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편집장 유진
한국은 참 이상하다. 남의 연애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고,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토록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명 ‘남미새’는 꺼려하며 선을 긋는다. 그들이야말로 한국이 원하는 이성애 맞춤형 인재인데도 말이다.
인터넷에서는 연일 주의해야 하는 하는 남미새의 특징을 논하는 글이나, 그에 속한 친구들이 있다는 고민글이 수없이 올라온다. 이 게시글들은 커뮤니티 내에서 소비되는 것을 넘어서, 캡처되고 가공되어 인터넷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길티 플레저’의 감각을 제공한다. 성격과 연령대를 막론하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남미새’가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논의의 대상인 ‘남미새’의 기준이 일정치 않다. 어떤 남미새는 단순히 남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해 조금 부끄러운 일들을 하는 친구고, 어떤 남미새는 남성을 위해 친구 관계를 기꺼이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아들을 무한정 감싸는 어머니마저 ‘남미새’의 정의에 포섭되기도 한다. 다양한 여성의 형태가 남미새라는 얄팍한 단어 아래 뭉뚱그려지면서, 남미새는 자조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1인칭이 되기도, 때로는 여성을 공격하는 3인칭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남미새 남미새 남미새… 도저히 뜻이 하나로 갈무리되지 않는 이 세 음절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그만 정신을 놓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남미새가 대체 뭐길래!
‘남미새’는 본디 ‘여자에 미친 새끼’를 줄인 말인 ‘여미새’에서 기원한 말로, ‘남자에 미친 새끼’를 뜻한다. ‘새끼’라는 거친 포괄적 명사를 사용하지만, 두 개념은 모두 이성을 겨냥하고 있다. ‘남미새’는 남성을 욕망하는 여성에게, ‘여미새’는 여성을 욕망하는 남성에게 쓰이는 것이 보편적이다. 언뜻 남미새·여미새는 이미 존재하는 개념에서 성별만 바꾼 개념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전자는 후자에 비해 복잡한 맥락 내에 위치해 있다.
‘여미새’는 보다 단순하다. 이성애적 욕망을 가진 남성이 여성을 지나치게 밝히거나, 관심을 사기 위해 여성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존재를 일컫는다. 이 기본적인 정의는 여미새·남미새 모두 공유하는 바이나, 이들이 동성 집단에서 받아들여지는 방향은 무척 상이하다. 여미새는 남성 집단에서 온전히 배척되는 존재는 아니다. 그들을 한심하게 보거나 얕잡아보는 시선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질지언정 남성이라는 거대한 내집단에서 적극적으로 배제되지는 않는다.
반면, 여성 집단에서 남미새는 아군인 여성을 배신하는 존재로서 여겨진다. 따라서 여성 내부의 단결과 연대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이들과의 거리를 벌리고 집단에서 배제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만이 남미새의 전부를 이루지는 않는다. 여전히 ‘조금 이상한 친구’부터, ‘여성의 배신자’까지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자임하고 있다. 이는 남미새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침에 따라 의미가 변용되면서 여러 가지 층위가 공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남미새’로 여겨지는 대상이 아니라, 여성 집단에서 ‘남미새’를 어떻게 인지하고 프레이밍해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1기부터 3기까지로 나누어 기술하고자 한다.
- 1기 남미새
‘남미새’라는 단어의 변용 초기인 1기 남미새는 ‘여미새’의 활용처럼, 단어의 일차적 의미 그대로에 충실하게 사용된다. 이때의 남미새는 남성을 평균 이상보다 욕망하는 여성으로, ‘가슴 강조하는 옷 입고 다니’는 것처럼 성적 매력을 과하게 어필하거나, ‘남친 상담할 때만 찾던 그 뻔뻔한 태도’처럼 동성 친구를 신경 쓰지 않는 등의 행동을 일삼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남미새 친구가 그립다.. 다시 친구 하고 싶어
손절한지 좀 됐는데 그립다
그녀가 해주던 기막힌 남자썰도 그립고
스토리에 잠깐 올리려는 엽사도 보정한다고 기다리라고 하던 그 가지가지한 행동도 그립고
맨날 가슴 강조하는 옷 입고 다니던 스타일도 그립고
남친 상담할 때만 찾던 그 뻔뻔한 태도도 그립다
잔잔하고 행복하던 내 일상에 바퀴벌레같은 존재였는데
역시나 자극이 없어지니까 아쉽군
내 유일한 길티플레저.[1]
희극인 강유미 씨의 유튜브에서는 이러한 1기 남미새를 인식하는 동성 집단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유튜브 영상 ‘엑소시스트- 남미새 영혼에 빙의된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남미새가 되어버린 친구로 인해 고통받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담고 있다. 이때, 주인공인 친구가 남미새가 된 이유는 ‘악귀’가 들렸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이 악귀가 퇴마 된 이후, 친구는 그저 평범한 여성-일반인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림 1] ‘엑소시스트- 남미새 영혼에 빙의된 여자’ 썸네일 ©강유미 yumi kang 좋아서 하는 채널
하단 정중앙에 크고 두꺼운 자막으로 "남자 없이 못살아/ 남미새 빙의된 내 친구"라고 적혀 있다. 뒤에는 영상 속 '남미새'의 모습을 편집하여 사진으로 합성했다. "난 털털해서", "남사친이 더 편해" 대사도 함께 적혀 있다. 그림 설명 끝.
1기 남미새 프레이밍은 남성에 집착하지 않는 ‘일반’ 여성을 기본값으로 상정하며, 남미새는 치료해야 하고 퇴마해야 할 존재로 여김으로써 ‘정상적 여성’과 ‘비정상적 여성’의 경계를 그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직 ‘정상적 여성’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전제함을 의미한다. 즉, 이들은 일시적으로 ‘남미새’라는 질병을 앓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연대할 수 있는 여성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남미새에서 느껴지는 배신감과 실망도 이러한 복귀 가능성과 기대에서 기인한다. ‘정상적 여성’으로서 동성 친구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타인에 가까운 남성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는다는 점이 실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남미새의 관심 대상이 되는 남성들보다, 남미새에게로 겨눠져 그 원인을 찾게 한다. 온라인상의 각종 설명을 종합하자면, ‘자존감이 낮아 의존할 대상이 필요하고, 자기 능력 키울 생각은 안 하고 남자 능력에 기대려 하며, 취미가 별로 없어 혼자서 시간을 못 보내고, ‘애매하게’ 생긴 탓에 과하게 꾸며야관심을 받으며, ‘오킴이’(오징어 지킴이의 줄임말)를 자처하느라 다른 여자들을 적으로 여기고, 평소 남자 친구를 친구보다 우선시하느라 이별 등 필요할 때만 친구를 찾으면서 심지어 ‘감쓰’(감정 쓰레기통의 줄임말)로 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증상이 계속되면, ‘남미새→기혼녀→아들맘’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도 한다.[2] 여기에서 언급되는 ‘기혼녀’는 일종의 ‘1기 남미새’가 심화된 개념으로, 남편을 위해 여성을 배신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아들맘’ 역시 본뜻에서 벗어나, ‘아들’로 대표되는 남성을 무조건적으로 비호하며, 본인 또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피해를 입는 여성들을 무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각각 ‘2기 남미새’와 ‘3기 남미새’의 등장을 예고한다.
- 2기 남미새
‘2기 남미새’는 ‘1기 남미새’와 다르게, 배신감의 연원이 다른 곳에서 기원한다. 1기 남미새에서는 ‘정상적 여성’으로서 동성 친구에게 집중하지 않는 모습에서 배신감을 느꼈다면, 2기 남미새의 배신감은 사적 친밀감 이전에 여성 시민으로서 거는 기대감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남미새는 ‘페미니즘 리부트’를 함께 통과해온 (특히 결혼 적령기의 시간 압력을 받는) 청년 여성들이 남성과의 결합 여부로 서로의 관계가 재편되는 상황 속에서 부상하고 있다. 지금의 청년 여성들은 남성과 연애·결혼하는 일이 당연하지도 않고 또 문제적이라는 집단의식을 공유해왔다. 그리고 정상 연애·결혼은 필수가 아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남성과 만나는 선택을 해놓고 필요할 때만 여성 연대를 요구하는 건 ‘무임승차’이고, 심지어 비연애·비혼 여성들끼리 공유한 정보나 커뮤니티 자원을 남친, 남편에게 넘겨주는 건 ‘배신’으로 간주되는 것이다.[3]
이러한 반감은 여성들을 옥죄는 여성성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남성 권력에 투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4B운동(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의 맥락과 밀접하게 연결 지어진다. 4B 운동 참여자들은 적극적으로 ‘여성’ 아닌 ‘인간’의 삶을 모색하면서, SNS상에서 4B를 실천하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전시하며 소통한다. 특히, 이 주체들은 ‘#비혼여성의_〇〇’와 같은 해시태그를 이용해 경제·생활·운동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지식을 소개하고 여성의 자립을 돕고 여성 연대를 적극적으로 도모하고자 한다.[4]
여자들이 카르텔 형성할라치면 꼭 x’한테 가서 쪼르르 일러바치는 남미새 새끼들이 있음 정보 퍼다나르고 커뮤니티 와해시키는 1등공신 ㅋ[5]
바로 이 여성 연대를 의도적으로 저해하는 배신자로 남미새가 지목된다. 직장에서 여성 후배에게 기회를 주었더니 다른 남성 직원에게 넘겨주거나, 여성 커뮤니티에서 공유된 은행원 추천 코드를 사용했더니 자기 남편의 실적이 올라갔다며 고맙다 이야기했다는 일화들은 캡처되고 가공되어 ‘남미새’로 명명된다.[6] 이러한 남미새들의 행동은, 여성들로 하여금 남성 때문에 여성 네트워크를 와해시키고, 동료 시민으로서의 호의를 가부장적 권력에 되레 돌려버리는 ‘배신’으로 받아들이게끔 된다. 이 배신감은 사적 관계의 실망감을 넘어선, 가부장적 권력에 함께 대항하는 여성 시민으로서의 기대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분노는 여성 네트워크의 혜택을 받은 외부 남성보다, 이를 누설한 남미새에게 집중된다. 바로 이 시점부터 남성에 대한 혐오가 여성으로 전이되었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정상-비정상을 나눈 1기 남미새보다 경계선을 더 확실히 긋는 것으로, 남미새를 배제함으로써 여성 내부의 연대와 결속감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 3기 남미새
남미새라는 개념이 1기와 2기를 거쳐 구별짓기로서의 기능이 강화되는 한편, 3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배제의 논리에 다다른다. 1~2기에서 정의한 남미새에서 이성애적 욕망이 강조되는 것과 다르게, ‘3기 남미새’는 남성의 논리가 내재화된 모습으로 묘사된다. 즉, 전자는 이성애적 욕망으로 인해 남성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였다면, 후자는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을 내면화하여 여성 내부의 연대를 해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림 2] ‘3기 남미새’ 프레이밍 ©X
"이게 진짜 ㄹㅇ.. 요즘 여자를 자꾸 남미새와 아닌 사람들로 구분지으려 하고 남미새 확정되면 정신 못차리는 열등한 사람 취급하는 플로우가 너무 강애진 것 같음..."라는 글에 "아주 좋은 플로우임 여자들이 드디어 눈을 뜨고있음/ 모든 여성들은 남미새 아들맘과 분리될 권리가 있다"라는 인용이 달렸다. 아래는 "진짜 액기스한남이랑 지내며 피해 보는 여성청소년 청년들은 제발 저새끼랑 분리되길 원하는데/ 나이처먹고 아련몽롱흐린눈 못버린 남미새아들밤 서브웨이니스트들이 자꾸 동료시민이라느니 뭐니 하면 화가 납니까 안 납니까 당장 지는 괜찮다고 입에 발린 소리 지껄이는 동안 또 여자들이 죽어요"라는 게시글이 있다.
2기 남미새가 ‘기혼녀’라는 존재로 대표된다면, 3기 남미새는 ‘아들맘’으로 대표된다. 아들을 낳아 기르는 본인 또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대변하여 남성 입장에서 생각하고, 무조건적으로 남성을 불쌍히 여기며, 정작 본인과 같은 여성이 처한 어려움은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맘은 비단 아들을 가진 여성뿐 아니라, ‘남미새’와 결합함으로써 남성을 변호하는 여성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게 되었다.
3기 남미새는 더 이상 같은 여성 집단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피해 보는 여성청소년 청년’과 ‘남미새아들맘’은 대립 항으로 상정되며, 심지어는 “모든 여성들은 남미새 아들맘과 분리될 권리가 있다”며 적극적인 배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1기처럼 ‘치료하고 퇴마’하여 ‘정상적 여성’으로 복귀시켜야 하는 존재가 아닌, 남성과 같이 해로운 존재로 여겨지므로, 여성 집단이 전제하는 정상적 여성과 남미새를 판별하여 색출하는 행위가 무척 중요해진다.
[그림 3] ‘3기 남미새’의 넓어진 범위를 보여주는 예시 ©X
"여자가 멋진 일을 함: 벗쉬이즈 / 남자가 멋진 일을 함: 헉ㅠㅠㅠ 인류애 미쳤다.. 서울 이 차갑지만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 역시배제는옳지않았던 거야 시민의연대는이제한단계더성숙해졌어 자이제 우리가 받아먹고 입닫는 괘씸한 김치년이 되면 안되겠지?"라는 트윗에 "남미새 별 거 아님/ 그냥 남자가 정상 행위를 할 때 감동먹으면 남미새임"라는 인용이 달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은 스스로를 남미새라 정의하면서도 현실의 ‘남미새’와는 선을 그어 차별성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본인이 ‘남미새인데도’ 번호가 많이 따이는 옷을 추천한다던가, 인기 있는 여자가 되는 법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볼 때 ‘묘한 거부감’이 든다는 경우는 이러한 거리두기 전략을 보여준다.
1기에서는 과하게 성적 어필을 하거나 동성 친구에게 소홀한 것이 그들을 판별하는 기제였고, 2기에서는 여성 내부 네트워크의 이점을 빼돌리는 것이었다면, 3기에서는 남성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로 남미새로 전락한다. 남미새의 개념이 변용될수록, 남미새가 아닌 ‘정상적 여성’을 정의하는 그물망은 점점 더 촘촘해지고, 여성 내부에서 서로를 감시하며 자기검열을 요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남미새를 정의하고 이를 비판하는 것은 남미새를 제외한 여성 내부의 단결을 꾀하자는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연대할 여성의 범위를 좁히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 속 남미새로 지목되는 기준이 확장되면서, 누군가를 배제하고 낙인찍는 도구로 작용할 위험성이 커진다. 남성에게 과하게 의지하는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과 결혼한 여성, 혹은 아들을 가진 여성까지 남미새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비난받을 수 있다. 이에 ‘남미새 확정되면 (⋯) 열등한 사람 취급하는 풍조가 강해졌다’ 비판해도, 이는 결국 ‘모든 여성들은 남미새와 분리될 권리가 있다’는 미명 아래 정당화된다. 이는 3기 남미새가 단순한 구별 짓기를 위한 개념을 넘어서, 적극적 배제와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소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남미새’라는 단어가 다양한 층위를 포섭하며 의미가 변용되어 가는 한편, 이처럼 프레이밍된 남미새를 수용하여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사용자의 양상 또한 복잡한 모습을 보인다. 남미새는 기본적으로 멸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려 자신을 남미새라 칭하며 긍정하는 사용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편의상 ‘남미새 긍정론자’로 명명하고자 한다.
‘남미새가 되어 훨훨 날아간다’는 남미새 긍정론자를 대표하는 밈이다. 이는 남미새와 새의 언어적 유사성을 이용한 말장난으로, 남성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자신의 모습을 농담조로 표현하고 있다. 자칫 낙인이 되어 비난받을 수 있는 ‘남미새’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자신의 정체성으로 전유하는 과정에서, 여성 내부에서 ‘남미새’를 색출하고 낙인찍는 억압적인 분위기를 탈피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이는 낙인을 스스로 받아들여 해방감을 얻으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림 4] ‘남미새 긍정론자’가 현실의 ‘남미새’와 선을 긋고 있다. ©X
한 유저가 "학창시절에 인기녀되는 비법", "번따룩 추천, 30년 남미새 노하우"라고 적힌 인스타그램 게시글 캡쳐본에 "ㄹㅇ 인스타툰 많이 보니까 자꾸 이런거 떠서 남미새인데도 남친이나 애인 없음 뒤지나 꼭 이성에게 인기 있어야 돼...? 라는 묘한 거부감 듬"라는 트윗을 남겼다.
남미새 긍정론자들은 주로 아이돌, 배우 등의 이상적 대상을 ‘덕질’하는 팬이 대부분으로,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과 일정 거리가 유지되기 때문에 그들을 ‘무해한 남성’으로 인식한다. 반면, 현실에서 직접 마주하는 남성들은 실질적으로 ‘무해’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욕망하는 현실의 ‘남미새’와 본인을 다르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자칭 남미새, 즉 남미새 긍정론자들이 욕망하는 남성은 대개 ‘덕질’ 대상으로서, 파편화된 화면 속 이미지들을 조합해 만들어진 이데아로서의 남성상에 가깝다. 남미새 긍정론자들은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적 문화에 대항해야 한다는 기초적 인식 아래에서 남성을 욕망한다는 이중성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자신의 욕망의 정당성(가령 그들의 이데아로서의 남성성이 얼마나 완벽한지)을 강화해야 할 필요에 맞닥뜨리게 되고, 이를 위해서 현실의 남성을 대조군으로 설정하여 이데아적 남성과 현실 남성의 대비를 부각한다. 이 과정에서 남미새 긍정론자와 현실의 남미새 사이 격차가 벌어지고, 현실의 남성을 적극적으로 욕망하는 여성을 타자화하게 된다. 즉, 남성에 대한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욕망이 현실적 위험과 연결되는 순간 선을 긋는 방식으로 남미새 개념을 변형해 활용하는 것이다.
아니 나는 남미새라서 남자를 ㅈㄴ 좋아하는데...
남혐도 같이 해서 힘듦
하루종일
남자꺼져
남자좋아 ***[7]
그러나 단어를 전유해 활용하더라도, 이들의 욕망과 가치관 사이의 모순은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남미새로서의 본인을 긍정하는 틈새로 자조적 감정이 누수되어 드러난다. 자칭 ‘남미새’이지만 남성을 혐오하여 괴로움을 표출하는 위 예시의 경우, 남성을 욕망하는 자신에 대한 애처로움과 자기 불만족이 동시에 표출되고, 남미새가 아닌 ‘정상적 여성’처럼 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한탄을 엿볼 수 있다.
나 남미새인데
날 미치게 하는 남자는 없고
길거리에 걍 미친**들만 잇음[8]
반면, 나를 남미새라 호명하지만, 나를 ‘미치게 하지 못하는’ 원인을 타인—즉 일반인 남성—에게 돌림으로써 타인혐오의 서사를 담고 있는 발화들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위 담화의 경우, 나를 미치게 만들지 못하는 타자인 평범한 일반인 남성에 대한 짜증과 경멸 등의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자기 자신을 ‘남미새’로 상정하지만, 남미새로서의 본인 혐오보다 나를 ‘미치게 하지 못하는’ 일반인 남성에 대한 혐오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이다.[9]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타파하려는 시도로, ‘여미새’를 자청하는 ‘여미새 긍정론자’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여성 집단에서 비난받지 않기 위해, 남성을 욕망하는 것을 감추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여성을 과하게 욕망하는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이들이 여성을 비난하면서 남성은 욕망하는 모습을 보일 때, 되려 여성을 ‘방패막’으로 활용한다고 거세게 비난받는다. 이는 ‘패션 여미새’[10]로 비난받으며, 되려 남성에 대한 욕망을 전면적으로 내세웠을 때보다 여성을 도구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난받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종합적으로, 소위 ‘남미새 긍정론자’는 남미새 배척론자와 다른 집단 같아 보이지만, 결국 그들이 속한 거대한 교집합이 존재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남미새 긍정론자는 남성을 향한 욕망을 농담이나 자조적 태도로 표현하며 받아들이는 반면, 남미새를 배척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욕망을 억제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모두 ‘가부장제와 젠더 폭력 속 여성의 위치에서, 남성을 욕망하는 것’ 자체를 문제적으로 인식하는 구조 안에 있으며, 차이는 단지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인지하고 다루느냐의 방식에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남미새’라는 단어를 형성해 나가는 생성자와,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문제를 짚어보았다. 그러나 언어의 특성상, 언어의 사용자 모두는 언어의 생성자이자 수용자를 자임하게 된다. 그렇다면 남미새라는 단어가 배척과 낙인의 결과로 이어지는 지금, ‘남미새’를 인지하고 프레이밍할 수 있는 사람이자, 그를 이용할 수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한다.
‘남미새’ 개념이 여성을 공격하는 쓰임으로 변하게 된 원인을 남미새적 행동양식의 여성혐오적 속성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현실의 여성 혐오적 문화를 타파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여성 간 연대를 통해 일종의 ‘팀플’을 수행하고자 하는데, ‘남미새’들은 일말의 비판적 의식 없이 남성의 이해관계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나아가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성차별적 문화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종의 ‘악성 조원’으로 여겨지고,[11] 이러한 반감은 여성을 공격하는 2기~3기 남미새 프레이밍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남미새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결과를 낳지 않는 것은 정녕 불가능할까? 작가 복길은 이에 ‘남미새’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는 견해를 펼친다. 여성들이 남성에 대한 성애적 감정과 남성중심적 사고를 자신의 내부에서 검열하는 과정에서 여유를 잃어버리느니, ‘남미새’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 안의 욕망을 긍정함과 동시에 여성 간의 실망감·배신감·모멸감을 섬세하게 구별해 내자는 것이다. 즉, ‘남미새’ 개념은 오히려 나와 서로의 모순을 포용할 수 있는 도구로써 자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12]
하지만 ‘남미새’의 개념을 수정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과연 그가 지닌 멸칭적 함의를 그대로 전복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남미새’가 더욱 빈번하게 사용될수록, 소위 ‘남미새’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타자화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자극적인 개념을 단편적으로 사용하는 디지털 언어 풍조 상, 남미새를 그대로 재전유하려는 시도는 당초 의도했던 뭉뚱그려진 모순과 감정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혐오의 응집체로서의 남미새 사용을 점점 더 잦게 만들까 우려된다.
더불어, 만약 남미새라는 개념을 여성 욕망 긍정을 위한 도구로 쓴다면, 멸칭에 대한 비판적 의식 없이 단순히 ‘나는 쿨한 남미새야’라는 식의 자기 정당화로 흐를 위험이 크다. 남미새에 반감을 품는 동료 여성 시민들이 사고하는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남미새’를 통해 욕망만 긍정하는 것에 그친다면, 서로에 대한 타자화로 이어져 여성 내부의 연대 가능성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남미새’에서 느껴지는 이 불편한 감정을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불편한 감정은 주로 ‘길티{guilty}하다’는 표현을 통해 표출된다. 이는 어떤 일을 할 때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만, 동시에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인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에서 연원한 표현으로, 그중 죄책감과 죄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길티하다’로 줄여진다. 가령 피지를 짜는 영상처럼, 보기 싫으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대상으로 ‘남미새’가 ‘길티하다’ 표현하는 것이다.
남미새가 ‘길티’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남미새와 나의 교차점이 없다면, 즉 온전한 타인이라면 그를 통해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여성이라는 공통의 기반 아래 남미새의 행동에 나를 비추어 보게 되고, 타인에게 눈총을 받는 남미새의 과한 행동을 통해 내재한 자신의 욕망을 비추어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욕망—남성을 욕망하거나,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은 공통되는 것이고, 따라서 남미새는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한 것만 같은 수치심을 가지게 된다. 도우리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 갖고 있지만 드러내면 안 되는 면을 자각하지 못하고 당당히 풍기는 역겨움’[13]인 셈이다.
이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남미새와 자신을 분리하는 전략을 취한다. 남미새를 ‘길티하다’고 규정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전시하며 조롱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롱을 통해 자신은 남미새와 다르다는 점을 은근히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남미새에게 투영하여 확인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욱 엄격히 검열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남미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특정한 행동을 피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조롱은 다른 여성들에게도 일종의 경고로 기능한다. 남미새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조심해야 한다는 압박이 형성되며, 결과적으로 여성들 사이에서 자기검열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가 강화된다.
이렇듯 타인과 나를 엄격히 구별하는 행위는 허위적 투사{falsche Projektion}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타인을 ‘남미새’로 명명하여 공격하는 것은 허위적이고 잘못된 투사 위에 기초하는데, 미메시스가 자신을 주변 세계와 달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허위적 투사는 주변 세계를 자신과 닮게 만들려는 충동인 것이다. 이는 외부 세계—이 상황에 적용하자면 ‘남미새’—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적대시하는 것으로, 주체가 자신의 것이면서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충동들을 객체—남미새—에 속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외부의 희생제물에 그러한 특성이 속한다 여기고, 낙인찍힌 외부 대상을 공격함으로써 그 특성으로부터 자신은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14]
따라서 이러한 문제적인 낙인과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안의 공포를 끌어안아야 한다. 가치관에 대비되는 나의 욕망, 그로써 발생하는 나의 ‘길티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인에게 내재한 모순을 당당하게 꺼내 인정함으로써, 남미새를 타자화하는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가, 오히려 같은 선상에서 ‘함께’ 논의하고 변화할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그를 위해 하나의 방법으로, ‘-미새’의 범위를 늘리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여미새’가 ‘남미새’가 된 것에서 멈추지 않고, ‘-미새’의 범위를 늘려 모순적인 감정을 탐색하는 도구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 엄마를 향한 애틋한 사랑과, 가끔 차별적이거나 억압적인 행동을 하는 엄마에 대한 서러움을 담은 복합적인 마음은 ‘엄미새’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돈미새’ 또한 물질만능주의를 무한정 추구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와, 그럼에도 자본주의 아래에서 금전을 지속적으로 좇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입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고대문화》가 좋지만 마감을 지키기 싫은 마음을 표현한 ‘고미새’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인물에 대한 과한 애정에 동반한 ‘현타’의 감각 또한 ‘-미새’에 결합하여 담아낼 수 있다. 이처럼 ‘-미새’의 무궁무진한 변용을 통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순적인 마음을 끌어안을 수 있는 동시에, ‘남미새’에 과하게 축적된 혐오적이고 배제적인 면모를 흐리게 만들어 그 영향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혐오하던 ‘남미새’까지 ‘-미새’의 범주 안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길티하다’며 남미새를 혐오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를 찾아 보고 끝없이 논했던 것처럼, 우리 안의 ‘남미새’를 ‘-미새’하는 마음까지 인정해 본다면 어떨까. ‘남미새’가 꾀했던 배제적이고 수렴하는 연대가 아니라, ‘남미새’까지 끌어안는 발산하는 연대를 꿈꿔보는 것은 어떨까. 서로를 배제하고 단절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그를 꿈꾸는 ‘남미새미새’를 ‘-미새’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편집장 유진 | gamjabat_@korea.ac.kr
[1] 익명 (2023.08.04.). 남미새 친구가 그립다.. 다시 친구 하고 싶어 [인스티즈 게시글].
[2] ‘남미새’는 어떻게 빌런으로 부상했나 (2024.07.05.). 한겨레21.
[3] 같은 글.
[4] 공연화 (2021). 61-63.
[5] 이름없음 (2024.06.02.). 제목 없음 [트위터 게시글].
[6] 무명의 더쿠 (2024.10.03.). 여자들이 카르텔 형성할라치면 꼭 x한테 가서 쪼르르 일러바치는 남미새 새끼들이 있음 [더쿠 게시글].
[7] 갱갱 (2025.02.02.). 아니 나는 남미새라서 남자를 ㅈㄴ 좋아하는데... [X 게시글].
[8] 정순애 (2025.01.27.). 나 남미새인데 [X 게시글].
[9] 오지민, 오세일 (2023). 56-57.
[10] 패션(fashion)+여미새의 합성어이다.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닌, 패션처럼 ‘여미새’라는 단어를 가볍게 활용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11] [엘르보이스] 사회가 거대한 남미새라면 (2024.11.11.). ELLE.
[12] ‘남미새’ 되어 함께 날아가는 우리 [콘텐츠의 순간들] (2024.08.03.). 시사IN.
[13] 실제와 ‘추구미’ 사이 간극 그리고… ‘길티테인먼트’의 진화 (2024.07.26.). 한겨레21.
[14] 한상원 (2023). 214-216.
참고문헌
단행본 및 논문
한상원 (2023). 계몽의 변증법 함께 읽기: 비판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가. 에디스코. 공연화 (2021). ‘여성’ 계급으로부터의 탈피-모니크 위티그 이론으로 읽는 한국의 4B 운동-. 젠더와 사회, 1(32), 39-72.
오지민, 오세일 (2023). 타자혐오에 투사된 자기혐오 - 온라인 메타포 ‘충’과 혐오 논쟁. 사회이론, 0(64), 37-78.
온라인 기사
도우리 (2024.07.05.). ‘남미새’는 어떻게 빌런으로 부상했나. 한겨레21.
Retrieved from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749.html
도우리 (2024.07.26.). 실제와 ‘추구미’ 사이 간극 그리고… ‘길티테인먼트’의 진화. 한겨레21.
Retrieved from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5834.html
복길 (2024.08.03.). ‘남미새’ 되어 함께 날아가는 우리 [콘텐츠의 순간들]. 시사IN.
Retrieved from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85
이마루 (2024.11.11.). [엘르보이스] 사회가 거대한 남미새라면. ELLE.
Retrieved from https://www.elle.co.kr/article/1872662
기타 온라인 자료
| (2024.10.19.). 아주 좋은 플로우임 여자들이 드디어 눈을 뜨고있음 [X 게시글]. 접속일 2025.01.11..
Retrieved from https://x.com/yoplhctkjk40210/status/1847518054047240610?s=61
갱갱 (2025.02.02.). 아니 나는 남미새라서 남자를 ㅈㄴ 좋아하는데... [X 게시글]. 접속일 2025.02.24..
Retrieved from https://x.com/dd5ngae/status/1886064532982030336?s=61
도둑 (2025.01.07.). 진짜 액기스한남이랑 지내며 피해 보는 여성청소년 청년들은 제발 저새끼들이랑 분리되길 원하는데 [X 게시글]. 접속일 2025.01.11..
Retrieved from https://x.com/do1ussaveus/status/1876568441525772520?s=61
무명의 더쿠 (2024.10.03.). 여자들이 카르텔 형성할라치면 꼭 x한테 가서 쪼르르 일러바치는 남미새 새끼들이 있음 [더쿠 게시글]. 접속일 2025.02.11..
Retrieved from https://theqoo.net/square/3428289441
바떼 (2025.01.17.). 남미새 별 거 아님 [X 게시글]. 접속일 2025.01.30..
Retrieved from https://x.com/vanillatte_22/status/1876457708087562383?s=61
엑소시스트-남미새 영혼에 빙의된 여자 (2024.06.08.). 강유미 yumi kang 좋아서 하는 채널. 접속일 2025.02.20..
Retrieved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wjMa9FHmMng
익명 (2023.08.04.). 남미새 친구가 그립다.. 다시 친구 하고 싶어 [인스티즈 게시글]. 접속일 2025.02.11..
Retrieved from https://www.instiz.net/name/55492066?frompc=1&category=1
정순애 (2025.01.27.). 나 남미새인데 [X 게시글]. 접속일 2025.02.24..
Retrieved from https://x.com/oj_9x/status/1883546016471011629?s=61
희 (2024.04.15.). ㄹㅇ 인스타 툰 믾이 보니까 자꾸 이런거 떠서 남미새인데도 남친이나 애인 없음 뒤지나 꼭 이성에게 인기 있어야 돼..? 라는 묘한 거부감 듬 [X 게시글]. 접속일 2025.02.02..
Retrieved from https://x.com/desiredelight_/status/1779590382332043264?s=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