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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Jul 29. 2023

맞춤형 개인 광고가 불편한 당신에게

기업들은 당신의 취향을 알고 있다.


  결혼 적령기가 된 내게 최근 부쩍 자주 보이는 광고가 있으니, 결혼정보 회사 광고이다. “2살 연하, 연봉 5천만 원 이성 어때요?” 혹은 “9x년생 승무원 소개받을래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때로는 불쾌하고 낯 뜨거운 이 맞춤광고들은 개인화에 대한 부작용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거부한다고 해서, 이러한 개인 맞춤광고가 사라질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광고의 근본적인 ‘태생’. 다시 말해 광고주에게 있다. 광고주들은 광고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광고 타겟팅을 연구해왔다. ‘적은 비용으로 타겟에 맞는 이들에게 최대한의 노출, 여기에 구매로 이어지는 높은 전환율’. 이 성공적인 광고의 공식에 맞춰 광고주들은 광고 전략을 짜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광고비를 얼마든 낼 용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광고주들의 돈을 받아 광고를 기재하는 ‘플랫폼’들은 어떨까? 광고 플랫폼들은 광고주들의 돈을 받기 위해서라면, 서로 더욱 매력적인 광고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매력적인 광고 솔루션이라 함은,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광고주에게 높은 광고 효율을 안겨줄 광고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 아무리 개인 맞춤광고에 불편함을 호소하더라도 법적으로 막히지 않는 이상, 광고주와 광고 플랫폼,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개인 맞춤광고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거대한 자본 시장에서 우리의 데이터가 그들의 광고 수단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전환해 보자. 우리도 그간 우리의 관심사와 상관없는 광고들을 귀찮게 여기며 ‘스팸’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개인 맞춤광고는 우리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제품에 대한 소개를 받는 형태로 광고를 제공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 맞춤광고는 광고주와 소비자 모두가 이전보다 힘을 덜 사용하며 만날 수 있는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준다. 따라서 이것을 너무 나쁘게만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소비자들도 훨씬 최적화된 광고를 소개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화에 대한 이 거대한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 차라리 최소한의 데이터를 보호받길 바라며 이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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