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본 우리 마을은 온통 까만색이다.
제철이 돌아왔다. 까망 공주 1번이 등장하는 그 계절이 돌아온 거다.
해녀들은 새벽부터 바닷가에 나가 바다 깊숙한 곳에서 미역을 채취해 온다.
오전에 한 트럭 가득 미역을 싣고 오면 가족이 모두 모여 그 미역을 다듬고 마당에 널기 시작한다. 여기 바닷가 마을에서 까망 공주가 빛을 발하는 그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까망 공주는 온 동네를 비릿한 바다 냄새로 가득 채운다.
갓 바다에서 건져 올린 까망 공주는 축 늘어진 채 널브러져 있다. 끈적대는 옷을 입은 채로 잡힌 것이 억울한 듯하다. 미끌미끌 거리는 울음을 터트리기에 선뜻 다가가기가 싫다. 하지만 건조를 한 후에는 내가 언제 그런 모습이었냐는 듯, 분이 올라 마치 화장한 새색시처럼 웃고 있다. 말라버린 까망 공주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자신을 풀어내어 산모에게 더없이 중요한 영양을 공급해준다.
5월이 지나 6월이 되면 이제 마을에서 미역을 다듬고 널던 사람들을 한 명도 볼 수가 없다. 6월이 되던 첫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집을 나간 줄 알았다. 마을이 너무 고요했다.
혼자 사시는 동네 할머니 한 분을 며칠째 볼 수가 없어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바닷가 항구였다. 그곳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새댁, 왔어?”
“할머니, 오랫동안 뵙지 못해 걱정되어 찾아다녔어요.”
빙그레 웃으시는 할머니 손에 큰 그릇 가득 무언가 담겨있다. 먹으라는 손짓에 한입 먹으려다 입을 바로 떼었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벗겨진 까망 가시들은 뾰족뾰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 그게 뭐예요?”
“성게를 처음 보는구먼? 이거 귀한데 몸에도 좋아서 아는 사람들은 아주 환장을 해!”
한 개를 까 봐야 찻숟가락만큼 나올만한 성게를 큰 대접째로 덥석 건넨 할머니의 따뜻한 손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이의 그림책에서나 봤던 비싸고 귀한 성게가 눈앞에 지천으로 펼쳐진다. 여전히 낯선 시선과 바다 향기는 익숙지 않다. 까망 것들 때문에 불만이었고 불편했다. 하지만 까망이들은 이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마치 서로의 경계를 풀고 막 시작하려는 연애처럼 기대와 설렘 가득한 시간이 되어 주었다.
우리가 바닷가 마을로 이사할 때는 매서운 바닷바람이 부는 1월이었다.
“계세요? 새댁. 오늘 이사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뭐 먹을 거라도 있어?”
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뒤로한 채 할머니는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나는 여기 뒤에 살고 있어요. 오늘 이사하느라 먹을만한 게 없을 듯해서 미역국 좀 끓여왔지.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저녁으로 한 끼 드셔 보쇼.”
“아. 네. 감사합니다.”
이사한 첫날 아직은 모든 게 낯설을 때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주신 할머니가 계신다. 이 익숙지 않은 낯섦으로 인해 그 할머니를 빈손으로 보내드렸다.
하루 이틀 지나자 이번엔 마른미역을 가지고 오셨다. 여전히 내겐 익숙지 않은 불편한 시간들이었다. 나에게 친절이란 받은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행태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낯선 만남이 안겨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이 반갑지 않은 상황은 때론 불안과 공포를 동반하기에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 그래서 늘 익숙한 반경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일이 일상이었다. 왜? 그것이 편하고 다행스럽고 만족할 수 있기에 말이다.
현실 안주를 위한 낯섦을 배척하는 일이야말로 꽤 합리적인 거부이다. 가뜩이나 신경 써야 할 일 많은 세상 아닌가?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인한 불편한 부침을 피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 되기에 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늘 일정 거리를 두고선 낯섦이 주는 거리를 좁히려 따로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방비상태인 그 자리로 갑작스레 들어온 까망 공주들이 있었다. 이들 덕분에 나는 낯섦에 거리를 애써 두지 않기로 했다. 다가오는 공주들 때문에 벌어진 거리가 가까워지더라도 왠지 불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낯선 만남으로 유지되어야 했던 안전거리는 어느새 해제되었다. 대신 그 빈 공간에 새로운 기대와 즐거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