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도계읍 탄광 마을, 까막 동네

[버스만 10시간, 여기가 강원도 오지여행]

by 지금도바다

지난번 삼척여행에서 도계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기차를 타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릉역에서 출발하는 '동해 산타열차'는 계절에 따라 운행시간이 달라 시간표를 잘 확인해야 한다. 속초에서 강릉으로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45분에 출발하는 도계행 버스에 다시 올랐다. 3시간 넘어 도착한 버스는 속초부터 시작해 거의 왕복 10시간이다.

10시간은 파리까지도 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출발할 때는 몰랐지만 돌아올 때는 실성한 듯 웃음이 나와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웃음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KakaoTalk_20211217_103322355_13.jpg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계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강릉에서 출발 한 버스는 동해에서 삼척을 지나, 20분 정도 달렸을까, 바로 외진 오지마을처럼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자기 집을 자랑하듯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뽐내고 있다. 높고 웅장했다.

지루할 틈 없이 탁 트인 전경을 보니 새벽 출발로 가라앉았던 마음은 뻥 뚫리며 시원해졌다.

한참을 더 달려 도계시장에 내렸다. 터미널이 아니었다. 기사분이 좀 더 친절했다면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빨리 내리라는 말에 덩달아 할머니를 따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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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를 가는 내내 멋진 풍경은 덤이다.



여행은 떠나기 전, 버스나 기차표 예매부터 내 마음에 설렘을 준다.

특히, '도계'는 첫 여행지로 낯섦과 설렘을 동시에 품었다.

때론 강심장도 따라와야 한다. 작은 도시인 이곳은 어떤 빛깔일까.


도계의 등록문화재인 금수 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했던 시설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높이가 8M 정도로 태백에 가까워 석탄도 캤고 기차들도 오고 갔던 철길 옆에 있는 돔형의 금수 탑이다.

광산촌이 번성할 때 그 시절의 금수 탑을 만나본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강원도 여행 중인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기찻길은 내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여기 그을린 누릿한 철길들도 갈래갈래 저마다 사연들이 숨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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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마을의 시작이다



초등학교 때 마포 와우산에 살았던 나는 신촌 기찻길을 꼭 지나야 했다.

경적소리로 '땡땡 거리'라고 불리던 그 철길은 주로 석탄과 물류를 이동했다. 지금의 '경의선 책거리'다.

그 길로 언니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고 스무 살 때는 친구들과 누볐던 동네 거리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나 똑바로 걷지, 나 잡아봐라"하며 철길에 올라 두 팔을 벌리는 친구들의 뒤처리를 했던 곳인데, 철길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그때 그 친구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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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었기에, 그래, 나 혼자가 아니었다



저 멀리 다리가 화려해 걷다 보니 도계 기차역이 있다.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다. 전두시장을 지나면 기찻길이 보인다. 금수 탑이 저 건너에 있다. 관리원이 없는 기차가 다니는 건널목은 항상 안전이 우선이다.

철길은 그 시절 왕성했던 화려함을 알려주듯 간격도 넓다.



KakaoTalk_20211217_103140329_17.jpg 여행을 떠나라는 길을 내어주는 철길, 기차를 타고 싶다.



건널목을 건너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 까막 동네'라는 글귀가 반갑게 마중 나온다.

초입부터 이쁜 글이 맘에 들었다. 이제 왼쪽 계단만 오르면 금수 탑이다. 금수 탑에 올라가 10초 지났을까, 바로 앞집의 큰 개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짖어 옆 골목으로 피신했다.


벽화 마을답게 골목마다 주제가 있다. 백설공주와 피노키오 할아버지가 나오는 이야기도 있고 곳곳마다 감성 그림들이 가득이다. 골목도 작지 않아 구석구석 보는 재미가 있지만 문을 열어놓고 개가 하염없이 짖어대는 통에 반도 못 보고 내려왔다.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막다른 길이라 다시 그 개가 짖는 곳을 내려가다 보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냅다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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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도계 금수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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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난쟁이와 피노키오



골목길에 있는 집들은 왜 그렇게 개들이 많을까, 밤이 무서워서 그럴까.

걸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개줄로 묶여 있기도 했지만 그냥 문 앞에서 짖기도 해 포기하고 내려올 때가 많다.

마을 주민들도 '여길 왜 왔지'하는 시선은 조금 불쾌했다.

아주머니 다섯 명이 앉아 위아래로 나를 훑어볼 때 눈이 딱 마주쳤다 "윗길로 나가는 길은 없나요?"

멋쩍은지 "다시 내려가야 돼요." 하며 짧게 말씀하시고 고개를 돌리셨다.

낯선 사람이라 그럴 수는 있겠지만 여기도 괜히 왔나. 온통 개들만 있는 이 골목길은 동화 같은 이야기를 내세울게 아니라 집집마다 개줄을 먼저 해야 한다.

큰소리를 내며 다니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도 난 이방인일 수 밖에는 없는 건가.

개의 짖음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을 모르니 큰 소리에는 이겨 낼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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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오늘따라 파랗다



도계읍에는 몇 곳의 여행 스폿은 있지만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버스를 많이 타고 와 쉬고 싶어 여기저기를 봐도 마땅한 카페도 없다. 태백으로 넘어가려 해도 시간대가 맞지 않아 과감히 포기하고 일찍 강릉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여행은 꼭 볼거리가 많아야 즐거운 건 아니다. 한 곳을 가더라도 내 맘에 들고 즐거우면 그만이다. 새벽부터 떠났는데 끝 마음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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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그을린 자국들, 아직도 작업중



터미널에서 30분을 더 기다려 버스에 타고 이어폰을 꽂았다. 그 노래의 주인공은 '김건모'와 '김광석'이다.

내가 한창 즐길 때 들었던 메들리로 극과 극의 두 음악으로 기분을 다시 업시켰다.

나 혼자만의 여행이지만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보고 싶은 만큼 만족스러운 여행은 아니지만 시간을 허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곳에 대한 도전이었고 그 시절 화려했던 탄광촌도 멀리서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깨끗해진 동네를 보고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린 시절이 생각날 만큼 잠깐이지만 감성 세포가 살아 숨 쉬는 골목길 여행은 내 기억 속에 하나, 둘씩 쌓이는 저장고에 넣어 두었다.

여행은 직접 보는 것도, 버스도 타며 그곳을 지나며 눈에 담는 것도 나에게는 같다.

속초에서 강릉, 강릉에서 동해, 삼척, 도계로 오고 가는 내내 바깥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버스에서 잠도 들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귀가 아프도록 들은 걸로도 행복하다.



KakaoTalk_20211217_102943685_07.jpg 이 파란 문 뒤로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화려한 벽화 뒤에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익숙함에 길들여져 여행을 떠나다 보면 낯설어도 내가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아차'해도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나는 지금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그 낯섦에 당황했지만 오롯이 여행에서 주는 즐거움에 충실한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기에,



인생이란 길을 걷다 보면 늘 구부러진 모퉁이가 나오기 마련이래요.
새로운 모퉁이를 돌았을 때 그 앞에는 무엇이 기다릴까요?
전 거기에 희망과 꿈이 있을 거라고 믿고 걸어가기로 했어요.

빨간 머리 앤(Ann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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