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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름으로 ()에 반대한다

[특집 '윤석열'] 편집위원 혜원


전쟁.


지난가을 요즘 가장 관심 있는 게 무엇이냐고 물은 선배에게 나는 ‘전쟁’을 말했다. 어딘지 머쓱해진 대화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가 환기되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 순간을 한참 곱씹었다. 나조차 그 순간에야 확인했기 때문이다. 골몰하다 입 밖으로 ‘전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그때, 나는 내가 오랫동안 전쟁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음을 알았다. 언젠들 평화로웠겠냐마는 감히 전쟁을 꺼내 들 만큼 몰염치한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 역겨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을 말해야 했던 마음을 들여다보면 내가 한 번도 의문하지 않았던 것생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부수어지는 것에 느끼는 황망함이 있겠다. 전쟁할 수밖에 없는 온갖 이유들. 정치 분쟁, 국가안보, 실용 외교… 그것이 ‘합리적’일수록 괴로웠다. 생명은, 목숨은 그런 것들과 맞바꿀 수 있나? 평화는 어렵다고 포기될 수 있는 무엇인가? 그 정도의 무게뿐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더 붙잡고 살아갈 수 있지?

그로부터 한 계절이 지나 들어선 12월의 첫 번째 화요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곧 편집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때 오랫동안 머리로 굴리던 글감인 ‘전쟁’과 특집주제 ‘윤석열’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에게 J는 말했다.


윤석열에서 한 발짝만 가면 전쟁이에요.


정말 그랬다. 윤석열은 전쟁과 뗄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이 죽고 사회 기반이 무너진 그 임기 기간은 그야말로 전쟁과도 같았지만, 비유를 지나지 않고도, 그는 사전적 의미의 ‘전쟁’과 함께한 지도자였다. 국가 간대한민국 밖 국가 간이든, 남한과 북한이든무력으로 사람을 죽이는 상황은 그에게 유용한 정치적 땔감이었다.


1. 한국은 전쟁수행국이다


지금의 세계는 참담하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금까지 최소 100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1년 3개월 동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서만 약 4만 6천여 명이 죽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지나 ‘탈냉전’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떠들었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사람들이 죽는다.


세계대전 이후 제네바 협약이라는 이름 아래 약속된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기준이 무색하게, 두 전쟁은 인명피해를 ‘최대화’하고 있다. 전쟁범죄를 가름하는 데에는 살상의 의도성이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전쟁 중 불가피하게 교전국의 사람특히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을 죽이는 것이 아닌,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매우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또한 한 집단의 전체 혹은 일부의 파괴를 목적으로 한 의도적 행동은 제노사이드, 즉 집단학살로 명명되며 역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물론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폭력은 어떤 군사적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단 한 사람의 죽음도 마땅할 수 없다. 다만 이 규정은 인간성의 가장 낮은 지점을 이야기할 뿐이다. 우리는 최소한 의도적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지금의 전쟁은 의도적으로 사람을, 그것도 집단의 절멸을 목적으로 죽이고 있다. 학교와 병원을 비롯한 민간 기반 시설과 대피소를 폭격하고, 광범위한 파괴를 유도하여 살상에 특화된 금지 무기를 동원한다. 유엔이 보고했듯, 인도주의적 지원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전쟁 수법은 의도적으로 생존을 위협해 인명피해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집단학살’에 부합한다.


전쟁이 앗아간 목숨은 총구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화되는 교전을 수행하기 위해 조달되는 물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올 수 있는지 들여다보면, 국익이라는 허울 아래 내몰린 삶이 있다. 작년 가을 러시아가 보도한 재정계획에 따르면 국방과 안보에 대한 지출이 2025년 정부 예산의 약 40%에 달한다. 이는 교육·의료·사회정책·국가 경제 관련 예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지출이다. 전쟁 기간 국채 발행량을 늘려 자금을 조달해 온 이스라엘의 경우 신용 소비의 위축으로 지속적인 경기 침체를 보였다. 이에 경제학자인 자크 벤델락은 “필연적으로 빈곤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가운데 자유, 인권, 법치를 수호하겠다며 ‘가치외교’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행보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4월 19일, 윤석열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가 단지 인도주의적이거나 재정적 지원만을 고집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며 군사적 지원을 시사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회담 하루 전 브리핑에서, 미국 행정부 당국자는 한국의 지원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기정사실화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압박이 실체로서 확인된 셈이다. 결국 같은 달 우리나라 세 곳의 탄약창에서 수십만 발의 포탄이 미국 군사 기지가 있는 독일 노르덴함으로 이송되었다. 그다음 달인 5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이 우크라이나로 보내기 위해 포탄 수십만 발의 이송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교전 지역에 살상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대통령실은 “직접 지원도, 우회 지원도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10개월에 접어들던 2023년 12월,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이 미국을 통해 ‘우회 지원’한 포탄 규모는 유럽 지원 물량의 총합보다 많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는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 금지 법률을 고려해 미국을 경유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장기화되는 교전 상황 속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한국에 꾸준히 무기 지원을 요청해 왔다. 그리고 2024년 10월, 마침내 윤석열은 직접적인 무기 지원을 시사함으로써 ‘우회 지원’이라는 변명의 구실마저 저버렸다. 계기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었다. “종전과 같은 식의 인도주의·평화주의 관점의 지원에서 북한군 관여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식을 바꿔나간다”며, “무기 지원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약 한 달 후 성사된 우크라이나 특사단과의 만남에서 대통령실은 돌연 입장을 달리했다. 그 사이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의지를 밝힌 트럼프의 재당선이 있었다. 이전까지 “북한의 전투 병력 파병에 따라 단계적 대응 조치를 실행해 나갈 것이다”고 말하던 국가안보실은 “러·북 군사 협력의 진전 추이에 따라 단계별로 국제사회와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다”고 말을 바꿨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2023년 10월 27일,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의 인도주의적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기권했다. 총회 발언에서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하마스에 대한 규탄 내용이 부재함을 기권 이유로 밝히고, “한국은 정당화할 수 없는 테러 행위를 가장 강력한 표현을 동원해 규탄한다”고 덧붙였다. 결의안은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14개국의 반대와 45개국의 기권에도 불구, 120개국의 찬성으로 채택되었다. 이후 하마스의 공격과 인질 억류를 규탄하는 문구를 포함한 수정안이 제안되었고, 주유엔미국대사는 지지 의견을 밝히며 “하마스의 잔혹성을 은폐하고 힘을 실어주는 일이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우리는해당 결의안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모든 폭력에 대한 규탄과 인질 석방 내용을 이미 포함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이전에양국의 행위가 동일 선상에서 논해질 수 있는지 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의 보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망자 규모는 이스라엘인 사망자 규모의 약 27배에 달한다. 동일 자료에서 밝힌 가자지구에서 취재 중 사망한 언론인 중 절대다수(106명 중 99명) 역시 팔레스타인인이었다. 또한 학교와 병원 등 민간 시설을 폭격해 의도적으로 인명 피해를 초래하며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존을 위협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유엔이 공인한 제노사이드였다. 그러나 전쟁 발발 직후 긴급회의를 개최해 “하마스 무장세력에 의한 민간인 무차별 살상과 인질 사태를 국제인도법을 명백히 위반한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한다”고 말한 윤석열은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2025년 1월 15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휴전에 합의함으로써 15개월(466일) 동안 이어진 전쟁은 일단 멈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트럼프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다. 트럼프가 당선 이후 기자회견에서 “내가 취임하는 20일까지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인질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중동에서 지옥의 문이 열릴 것이다”고 말한 날로부터 약 일주일 후, 휴전 협상이 성사된 것이다. 트럼프는 휴전 소식이 보도된 직후 트루스소셜(SNS)에서 “이 협정은 11월의 역사적 승리의 결과”라며, 그 이유를 “우리 행정부가 전 세계에 평화를 추구하고 모든 미국인과 동맹국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거래를 협상할 것이라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 인질들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고 덧붙였다. 마치 윤석열 정부가 그랬듯, 이스라엘의 반인도적 전쟁 수행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달 6일, 트럼프는 전쟁이 마무리되면 미국이 가자지구를 소유해 휴양지로 개발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가자지구를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는 그의 구상에서, 214만 명의 주민은 주변 중동 국가로 강제로 이주당한다. 이로써 다시 한번 확실해졌다. 이스라엘의 학살에 침묵 혹은 적극적으로 가담한 미국이 추구한 것은 국익이다. 한낱 탐욕에 지나지 않는 그 행보에 평화라 이름 붙일 수 없다.


남북관계


2023년 1월 11일, 외교부·국방부 새해 업무보고를 앞둔 윤석열은 말했다. “선의에 의한 평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짜 평화다. 일시적 가짜 평화에 기댄 나라들은 역사적으로 다 사라졌고,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들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인류 사회에 이바지했다.” 그의 머리발언으로 문을 연 이날 보고 주제는 ‘힘에 의한 평화 구현’과 ‘다시 뛰는 국익 외교’였다. 그렇게 예고된 일 년 동안 남북관계는 처참히 무너졌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았고,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안이 재가되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다시 무장태세를 갖추고 최전방 감시초소가 복원된 후 맞이한 2024년,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을 치닫게 된다. 같은 해 6월, 정부는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면 정지할 것을 결정한다. 이로써 해상 완충구역에서의 군사 훈련과 대북 방송이 가능해졌다. 윤석열은 오물풍선 살포를 비롯한 비상식적 도발을 그 이유로 꼽으며,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합의 효력을 전면 정지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남측의 대북전단 살포가, 그 앞단에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의 무효화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대북전단을 이유로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사건 이후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2023년 9월, 헌법재판소는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고, 그 즉시 대북전단 살포가 사실상 합법화되었다. 당시 헌재는 필요시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활용해도 대북전단 살포를 충분히 제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음 해 5월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오물풍선을 날려 보낸 상황에 통일부와 경찰 등 관련 기관은 책임을 전가하기 급급했고, 그 가운데 정부는 사실상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에서 오물풍선 살포를 먼저 중단했으나(2024.06.02.)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재개된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2024.06.06.)를 남한 정부가 방관함으로써 남북은 본격적으로 대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남한의 9·19 군사합의 전체 효력 정지안 재가(2024.06.04.)가 있었다. 이후 남한은 평양까지 무인기를 날려 보내고, 북한은 동해선과 경의선도로를 폭파했다. 남북관계의 신뢰를, 그것도 의도적으로 저버린 주체는 북한이 아닌 윤석열이다.


그가 최악을 치닫는 남북관계 속에서 유도한 것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 내지 긴장감이었다. 정부는 북한에 강경 대응을 선언하며 대북 확성기 방송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실사격 훈련을 재개했고, 남북관계의 긴장을 조명하는 보도가 쏟아졌다. 6월부터 10월까지 오물풍선 살포를 경고하는 ‘재난 문자’는 총 59차례 발송되었다. 이 가운데 전쟁에 대한 불안과 북한을 향한 적대감이 고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특히 접경지 주민들은 남북 긴장의 발단이 된 대북전단 살포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통일부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제재할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필요할 때마다 들먹이던 국민의 안전은 실상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대규모 시가행진이 동원된 국군의날 행사에서 “저열한 도발을 자행하는” 북한을 강하게 비판하며 힘에 의한 평화론을 다시 한번 주장했다. 일련의 과정은 의도적으로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그에 대한 북측의 행적을 빌미로 전쟁을 정당화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한국 극우의 트레이드마크는 냉전주의다.”


태극기와 함께 든 성조기, 종북 좌파에 대한 적대감, 실체 없는 ‘빨갱이’를 향한 극렬한 혐오. 이념대립과 민족 분열의 유산으로 태어난 한국 극우세력의 뿌리에는 냉전주의가 있다. 윤석열은 이 기제를 국제분쟁, 그리고 남북관계에 적극적으로 동원한 것이다.


지난 3년 동안의 외교적 기조는 ‘자유’도, ‘인권’도, ‘법치’도 아니었다. 비일관적인 결정과 행보가령 러시아의 전쟁범죄는 규탄하면서 이스라엘의 학살에는 침묵하는 것는 ‘친미’라는 맥락 아래 위치할 때 비로소 정합성을 갖는다. 윤석열은 임기 동안 미국에 시종 저자세를 취하며 한미동맹관계를 강조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미국의 ‘대리전’이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트럼프 재임 이후 변명의 여지조차 잃어버린 사실이다. 두 전쟁을 지나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중동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가자지구라는 땅까지 손에 넣었다. 윤 정부는 미국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며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윤석열은 슬픔, 고통, 죽음 혹은 평화 따위로 전쟁을 그리지 않았다. 다만 이 ‘전쟁’을 기회로 어떻게 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궁리했을 뿐이다.


남북 분단 상황 역시 윤석열에게는 가용한 정치 자원이었다. 그는 이전까지의 평화적 행보를 무화하고 도발을 유도하여, 조성된 불안과 긴장을 무기로 마침내“고도의 통치 행위”로서의계엄을 선포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전쟁’은 유용한 수단으로 기능했다. 안보와 반공을 내세울 수 있는, 자신과 뜻을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붙일 수 있는 핑계가 되었다.


윤석열은 ‘전쟁’을 거부하는 법을 몰랐다. 전쟁하지 않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는 듯, 전쟁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대신 전쟁에 동참하기를 택했다. 선의에 기댄 평화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며 기꺼이 전쟁을 꺼내 들고는, 그것이 마치 유일한 해법인 듯 굴었다. 윤석열에게 전쟁은 언제든 손 뻗어 취할 수 있는 정치적 카드에 불과했다. 그러면서도 ‘전쟁가담국’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은 그저 우습다. 전쟁을 정당화하는 내러티브를 재생산하며 폭력의 굴레를 이어간 한국은, 이미 충실한 전쟁수행국이다.


2. 전쟁의 모순


전쟁을 정당화하는 지도자들은 숱하게 평화를 들먹인다. 미국의 바이든은 병력과 무기 지원을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하며 ‘우크라이나의 지속적인 평화’를 내세우며, 러시아 본토 타격을 위한 무기 지원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또한 트럼프 정부 1기,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아브라함 협정’ 역시 ‘신 중동 평화구상’이라는 미명 하에 체결되었지만, 결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윤석열 역시 미국의 전쟁에 가담하고 대북 강경 대응을 이야기하면서 평화라는 핑계를 놓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평화를 위해 전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슬프게도 이 논리는, 전쟁의 끔찍함을 겪어 본 존재에게 더 강력하다. 미국은 무기 지원을 종용하기 위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전쟁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이 전쟁에서 무엇을 겪었는지 생각해 보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단결하는 국제사회의 중요성을 (한국보다) 더 잘 아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폭력을 살갗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 교묘히 전쟁을 이용하는 전략은 유효하다. 한국 보수주의를 견고하게 지탱하는 반공 사상의 기저에도 한국전쟁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있다. 그들은 전쟁의눈앞에서 사람이 총에 맞아 죽고, 같은 마을에 살던 이웃이 적이 되고, ‘처형’되지 않기 위해 숨어야 했던경험이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무엇보다 그 폭력이 그들 안에서 정당화되지 않으면 삶을 이어갈 수 없다. 때문에 종전 이후 남과 북이 분단한 상황에서 우익에 의한 폭력을 지워버리고 그 지배 논리에 복종하는 것은 절박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과 ‘평화’는 함께 갈 수 없다. 어떤 전쟁이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 또 어떤 평화를 전쟁으로 이룰 수 있는가. 완전무결한 국가가 전쟁에서 승리한 (가상의) 상황조차 평화로울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나고 자란 터전을 잃고, 이전과 같은 삶은 결코 되찾을 수 없게 되는 일을, 우리는 평화라고 부를 수 없다. 사람이 죽고 사는 일에 타협할 수 있는 평화는 없다. 결국 평화는 전쟁 밖에서만 구할 수 있다.


전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전쟁이 사라진 세계를 살아보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감히 평화를 가져와 전쟁을 정당화하는 지도자들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늘어놓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말은 쉽게 소진될 것이다. 나는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를 그들만큼 넉넉히 준비하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고, 단 한 명 몫의 삶이라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 나는 전쟁에 대해 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 이상의 설명을 덧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종종 이 지점을 곱씹는다. 거슬러 올라가는 ‘왜’의 연쇄가 끝나버리는 순간. 더는 물을 수 없는 부분. 인간성에 자리가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나. 그리고 이것은 증명이 아닌 믿음으로 처리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전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넘치게 쥐고 있는 갖은 이유들 앞에 기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인간의 이름으로 반대할 것이다.



편집위원 혜원 | wonderofwon@gmail.com




[1] "인구 줄어 걱정인데…러시아·우크라 전쟁 사상자 100만 달해" (2024.09.17.). 연합뉴스.

[2] 집속탄. 한 개의 폭탄 안에 수백 개의 새끼 폭탄이 들어있어 광범위한 살상에 특화된 무기이다. 현재 100개국 이상이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3] 러-우크라 집속탄에 300명 이상 사망…어린이 피해 심각 (2023.09.06.). 한겨레.

[4] 유엔 위원회 “이스라엘 가자전쟁, 집단학살에 부합” (2024.11.15.). 경향신문.

[5] 러시아, 내년 국방비 23%↑…우크라 전쟁 더 길어지나 (2024.10.01.). 연합뉴스.

[6] 전쟁 1년에 이스라엘 경제 '비틀'…재정악화·신용강등·노동력 부족 (2024.10.07.). 뉴스1.

[7]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와 연대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

[8] 미, 우크라 지원·반도체 “한국이 결정”한다더니 압박 수위 올려 (2023.04.27.) 한겨레.

[9] "한국 155mm 포탄 우크라이나로 이송"‥"직접 우회 지원도 없다" (2023.05.25.) MBC 뉴스.

[10] WP “한국이 우크라에 준 포탄, 유럽 전체 지원량보다 많다” (2023.12.05.). 한겨레.

[11] WP "우크라 보내진 한국 155mm 포탄, 유럽 전체보다 많다" (2023.12.05.). 중앙일보.

[12]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 ‘평화’ 가져다줄까 (2024.11.29.). 한겨레21.

[13] 한국 온 우크라 국방 "무기 지원해 달라"... 尹 '신중 모드' (2024.11.29.). 조선일보.

[14] 한국, 유엔 채택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결의안 기권…왜? (2023.10.29.). 경향신문.

[15] 참여연대

[16]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6개월째…통계로 살펴보는 가자 지구의 상황 (2024.04.07.). BBC News 코리아.

[17] 유엔 위원회 "이스라엘 가자전쟁, 제노사이드에 부합" (2024.11.15.). 연합뉴스.

[18] 이스라엘 "하마스와 휴전 협상, 트럼프가 강력한 개입" (2025.01.20.). 조선일보.

[19] 트럼프가 2024 미국 대선에 당선된 것.

[20] ‘A stern message’: how return of Trump loomed over Gaza ceasefire negotiations (2025.01.15.). The Guardian.

[21] 지중해의 휴양지 밀집 지역.

[22] 윤 대통령 “힘에 의한 평화…실효적 전쟁 대비 연습을” (2023.01.11.). 한겨레.

[23]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위헌…헌재 “표현의 자유 침해 지나쳐” (2023.09.26.). 한겨레.

[24] 2023 북한 군사행보 멀어진 한반도의 봄 (2023.12.23.). MBC 뉴스.

[25] 9·19 합의 효력 정지…윤 “오물 풍선 비상식적 도발” (2024.06.04.). 한겨레.

[26] ‘대북전단 금지법’ 사라진다…헌재 “표현의 자유 침해해 위헌” (2023.09.26.). KBS 뉴스.

[27] 재난안전데이터공유플랫폼

[28] '표현의 자유' vs '주민 안전'...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 (2024.10.31.). BBC News 코리아.

[29] 군 병력과 탱크, 미사일 등 무기를 동원한 행진. 2023년 10년만에 부활해 2024년, 전두환 이후 최초로 2년 연속 진행됐다.

[30] 2년 연속 시가행진‥"군사정부 시절 국군의 날 연상" (2024.09.27.). MBC 뉴스.

[31] 한국 극우는 어떤 세력이며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 (2025.01.23.). 노동자 연대.

[32] 심지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가안보실 도·감청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에도, 윤석열과 대통령실은 미국 정부에 항의하거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33] 윤석열 정부는 전쟁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수출할 때 미국을 우회해 지원했다. 지난 10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을 ‘전쟁 가담’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34] 미·우크라 10년 안보 협정…바이든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것” (2024.06.14.). KBS 뉴스.

[35] 트럼프 1기, 미국 주도 하에 맺어진 이스라엘과 아랍 4개국(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수교를 이끌어낸 협정.

[36] 미국 주도 ‘신 중동 평화협정’, 되레 전쟁 불씨 됐다 (2023.12.07.). 한겨레.

[37] 미, 우크라 지원·반도체 “한국이 결정”한다더니 압박 수위 올려 (2023.04.27.). 한겨레.

[38] 김왕배 (2009). 39-79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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