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을 도통 모르겠어
어쩌다보니 몇 년 째 10대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만 몸담고 있다. 어른이 되면 어른끼리 노는 게 당연한지라, 어린 사용자와 만날 일도 이야기 할 일도 많은 나는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어른이 된지 오래되었지만 학생의 트렌드를 꿰고있다는 사실 덕분인지 세상의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는 사람인 것 처럼 취급해준다.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애들은 뭐가 달라?'라는 질문이다. 거기에 더해 '힘들지?'라는 우려까지. 아무래도 학생 시절 어른을 힘들게 했거나, 힘들게 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려나. 돌이켜보면 어리다고해서 사용자가 기획자를 더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쌓여버린 어른이 갖가지 방법으로 기획자를 괴롭게 만들지 않을까?
그럼 어른 타겟인 서비스와 똑같이 대우해도 될까? 똑같이 대우해도 된다. 아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 그게 더 자연스럽고, 오히려 애 취급하면 기분이 나쁜 법. 오은영 박사님이 어린 친구들을 위한 서비스를 한대도 애 취급은 안 할 거다.
다만 어린 나이를 타겟으로 한다면 명심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는 나이,라기 보다는 절대적으로 살아온 시간이 짧기 때문에 생기는 특징이다. 어른이 되면서 두 특성은 자연스럽게 소멸하기 때문에 PO나 리더 쯤 되면 완전히 잊어버릴 수도 있다. 이 경우 사용자를 대상으로 시행착오를 많이, 아주 많이 할 수도 있고 이 것 때문에 서비스가 망해버리기도 해서 반드시 주의해야한다.
첫 번째. 어린 사용자는 (게임이, 서비스가, 상품이) 빨리 질린다.
어른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어른이 되어서 회사에 가면 공감하겠지만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1년이 아주 빠르다. 아마 나이가 더 들게되면 10년도 빠르게 느껴질 테다. 그런데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그렇게 시간이 안 갔던 것 같다. 곧 온다던 아빠를 한참 기다려도 안왔고, 선생님도 엄마도 좀 있으면 방학이라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방학은 오지 않았다.
실제로 어린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보다 느리게 간다. 어제 태어난 신생아에게 오늘 하루는 인생의 50%이고, 10살 짜리에게 오늘 하루는 1/3650인데, 30살이 먹은 내 친구에게 오늘 하루는 1/10000쯤 된다. 이렇다보니 어른에게는 후딱 가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어린 사용자는 '오래'라고 경험한다. 종종 어린 사용자들이 한 달 정도를 '오래 전'이라고 표현하거나, 나온지 한 달도 안 된 게임 리뷰에 '작년부터 했는데'라고 써두는 경우도 있다. 그
래서 어린 사용자가 서비스를 즐기는데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느껴지는 '새로움'이라는 감정이다. 어른 입장에서 별 것 아닌 변화를 주더라도 어린 사용자는 신선하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자극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
만약 알파세대나 Z세대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출시한다면, 별 것 아니더라도 꼭 자주 업데이트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의 입장에서 결정하다보면 혁신적인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면서 두 달 길면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큰 변화가 곧 큰 만족을 일으킬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주 쯤 되면 어린 친구들은 금새 질려하고, 아마 2달 쯤 되면 절반 이상의 사용자는 떠나고 없을 거다. 질려도 진짜 너무x100 질려서...
그러니까 반드시 기억하자. 서비스 업데이트든, 콘텐츠 업데이트든 업데이트를 이게 맞나?싶을 정도로 자주 해줄 것! 해주면 지표가 올라오고, 안해주면 지표가 떡락한다.
두 번째. 내 의견 왜 안 들어줘?라는 생각을 하게 하면 안된다.
무조건 의견을 들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의견을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어린 친구들은 우주를 블랙홀 처럼 빠른 속도로 흡수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그 세계의 주인공은 스스로가 된다. 세상의 주인공이 나다라는 생각은 해본지 오래인 어른들과는 많이 다르다.
어른의 세계를 떠올려보면 가족, 회사, 친구, 운동, 유튜브, 인스타그램, 취미 활동, 커리어 등 다양하게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어린이의 세계는 가족, 친구, 공부, 게임 정도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세계에 들어와버린 것에 크게 흔들리거나 집착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난다.
학생 때를 떠올려보면 가장 싫었던 상황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나 빼고 논다거나, 가족 중에 나만 빼고 마트에 갔다거나 했다는 얘기는 듣자 마자 마음을 철렁하게 만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일이 그 때는 정말 별 일이 되어서 가슴을 쿵쿵 울리곤 했다.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의 사고방식이 적용된다. 어린 사용자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 주인공이 된다. 수 십 만 명 중에 한 명인 사용자가 아니라, 폰을 사이에 두고 1:1로 제작자와 대화하는 나를 상상한다.
하지만 온라인 세상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서비스는 어른의 말과 어른의 방식으로 운영된다. 14세 미만은 회원가입을 하려고 해도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어른이 쓰는 서비스를 따라 쓰다보면 가혹할 정도로 조연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어린 사용자의 배경을 파악하고 나면 사용자를 대하는 난이도가 조금은 쉬워진다. 사용자가 참여할 만한 경험을 많이 제공하면 된다.
게임 아이템에 아이디어를 받는다거나, 마케팅용 캐릭터의 이름을 지어달라거나 하는 등의 활동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될 서비스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해주고, 심지어 반영해주기까지 한다? 그들은 서비스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굴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아직 사회적인 선(line)을 잘 몰라서 갑질 혹은 완장질을 하기도 한다. 업데이트 방향이 마음에 안들기라도 하면 "내 얘기를 왜 안들어? 내가 리뷰 1점 주면 어쩔껀데? 내가 이 앱 접을 거야. 친구한테도 접으라고 할 거야." 같은 귀여운 듯 귀엽지 않은 협박을 많이들 한다. 다만, 이는 어른들에게도 보이는 태도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CS로 처리하면 된다.
지금까지 어린 사용자를 대상으로 서비스할 때 주의해야 할 두 가지를 알아보았다. 학생 사용자가 우연이라도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나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덕분에 나는 매일 매일이 새로운 자극으로 가득한 열 다섯살의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니까. 인생 2회차쯤 되어서 돌아본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