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자전거 - 변화 16
풀지 못한 문제가 항상 남아 있다
아버지를 가볍게 만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만나면 공기가 무거워진다. 지난 상처들이 들춰질까 조심하는 게 힘들다. 피하고 미루다 보면 그 역시 마음이 무거워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정기적으로 집으로 초대한다. 아들이 자라면서 그렇게 된 거 같다.
할아버지를 밝게 대해주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들인 나를 생각한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를 아들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동시에 나와 아들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생길까 걱정도 된다. 모든 문제를 풀고 살 수는 없다.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처럼 끊임없이 욕심낼 필요가 없다. 모르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
아들의 기말시험을 함께 공부하다가 도덕과목 '가정윤리' 단원에서 효의 실천에 관한 격언들이 나왔다. '네 자식들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라-소크라테스' 격언을 외우는 아들 옆에서 괜히 나만 불편해한다. 굳이 소크라테스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효의 갚음에 관한 말들은 너무 흔하다. 비슷한 주제와 마주하면 매번 모른 척하려 든다.
'아빠가 바라는 게 뭐 있냐? 같이 자전거나 타는 거 말고...' 아들에게 잘하는 농담이다. 아들이 자전거를 함께 타 주지 않더라도 자전거를 함께 타주는 아들은 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은 많은데 아픈 말들이라 하지 않는 게 맞다.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권위있는 누군가가 '아빠는 그럴 수 있다.'라고 아들에게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다 보면 어지러워 진다. 멀미가 날 때처럼 차분하게 멀리 봐야 한다.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 물러서 거릴 둘 수밖에. 보이든 말든 아무렇게 던져 놓고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