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님 Apr 06. 2024

흔적(3)

큰 아버지의 사랑

막내인 남동생은 추석 무렵 우리 가족의 애환이 많은 오수 집에서 태어났다. 남동생 돌날, 큰아버지께서 집에 오신 이야기를 둘째 언니가 전했다. 동생을 살뜰히 도 아꼈다던 큰아버지 이야기 중 하나다.   

   

큰아버지는 첫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순창에서 오수로 출발하셨다. 전날 내린 비로 적성의 섬진강 물이 불어나 있었다. 옷과 짐을 머리 위로 올리고 강을 건넜다. 깊은 곳은 물이 턱밑까지 찰랑거렸다. 발바닥 밑에서는 모래가 물에 쓸려나가는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가까스로 강을 건너고 굽이굽이 먼 길을 걸어 도착하셨다. 큰아버지의 짐 보따리에는 올기쌀이 들어 있었다. 벼가 다 익기 전에 양식이 떨어지니, 좀 일찍 여문 것을 훑어다가 솥에 찌고 말리고, 절구에 찧어 만든 햅쌀이었다. 조카 돌상에 햅쌀을 넣어 밥을 지으라고 가져오신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행여 돌상도 못 차릴까 봐 걱정되어 꼭두 새벽부터 가져오신 것이라는 걸  어머니는 아셨다. 어머니와 큰아버지께서는 서로 살짝 비켜 앉아 말씀을 나누셨다. 어머니께서는 연신 눈시울을 적시고 계셨다.      




올기쌀이라고 하니, 내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생활이 조금 여유로워진 것인지 올기쌀을 주전부리로도 먹었다. 푸른 듯 노르스름한 빛깔이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나눠 먹기도 했다. 고개를 치켜들고 한 줌씩 입에 털어 넣고 오도독 씹으면, 쫀득한 것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그 맛이 손을 주머니 속으로 계속 드나들게 만들었다. 다 없어질 때까지. 요즘도 추석 무렵이면 햅쌀이라 하여 올기쌀이 시중에 나온다. 이제는 올기쌀이라고 하면 큰 아버지 사랑을 떠 올리게 된다.    


올기쌀 /출처: 네이버.

  

큰아버지께서 걸어오신 그 길, 21번 도로를 길 찾기로 거리 재기를 해 보았다. 거리 30km, 도보 7시간 50분이다. 지금의 이 길은 직선으로 내거나 우회도로를 만들어 거리를 단축시킨 길이니, 68년 전에는 더 멀고 험했으리라. 순창에서 오수까지, 지금도 걷기에는 먼 길이다.   


큰 아버지는 아버지를 늘 사랑 가득한 눈으로 보셨단다. 동생을 이렇게 지긋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노라고, 둘째 언니가 표정을 지어가며 흉내를 낸다. 전해 듣는 이야기만으로도, 기억에 없는 그 시절이 실감 나게 떠 올려진다.

아름다운 형제 사랑의 그림 동화 속, 옛날이야기처럼.      

작가의 이전글 흔적(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