 그토록 지켜야 하는 이유는, 에브리타임에서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가 전해 들은 2022년 퀴어 퍼레이드 참가 무산과 달리, 학내에서는 퀴어 퍼레이드 무산에 대한 그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이는 2023년 총학생회가 인권주간을 개최하지 않기로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더 이상 반(反)인권의 분위기가 반인권으로 인식되지 않은 채 학생 사회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총학생회의 가장 주요한 사업은 대동제, 입실렌티 그리고 고연전이었다. 대동제 자체는 [나날]이 3월 재선거를 통해 당선되었기 때문에 ‘대동제준비위원회’라는 총학생회 중운위 산하 기구로 운영이 되었으나, 총학생회 국장단과 국원들이 많이 참가한 상태였고, 총학생회도 인력 파견을 나가서 운영을 맡았다. 이는 응원단이 주최하는 입실렌티도 마찬가지였으며, 체육국 주최의 정기 고연전 또한 적극적으로 인력 파견이 파견되었다. 고연전에서는 환경고연제, 사이버고연제 등 체육국 주최의 정기 고연전 이외에도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여러 사업을 부차적으로 진행했다. 대동제나 고연전 같은 행사는 기업에 가장 ‘잘 팔리는’ 행사였으므로, 이를 통해 최대한 많은 기업과 제휴하려 했다.
2023년 처음으로 개최된 총학생회 산하의 가을 축제 역시 올해 다시 열렸는데, 이는 총학생회가 기업과 여러 행사를 함께 진행하며 받은 제휴비를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행사였다. 학생회는 고연제 때 각종 기업을 홍보하며 받은 돈들을 축제에 쓰는 것이 ‘학교를 팔아서 얻은 돈을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총학생회는 정치적인 의결 기구가 아닌 작은 행사대행업체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업과 제휴를 맺고, 학생들에게 행사를 열어주며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종의 작은 기업에 취업해 있는 자신, 그리고 행사를 위해 밤을 새우며 회의하고 업무하는 자신에 취해있는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자기 착취와 자기애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기계발적 주체’들의 온상이었다.
이들 학생회의 ‘정치적인 기구로서의 정체성’은 회칙을 개정할 때만 발휘된다. 어떠한 사업을 진행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두 가지는 ‘1.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는가?’, ‘2. 회칙에 어긋나지 않는가?’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날]은 총학생회칙을 전면으로 개정하는 사업을 통해 민주적 의결 기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 했고, 제도적 정당성은 그 제도가 옳은가 옳지 않은가에 대한 성찰 없이 그들이 최우선으로 신봉하는 가치였다. 제도적으로 정당하고 효율적이라면 무엇이든 승인될 수 있었다.
어느 관료제나 그렇듯이 총학생회는 이 제도를 맹신함으로써 결정에 대한 책임을 끝없이 유보했다. ‘전체 학우의 의견이 뭔지 모른다’라는 이유 하나라면 반대의 근거가 완성되었다. 중운위에 속한 단과대 회장들이 모르면 전체학생대표자회의로, 학과 회장들과 단과대 회장들이 모인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모르면 학생총회를 열어야겠지만, 학생총회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의사 결정 방법이기에 열리지 못한다. 상위기구의 상위기구로 끝없이 결정을 위임하는 제도와 효율에 대한 맹신이 만나서 결국 원하지 않는 사업을 진행하지 않을 수 있는 제도적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했다.
그리고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 12월 6일 ‘계엄 주동 세력의 반민주적 내란 행위 규탄을 위한’ 고려대학교 학생총회
비상계엄 선포 이후 ‘계엄 주동 세력의 반민주적 내란 행위 규탄을 위한’ 고려대학교 학생총회 소집이 결정되었다. 최대한 정치적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총학생회는 계엄이라는 정치적 사태 앞에서도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렇기에 선택한 방법이 이미 종결되었다고 (본인들만의 생각이지만) 여겨지는 과거의 고려대 민주화 운동을 피상적으로 호명하는 것이었다. 4·18 운동과 같이 과거 고려대 학생들의 사건을 불러오는 것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계엄 사태와 거리를 두면서도, 캠퍼스 밖의 사건들과 연결될 필요 없이 계엄 사태를 고려대 내부의 일로만 만들 방법이었다.
대자보의 제목인 ‘친애하는 고대 학생 제군! 한마디로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표상이다.’는 고려대학교 4·18 선언문에서 가져온 것이고, “우리는 64년 전, 선배 고대 학생 제군들의 피로 쓰인 민주화의 역사에 다시 섰다 (…) 내외의 모든 힘에 대하여 저항하는 것은 대학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자 의무 (…) 우리는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맞서 싸운 고려대학교 정신을 기억하며 (…) 우리 민족고대 학생 제군은 우리 선배 고대생이 그러했듯”과 같은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대학교 재학생이라는 특권을 내세우면서도,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각각 “반국가세력 (…) 계엄 및 내란세력”,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 일어설 때이다 (…) 기꺼이 반국가세력을 자청 (…) 헌법 앞에 단죄 (…)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라며 명시하지 않은 채로 과거 민주화 운동을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불과한 허울뿐인 대자보였다. 그들이 아는 것은 학생회 차원에서는 맥이 끊긴 과거의 민주화 운동뿐이었기에, 일그러지고 뒤틀리고 왜곡된 총학생회 차원의 대응이 이어졌다.
이렇게 대자보가 작성된 또 다른 이유는 다른 학교의 총학생회들과 함께 속한 ‘총학생회 공동 포럼’ 때문이었다. 12월 4일에 총학생회 명의로 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부착하기 이전, 포럼에 속한 연세대·서강대·성균관대와 대자보를 부착하는 시간과 어느 정도의 강도로 사태를 비판할 것인지 ‘톤’을 합의했다. 이런 이유로 ‘퇴진’이나 ‘탄핵’이라는 단어나, 계엄에 동조한 ‘국민의힘’을 언급하지 않은 대자보가 작성되었다.
12월 6일에 열린 학생총회는 퇴진을 위한 후속 행동의 의지가 있어서 열린 것이 아니라, 정세의 흐름에 따라 열린 것이고, 학생총회를 주도했던 의사조정위원회 위원 중 그 누구도 후속 행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왜 학생총회를 열어야 하는지, 어떤 의미에서 열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에 학생총회는 그저 정세에 따른 후속 행동을 위한 제도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정회 이후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자 의사조정위원회는 약 50분 만에 쉽게 학생총회의 후속 행동에 대한 의결 사항을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위임하며 총회를 산회했다.
그 후에 학생총회를 쉽게 산회한 것에 대해 에브리타임에서 비난 여론이 만들어지자, 전체 학생대표자회의에서 후속 행동에 관한 안건을 논의하겠다는 결정을 무르고 다시 학생총회를 열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그들의 제도적 정당성에 대한 허상의 믿음이 드러난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후속 행동을 의결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정당한 행위지만, 그들은 에브리타임에서 예상되는 반대 분위기와 현 여론에 근거하여 ‘현재 학우들이 학생총회를 원하기도 하고, 중대한 사안이기에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의결하는 것보다는 학생총회에서 의결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말을 바꿨다. 현장에서는 여러 학우가 ‘현재 저녁 시간이 지난 상황에서 학생총회를 다시 소집하면 정족수가 채워질지 확실하지 않고, 그러면 정작 중요한 후속 행동은 못할 수 있다’고 (다음날은 국회에서 탄핵안 표결이 있는 날이었다) 주장했다. 그러나 학생회에 속한 대다수의 사람은 후속 행동보다도, 제도적 정당성보다도 에브리타임에서 욕을 먹지 않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오후 9시에 학생총회를 재소집했다.
총학생회의 국장단은 학생총회와 관련하여 의사조정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에 대해 중앙집행위원회 소속인 우리가 욕을 먹는 것이 억울하다며,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진행 중인 와중에 중앙집행위원장의 주도하에 총학생회장단 없이 회의를 열어서 국장단 명의로 의사조정위원회에게 유감 의사를 전달하고, 학생총회를 다시 열자는 의견을 밝히자고 제안했다. 그런 와중에 총학생회장에게(총학생회장 또한 의사조정위원회에 속해 있었다) 전화가 걸려 왔고, ‘참관인들에게 욕을 먹느니 국장단에게 욕을 먹는 것이 낫다’며 차라리 먼저 와서 유감을 표해달라고 말했다. 이것이 학생회의 민낯이다. 학생총회는 ‘전체 학우’의 의견을 알기 위해서 열린 것도, 후속 행동을 위해서 열린 것도 아니다. 그저 에브리타임의 여론에 따라 욕먹지 않기 위해서 열린 것에 불과하다.
학생총회의 정족수가 채워져 새벽에나마 후속 행동이 의결된 것이 다행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총회가 우리가 학생 사회의 몰락이라고 부르던 것이 가시화된 사건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고려대 학생들이 후속 행동을 한다는 사실보다 이 늦은 시간에 학생총회에 우리가 모였다는 사실이 강조되는 모습. 우리를 그토록 욕하던 586 세대 못지않게 우리도 열정이 있고 사회 참여적인 지식인이라는 것에 취해 있는 학생들. 자신이 이 사태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관련 법 조항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3천 명의 학우 앞에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학생들. 그리고 학생총회라는 거대한 쇼를 완성하고 에브리타임에서 욕을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 취해 있는 학생회 구성원들. 이 모든 것을 보니 그 누구도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여기 모였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더 이상 학생회라는 곳에서는 학생운동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3. 형식뿐인 총학생회의 후속 행동
학생총회에서 의결된 후속 행동으로는 시국선언/고려대학교 내 총학생회 주최 집회/촛불시위 고려대학교 단체 공식 참여/타 대학교와의 공동 행동이 있다. 나는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총학생회로서는 가장 품이 덜 들어가면서도 가장 ‘고려대학교’라는 지위를 내세우지 않고, ‘학교’라는 이점을 통해 의미 있는 후속 행동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촛불시위 참가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하지만 총학생회장은 후속 행동을 조사하는 구글 폼에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을 쓰는 칸의 응답자 다수가 한 말들까지 의결 사항에 추가했다. 그중 하나는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동조, 폄훼를 위한 후속 행동이 아니라, 민주주의 수호를 지키고자 하는 온전한 학생사회만의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는 조항이었다. 나는 총학생회장에게 해당 조항이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것과 충돌하니까 삭제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총학생회장은 “국힘이나 윤석열의 평소 잘못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라며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12월 7일의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동안 현재(2025년 1월 26일) 고려대학교 학생총회 후속행동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나날]의 인권복지국원은 학내에 인준받지 않은 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오는 것을 막아야 하고, 유인물을 배포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제지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학생총회 의결 사항(온전한 학생사회만의 활동을 진행할 것)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총학생회장단도 현재 에브리타임에서 ‘민주노총과 함께 집회를 나갔다’는 비판이 많다며 나에게 혹시 민주노총과 함께 집회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이를 부정했고, 회장단은 바로 해명문을 작성해서 에브리타임에 게시했다.
시국선언은 타 학교의 총학생회와 함께 이루어졌으며, 타 학교와의 공동 행동도 총학생회 공동 포럼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전국 대학생 총궐기 집회’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행사는 집회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집회 기조 소개에도 “대학생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 (…) 특정 정치단체의 이해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든 참여를 사절”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연예인들을 부르는 등 타 대학교와 모여서 신촌에서 노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리고 학생총회 후속 행동을 위해 만들어진 학생총회 후속행동 추진위원회에서 위원장단이 촛불시위에서 탄핵과 상관없는 성소수자나 여성 의제, 그리고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친다며, 이는 의결 사항(계엄에 대해서만 비판하는 것이므로)과 어긋나고 이 의제에 대한 전체 학우들의 의견을 모르므로 ‘시위에 나가면 안 되고 독자적으로 집회를 여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개진되었다.
나는 학생총회 후속행동 추진위원회에서 기획조정팀장을 맡고 있었지만, 탄핵 정국에서까지 탈정치 기조를 유지하려는 것, 지속적으로 스스로 지식인임을 자처하고 고려대를 내세우며 학벌을 과시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팀장직에서 사퇴하기로 했다. 물론 총학생회로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이점이 있다. 홍보 채널을 통해 인스타그램과 각 과 단위의 카톡방으로까지 홍보가 가능하기에 학생들을 모으기 용이하다. 다만, 이렇게 경직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조차 어렵고, 참여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집회 구호를 따라 하지 않겠다며 응원가를 부르는 것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현재 후속행동 추진위원회의 위원들은 ‘온전히 학생사회만의 활동을 하지 않으면 학생총회 후속행동 추진위원회 또는 중앙운영위원회의 판단에 따른 조치를 감수할 것임’이 명시된 서약서에 서명한 채로 탄핵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카드뉴스를 제작 중이다.
4. 2020년대의 학생 사회를 기록하며
학생회는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 학내 단위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것, 학생들의 탈정치 기조가 만연한 것, 다들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상에 빠져있는 것, 대학생이라는 지위에 도취돼서 노동자로서의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 등… 이런 위기감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우리가 총학생회의 반인권적인 정책을 비판하면 그들은 우리의 요구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에브리타임에서 여론을 좋게 만든다. 2024년에 있었던 ‘딥페이크 사건’을 통해서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심지어 계엄 사태 속에서도 학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청년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들이 노동절에도, 퀴어 퍼레이드에도, 기후정의행진에도 나와줄까?’라는 생각과 함께 묘한 불안감이 든다.
일부 학내 단위들이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 질서 아래 각자의 노동으로 바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한다. 가끔 행사에 모인 우리를 보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섯 명씩 있는 네 단위가 다 모이면 열 명이다’ 식의 농담은 현실이다. 당장 나만 해도 생활도서관과 고대문화를 동시에 하고 있으니까.
사람이 단위에 모이지 않아서 한 명이 혹사해가며 ‘언젠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면 단위가 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소진하고, 결국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단위가 사라지거나 새로 들어온 사람이 같은 기대를 하며 소진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운동을 한다’와 같이 능동적인 표현을 마주할 때면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다. 2023년 여름에 학내 단위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는 여기 모두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해에는, 혹은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으며. 아니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것이 2024년의 학생 사회를 지나온 나의 기록이자, 「학생회에 새솔이 날 수 있을까요」에 대한 답장인 동시에, 여러 실패를 거친 후 원점으로 돌아온 반복의 과정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 글에 Re가 달린다면 어떤 내용일까? Re가 달릴 수는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현재 학생 사회는 새솔이 날 수 없는 나날이다.
편집위원 정후 | rkskek181@naver.com
[1] “마지막 선택지는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학생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학생회에 새솔이 날 수 있을까요」 (2022 150호).
참고문헌
논문 및 저널
상민 (2022). 학생회에 새솔이 날 수 있을까요. 고대문화 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