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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Jan 14. 2024

둘째 언니와 2박 3일(2)

흙을 사랑하는 언니

나도 성인이 되고 앞가림할 만한데, 농사를 짓는 큰언니와 둘째 언니는 농산물을 택배로 보내고, 셋째 언니는 반찬을 만들어 준다. 직장 생활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다듬고 만들어서 보낸다.

들깨와 참깨는 생 것, 볶은 것, 깨소금, 기름, 개피 낸 것 등 가공할 수 있는 종류대로 다 챙기는 식이다.

온갖 채소와 먹거리를 빵빵하게 택배온다.

택배 상자에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무엇으로든 채운다. 그 공간이 아까운 거다.

오는 동안 뜨거나 상할 위험이 있음에도 막무가내다.

그래도 먹을 것이 남으리니.

파릇파릇 새순들이 돋는 3월이면 두 언니에게서 어김없이 택배가 온다.

두릅, 쑥, 달래, 머위 등 봄나물이 가득하다.

동생이 좋아하는 머위를 보내려다 보니 여러 봄나물까지 챙기게 되는 것이다.

머위로 나물과 장아찌를 만든다. 머위장아찌는 쌉쌀, 달콤한 맛이 고기와 곁들이면 상큼함이 그만이다.

머위나물은 남편도 좋아하여 내 양만큼 못 먹을 위험이 있을 때도 있다.

 때는 비상 수단을 쓴다. 조금 숨겨놓았다가 혼자 더 먹는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다.

우리 언니들이 동생 먹으라고 보낸 것이니까.

퇴직하고 나서, 나도 이젠 시간이 있으니 그만 보내시라 해도 여전히 계속되더니, 결국은 당신들이 농사짓기 힘든 나이가 되니 자연적으로 줄어들었다.


언니의 택배


땅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언니의 농경지들을 둘러보고 싶어 들녘으로 나왔다. 맹 추위를 떨치던 기온이 한풀 꺾인 듯 햇살이 따사로웠다. 마을 뒤를 둘러싸고 있는 백련산의 정상이 하얗다. 안개인가 눈인가 구별이 어렵다. 2차선 도로와 접하여 펼쳐진 언니네 논과 밭들을 마주 보고 섰다. 논을 지나 제방이 있고 그 너머에 섬진강으로 합류하는 냇물이 흐른다. 그나마 좀 젊었을 때, 네 자매가 다슬기를 잡던 하천이다. 그 연유로 아들은 이 둘째 언니를 '다슬기 이모'라 부른다.

언니가 어떻게 이 땅들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꿈만 같다며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보리와 밭작물들을 지어 자금이 들어오면, 공교롭게도 그 돈으로 살만한 땅이 나왔다.

땅 주인이 값을 부르면 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위기였다가도 언니네로 돌아오기도 했다. 

가지려조금 더 주어야 내 것이 되더라는 것이다.

흙을 지키기 위해 싸우기도 했다.

동네의 하천 공사를 하며 허락 없이 밭의 흙을 파가 버렸다. 관할 청에 문의하고, 해당 업체를 상대로 싸워

다시 채워 넣었다. 농사꾼은 흙 한 테미를 거름 한 테미와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흙을 소중히 여긴다. 

장성한 아들이 해결하게 하지 그러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인심 잃기 쉬운 일을 굳이 아들을 시킬

필요가 있냐는 지혜로운 아들 사랑이다.

여러 배미인 밭을 사서 지렛대로 바위를 파내고, 자갈을 정리해 한 배미로 만들었다.

원래 큰 밭인 줄 알았는데 그런 노동이 숨어 있었다.

그 밭 가에  고목이 된 먹감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울퉁불퉁한 괭이와 삭아 떨어질 듯한 나뭇가지와 검고 도드라진 껍질로 싸인 나무 몸체가 세월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생을 다한 나무 같아도, 봄이 되면 새순이 돋아 난다. 먹감은 감의 표면에 먹물을 칠한 듯, 검은 무늬 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이 지역에만 있는 것 같다.

껍질이 두꺼우나 서리를 맞으면 오히려 포근포근한 것이 껍질까지 먹어도 달고 부드럽다.

감의 씨를 감싸고 있는 살을 혀로 벗겨 먹으면 달콤. 쫄깃한 맛이 그만이다.

감나무를 보니 택배에 터져서 왔던 감을 발라 먹느라 곤욕을 치렀던 생각이 난다.


언니와 농로를 걸었다. 논두렁 사이사이의 공간에도 작물을 심은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겨울날에 초록빛은 무엇인고 보니, 겨울상추를 심어 놓았다. 많은 농지가 있음에도 땅을 최대한 이용한다.

흙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들녘이다.    




둘째 언니의 삶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듯 평범해 보였지만, 그 안에 어려움을 뚝심 있게 이겨내 온 지혜가 녹아 있었다. 농사에 묻혀 편안함을 잊은 채 살아온 언니의 무릎은 휘고

손은 삼태기 같이 거칠고, 얼굴은 무늬가 생기고 골이 깊어졌지만, 웃는 모습은 여전히 활짝 핀 모란 같다. 젊은 시절, 어느 누가 "말 탄 임도 돌아보것"하며 청혼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언니의 아름다움이 지금은 어디로 갔나 싶지만, 연륜과 함께 고고함이 묻어나는 모습이어서 다행이다. 언니와 2박 3일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흙을 사랑하며 숭고하게 살아오신 언니가 더욱 존경스러워졌다.

모든 것을 자식처럼 동생을 챙기던 둘째 언니가 이제 남은 여생은 편안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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