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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지 Oct 13. 2022

자전거에 무거운 먼지가 앉고

아들의 자전거 - 변화 14

중고마켓에 올라온 자전거 판매글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멘트가 있다. '안 타고 쭉 세워놓기만 했어요'. 아들의 자전거도 그런 자전거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방치되기 시작했다. 먼지가 쌓이고 빗자루나 우산이 기대지고 우비 따위가 걸쳐졌다.

라이딩을 나갈 때마다 마다 만나는 먼지에 덮인 아들의 자전거가 쓸쓸하고 불편했다. 좋아하는 물건은 바라보는 것 만으로 설렐 수도 있지만 반면에 바라보는 것 만으로 에너지가 소모될 수도 있다. 아들도 그럴까? 이제 바퀴에 바람까지 빠져버렸으니 불현듯 타고 싶어도 준비시간이 필요하겠다. 기댄 잡동사니를 치우고 먼지를 닦고 타이어에 바람을 채울 생각을 하면 타고 싶던 마음 생기다가 사라질 것 같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저리 방치하는 아들이 섭섭했는데 물건들에 가려지고 타이어에 바람까지 빠지니, 공부로만 일상을 채워가아들이 안타까웠다. 아들의 여유가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거 같다. 괜한 부담을 줄까 봐 정비를 권하지 못하겠다.

아들은 아빠와 자전거 타는 시간이 없어지더니 이제 자전거를 거의 타지 못한다. 요즘은 좋아하는 콘솔게임도 안 하는 것 같아 물어봤더니 게임기를 켜고 CD를 넣고 접속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서 그렇단다. 친구들 만나는 것도 그렇단다. 연락하고 약속하고 기다리다 보면 곧 헤어져야 할 시간이란다. 게임도 친구도 그런데 자전거는 당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핸드폰을 보는 게 준비 없이 바로 누릴 수 있는 여유고 바로 끊을 수 있는 여유라서 많이 하게 되는 건데 잔소리를 참아야겠다. 조금 가치 있게 여유를 즐기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아들은 여유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이제 아들은 방을 청소하고 빨래도 할 수 있다. 물론 자전거를 청소하고 바람도 넣을 수 있다. 해야 될 나이가 되었다고 책임만 따질게 아니라 아들의 자전거는 예전처럼 정비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들해진 마음을 되살릴 순 없지만 멀어지는 대상을 피하지 않고 덤덤히 바라볼 수 있도록. 잊었던 마음을 다시 발견할 때 덜 민망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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