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속도를 믿고 기다립니다 (4)
아이가 4학년이 되면서부터 주변 친구들과의 학습 차이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동안 학교 수업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독서를 즐기며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보였기에 학습에 대한 특별한 불안은 없었다. 하지만, 4학년이 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학원에서 선행으로 수학과 영어를 공부한 친구들과의 차이를 아이가 학교에서 느끼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친구들은 집에서 매일 수학 문제를 푼대.”
"OO는 영어를 엄청 잘해."
그 순간, 나는 아이가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학습보다는 신체 발달과 정서적 안정에 더 집중했던 나로서는 그 말이 조금 낯설게 들렸다.
아이가 수학이 어렵다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실 그동안은 학원에 보내지 않았기에 객관적으로 아이의 수준을 파악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주변 학부모가 수학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아이도 한 번 받아보기로 했다. 테스트를 앞둔 날, 아이는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엄마, 나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풀고 나오면 돼. 만약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지금부터 채워나가면 되지. 엄마가 도와줄게.”
테스트를 마친 아이는 문제가 조금 어려웠던 것 같았다. 문제집을 거의 풀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은 유형의 문제들이 많았을 것이다. 아이는 처음에는 덤덤한 듯 있더니 집에 돌아와 조금 지나자, 느낀 바를 이야기했다.
“엄마, 나 문제가 많이 어려웠어. 나 괜찮은 걸까?”
"그랬었구나. 우리 딸이 문제집을 많이 안 풀어봐서 그래. 익숙해지면 우리 딸도 잘할 수 있을 거야. 지금부터 엄마랑 수학 문제도 풀고 예습도 조금씩 해볼까?"
"예습하면 나야 좋지."
그 말에 순간 마음이 찡해졌다. 아이도 어렴풋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었나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우리 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럼 내일부터 하루에 한 페이지씩 수학 문제를 풀어보자. 엄마가 옆에서 도와줄게."
아이가 한결 밝은 표정으로 알았다고 답했다.
사실 나도 아이가 레벨 테스트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동안 사교육을 피하면서 아이의 속도에 맞춘 교육을 선택했던 내가 과연 옳았을까? 혹시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날 이후 일주일 정도 마음이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다음날 서점에 가서 수학 문제집을 사 왔다. 현재 아이가 얼마나 소화할지 알 수 없어서 상황에 맞게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난이도의 연산 문제집과 현행 진도에 맞는 문제집을 골랐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난이도를 올려갈 계획이었다. 서점에 가는 발걸음부터 착잡했다. 다양한 문제집을 둘러보며 새삼 내가 무관심했나 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내 마음이 이리 흔들려서야 아이를 가르칠 수 있을까 싶어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니 죄책감이 들어앉아 있었다.
매번 돌고 도는 생각들을 지나서, 처음에 내가 했던 생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실질적인 성과가 있는 공부보다 학습 정서가 더 중요했고, 때가 되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생겼을 때, 그때 하는 공부가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었을 때 공부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 성실함과 끈기, 집중력을 길러주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바로 지금이 아이와 나를 믿고 내가 계획했던 일을 실천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부터 아이와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와 함께 기초부터 차근차근 학습을 시작할 계획이다. 무조건 선행 학습을 따라가기보다는, 아이가 이해하고 스스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부모로서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의 성장을 믿고 부모로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교육 철학을 고수할 것인지,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것인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변화와 성장에 귀 기울이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통해 천천히 채워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여러분은 아이의 학습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계신가요?
부모로서 아이의 성장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