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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싶은 먹거리: 프롤로그

먹거리는 곧 관계다.

by 해바라기

나는 원래도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 살 때는 홀푸드(Whole Foods)에서 유기농 식재료를 고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신선한 채소, 자연방목 계란, 유기농 과일을 사면서 ‘건강한 먹거리’가 주는 만족감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가지면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졌다. 내가 먹는 것이 곧 아이의 몸을 만들 테니까.


그러던 중,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졌다.

그리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건강한 계란’이라 믿었는데, 살충제 계란이었다

나는 그때 한살림 최고등급 유정란을 아이 이유식에 사용하고 있었다. 가장 안전하고 건강한 계란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에 따르면, 내가 아이에게 먹이고 있던 계란에서조차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나는 아이에게 건강한 계란을 먹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살충제를 먹이고 있었던 거야?"

머리가 하얘졌다. 마트에서 좋은 제품을 골랐다고 안심했던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라벨을 보고 유기농이라고 믿었던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제 아이에게 어떤 것을 먹어야 하나? 처참한 마음이었다.


농장을 찾아 헤매다

그때부터 나는 직접 신뢰할 수 있는 계란 농장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서 키운 닭이 낳은 계란인지 알아야 안심할 수 있다."
"계란도 ‘직거래’할 수는 없을까?"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살충제에 검출되지 않은 자연방목 유정란을 파는 농장을 찾았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았던지 농장으로부터 계란을 받기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몇 달의 기다림 끝에 처음으로 계란을 배송받았다.

“혹시 정기배송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정기배송 계란을 우선적으로 보내준다는 점과 이렇게 건강한 계란을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 자연방목 유정란 정기배송을 시작했다.


농장과 연결되다

농장에서 보내온 첫 번째 계란은 유기농 매장이나 마트에서 사던 것과 달랐다.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이었고, 노른자의 색상도 푸른빛이 도는 연노란색부터 진한 노란색까지 다양했다. 처음 계란을 깨 보았을 때 흰자의 신선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계란의 맛이 아니라, 그 계란이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이었다.

마트에서 라벨을 보고 선택하는 것과, 농장주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계란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가끔씩 보내주시는 초란은 정말로 귀하게 느껴졌다.

네이버카페에 올려주시는 농장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농장 아저씨가 낙향한 사연, 건강한 계란을 만들기까지 고생하셨던 이야기들, 건강한 음식을 받고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 계절별 농장의 풍경과 일상들까지.

"마트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이야기네."

그렇게 계란을 보내주는 농부와 나는 단순히 소비자와 생산자가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하나의 커뮤니티 속에 엮이게 되었다.


먹거리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계란을 시작으로, 나는 블루베리 농장, 유기농 과일 농장 등을 하나씩 찾아갔다.
마트에서 ‘가장 신선해 보이는 제품’을 고르던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길러낸 먹거리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는 블루베리 할아버지, 계란 아저씨, 사과 할머니 같은 친숙한 존재들이 생겼다.


음식이 남기는 것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계란을 깨면서 묻는다. "이거 계란 아저씨네 농장에서 온 거 맞지?"

아이들은 단순히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키운 것인지 알고 먹는다. 마트에서 사 온 계란이 아니라 나와 관계있는 누군가가 정성으로 기르고 만든 계란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떠올린다. 먹거리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먹거리는 관계다.

그리고 그 관계가 쌓이면, 먹거리는 우리 삶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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