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뮤지엄 강릉 '빛과 소리의 오케스트라'

[미디어아트를 만나러 가는 길]

by 지금도바다

제주도에서 새로운 전시를 찾다 알게 된 '아르떼 뮤지엄'이 강릉에도 작년 12월 오픈했다. 제주, 여수에 이어 3번째인 이곳은 경포대와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에 가깝게 있다. 제주도 뚜벅이 여행 때 접근성이 어려워 과감히 포기했는데 가까운 곳에 전시가 열리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20220311_100012.jpg 아르떼 뮤지엄의 건물 외관 "A"



아직 찬 바람이 불지만 속초에서 첫 버스를 타고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강릉도 시내버스의 배차시간이 많이 줄어 30분이나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사람이 많아 일찍 관람하라는 인터넷 댓글들에 서둘러 걸었다. 정말이지, 오픈 시간 10시에 딱 맞춰 도착했다. 입구부터 캄캄해 발길을 옮기기도 어려웠다.

겨우 커튼을 찾아 들어가니 조금씩 불빛이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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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점점 은은한 불빛이 내게 다가왔다



전시 팸플릿을 보면 관람 안내가 있다. 본 순서대로 나열하면,

FLOWER - FOREST - WATERFALL - STAR - BEACH - SUN (HOT) - CAVE - WAVE CIRCLE - GARDEN


어둠을 뚫고 들어가면 형형색색의 꽃잎들이 첫인사를 화려하게 건넨다.

꽃잎이 날린다.

빛의 움직임으로 봄을 느끼며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 여기저기 곳곳을 가득 꽃들로 채워진다.

잡으려 하면 금방 날아가고, 보고 있으면 또 다른 꽃들이 다가와 내 눈을 간지럽힌다.

인사치고는 부산스럽지만 싫지 않다. 그 공간으로 천천히 다가가니 조금씩 시야가 넓어졌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부딪히지 않기 위해 아기가 아장아장 첫걸음을 걷듯,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앞이 환하게 보인다. 구석구석 빛이 빼곡히 채우면서 눈이 즐겁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차분한 감상보다는 눈동자와 몸도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보면 몇 분 간격으로 패턴이 같다는 걸 알 수 있다. 관람시간은 1시간 이상의 여유를 갖고 시각과 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디어아트는 특히, 몇 번을 보고 또 봐야 움직임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처음 전시가 오픈됐을 때는 그림도 아닌 작품을 감상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으나 계속 보니 나도 음악에 눈과 귀, 그리고 몸을 맡기며 더 역동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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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날리고, 떨어지고, 다시 피어나고



자연의 사계를 알리듯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대한 아름다움을 큰 스크린으로 보니 트릭아트 느낌이 물씬 난다. 실제로 동물이 살아 있는 생동감과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사진을 찍으면 멋지다.

사람들은 바쁜지 관람을 끝내지 않고 사진 찍기 바쁘지만 난 그 사계절을 보며 전시가 많이 발전됨에 뿌듯했다. 처음 미디어 전시를 제주도 부영호텔의 상설 전시장에서 '고흐'전을 봤다. 어색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어느덧, 6~7년이 지나면서 더 사실적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과연 '미디어로 보는 전시가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보편화되다 보니 오히려 미술관의 전시가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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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빛의 전시답게 불빛만 있을 뿐 걸어 다니는 내내 조심해야 한다. 최소한의 안내표시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니는 내내 총총걸음과 어둠으로 계단을 올라갈 때는 갑자기 사람과 마주쳤을 때 놀랄 수도 있다.

STAR(별) 공간은 환상적으로 빛났다. 사각 유리 안의 작은 공간인 빛들의 움직임은 그 사이사이로 내가 밤하늘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몽환적이다. 한참을 서서 빛의 움직임에 시공간을 느끼며 내 몸이 가벼워진다. 오픈 시간에 입장한 만큼 SNS에서 핫한 태양(SUN)에 올라 사진도 찍었다.

'생명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거대한 태양'이라는 부제답게 붉은빛의 기운은 나도 모르게 계단을 보는 순간 '정말 태양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빨려 들어갔다. 전시장 정 가운데 위치해 있어 의도는 모르겠지만 전시회의 중심축이 아닌가 싶다. 어디를 갔다 와도 다시 태양이 있고 마지막 정원을 가기 전에도 태양을 보고 길을 찾았듯 환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안내자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다.



20220311_101722.jpg 태양이 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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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물어볼까



이 뮤지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BEACH(해변)이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바로 그 해변이다.

'새벽부터 밤까지'를 보여주는데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하와이를 가보지 못했지만 모티브로 삼지 않았을까. 갑자기 와이키키 해변이 떠올랐다. 오래전, 첫 해외여행으로 떠난 푸껫 피피섬의 바다가 잠깐 생각나기도 했고 지금 살고 있는 속초 바다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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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에서나 나올 듯 한 꿈속의 바다다



매일 보는 바다는 항상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잔잔한 파도가 치기도 하지만 때론 거친 비바람에 넘치는 파도가 치기도 한다.

한 없이 맑은 사랑스러운 바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론 무서운 해일을 일으키며 이곳을 삼킬 듯이 다가오기도 한다.

바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과 많이 닮았다.

'0'부터 시작해 '무한대'로 끝나지 않는 끝이 없는 인생과 바다,

그래서 바다를 보면 내 살아온 지난 일들이 비집고 나오는 걸까.

20분을 바닥에 앉아 실제인 듯 아닌 듯 어디에도 없을 멋진 바다를 보며 잠시 쉬었다.

바다는 언제 봐도 지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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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바다를 나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GARDEN(정원)은 '빛의 정원'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나온다. 특히, 강원도의 전시만큼 아름다움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홀로아리랑의 노래와 강원도 사계로 가득 메운 공간을 보니 괜스레 숙연해지고 뭉클해졌다. 마지막에 '하늘로 띄우는 등'이 불빛을 가득 품고 올라갈 때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었다. 마지막 전시관이라 3~4번을 반복적으로 걸으며 명화도 감상하고 음악도 들었다. 단점이라면, 공간이 크지 않아 직사각형 안에서 각기 다른 그림들이 나왔다 사라지다 보니, 한 곳에만 머물 수가 없었다. 걸어도 너무 빨리 바뀌는 그림에 아쉬웠고 깊이 있는 관람이 어려웠다. 전시회의 마지막 동선인 만큼 좀 더 천천히 마음을 다독이는 느림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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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호강하는 그림의 정원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다양함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미디어 전시도 가끔씩 보는 건 기분전환도 있고 닫힌 내 사고도 활짝 열어준다. 아쉬움은 속초에도 대형 전시가 열리면 좋을 텐데.

속초에 살며 제일 아쉬운 건 문화생활이다. 작은 전시와 공연이 가끔 있긴 하지만 나를 만족시키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3시간을 넘게 전시를 관람하고 '달빛산책로'를 걸으며 아직 여운이 남아있는 나의 마음을 다독이기로 했다. 산책로는 경포대로 이어져 갑자기 전투 자세가 되며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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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는 오랜만이다



이쯤이야 문제없다.

걷기 전, 경포대 둘레길이 4.5Km 밖에 안 된다니 마음도 가뿐하다. 평소 걷는 속초 영랑호는 8Km로 절반이라니 1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다. 20년 넘게 본 경포대를 햇살이 내릴 때 혼자 걷다 보니 그동안 수없이 찾았던 시간들이 지나간다. 막걸리 한잔하고 택시비 아낀다며 헐렁헐렁 걸었고 초당두부 먹고 낭만이라며 이 길을 걸었다. 언젠가는 자전거로 이곳을 돌자며 친구와 약속했는데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20220311_141803.jpg 나에게 바다는 선물이다



오랜만의 전시다. 말 그대로 아트를 시각적으로 즐기는 시간이었다. 무거웠던 내 마음이 조금 풀어졌나 했는데 언니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까. 언니의 넋두리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마다 삶의 무게가 있다는데 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과연 끝은 있는 건가. 이제는 정말 홀가분 해지고 싶다.

무작정 떠나고 싶다. 비행기 타고 그 날아오르는 순간, 잠시 잊고 싶다.

하늘은 아마도 내 기억을 잊게 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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