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놓아두기

오르기 위해선 잠시 땅을 봐야 한다.

5년 만의 등산

  초등학생 때는 아버지와 등산을 많이 다녔던 것 같은데, 중학교 2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시험 일정도 있고, 귀찮기도 해서 등산을 안 가게 되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아버지께서 연휴에 등산을 가자고 하셨다. 나로서는 요즘 기분 전환이 필요할 시기이기도 하고, 내 체력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별 고민 없이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북한산을 오르게 되었다.

  초입에는 늘 그렇듯 길고 낮은 경사의 길이 있었다. 올라가다 보면 북한산 탐방 지원 센터(맞는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진짜 등산이라고 부를 만한 경사로가 있었다. 그렇게 한 2시간 정도를 더 올라가자, 정상이 보였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 험난했는데, 사람들도 많고 위험한 길이라 굳이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 사진을 찍고, 다시 천천히 내려왔다. 간단한 등산이었지만, 생각보다 느낀 게 많았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는 사람들

  사실 그동안 나는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워낙 상투적인 비유이기도 하고,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둘레길 돌듯 소소하게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산에 오르지 않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면서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근데 산에 오르고,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생겼다.

가끔은 무엇을 위해 오르는지 몰라도 괜찮다

  산에 오르면서, 가방을 메고 오르다 보면, 내가 정상에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그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상에 오르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한 걸음이 올바른 뱡향으로 가고 있는 한, 나는 정상을 향해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명확한 목표의식을 항상 새기고 살아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들 때는 잠시 목표 의식을 잃고 지금 내 앞에 놓인 길에 집중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정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힘든 시간만 더 늘어날 뿐이다. 그저 갈림길을 선택할 때,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떠올릴 수만 있으면 된다.

정상이 보이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만들어 둔 길을 따르자

  등산을 하다 보면 가끔 정상이 어느 뱡향인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상이 보이는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옳은 일인 것은 아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 둔, 정해진 등산로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괜히 나만의 길을 개척하려 하다가는, 위험에 빠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홍대병'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려고 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나도 지금까지 나만의 길을 개척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게 정상이 보이는 곳에서는 가능할지 모르나, 정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로 남들과 다른 길로 가는 일이니 말이다.

오르고 나야 깨닫는다

  솔직히 산에 오르는 중에는 내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결국 정상에 도달하면 내가 올라온 길들이 어땠는지, 정상까지 내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전부 보인다. 올라오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내가 온 길을 계속해서 되돌아보려고 했었다. 매일매일 내가 목표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항상 확인하고 개선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야 내가 얼마나 올라왔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하루하루 내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시간 간격을 두고 특정한 시점에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더 성취감이 클 것 같다.

그럼에도,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항상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가끔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만들어 둔 길을 따라가고 있더라도, 내가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지는 않아야 한다. 잠깐 멈춰서 쉬어갈 때나, 지쳐서 동기 부여가 필요할 때는 내가 어디를 향해 오르고 있는지 다시 상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목표 잠시 놓아두기

  이렇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완전히 잊지만 않는다면, 성취를 위해서 목표를 잠시 놓아두고 현재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몰입을 위해선 미래 내가 어떤 모습일지가 아니라, 현재의 내 모습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목표를 잠시 놓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에 집중하다가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쯤, 다시 목표를 꺼내 와서 힘을 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