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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Nov 29. 2022

교육과정과 현장

지난 글에서, 교육과정 문서가 ‘교과>학년’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 ‘학년>교과’로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이는 사용자, 즉 교육과정을 읽어야 할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학교는 한 교사가 모든 과목을 가르치므로 학년>교과가 보다 적합할 것이고, 중고등학교는 교과>학년이 보다 적합할 것이다. 그러면서 ‘적어도 교육과정이 교사가 보아야 하는 문서가 맞다면 말이다.’라고 글을 마쳤다. 교사들은 교육과정 문서를 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교육과정 개발자들은 그 돈과 시간을 들이며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교육과정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번 수업에서는 그동안 한참 이야기했다가 잠시 접어두었던 “역량”을 다시 꺼내며, 이번에는 OECD2030에서 이야기하는 “역량”이 우리나라 2022 교육과정 총론과 각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이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한 선생님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표방했는데 매번 이렇게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교육 현장에는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대학원에 와서 다루기 전까지는 현장에서 역량 중심이라는 말조차 잘 몰랐으며, 요새 입시에서 역량이라는 게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학문적으로 배우는 개념은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입시에서 쓰이는 “학업 역량”이라든지 “진로 역량”과 같은 말들은 우리가 논문에서 보는 예를 들어 “공동체 역량”과 같은 말에 들어있는 학문적 개념의 역량과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장 교사들은 역량 중심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고 있다고 하셨다. 수능 중심의 입시에 현장 교사들 자체가 몰입되어 있어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장에서 교원학습공동체와 같은 토론모임을 만들어 노력을 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교사들마다도 생각이 매우 다르고, 결국에는 대학에서 어떤 인재를 좋아하는지, 생기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와 같은 입시 문제로 귀결되며 입시를 벗어나서는 논의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고등학교 물리 교사이시자 현재는 교감선생님이신 한 선생님은 위의 선생님 말씀에 크게 공감하며, 어차피 역량이라는 것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를 바꾼다고 해서 습득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하셨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학교에 어떻게 들어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동안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숱하게 바뀌었어도 학교에서는 그 의도가 전혀 구현되지 않아 온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고 하셨다. 현장 교사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교사 연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연수를 듣고 이수했다는 것과, 그 내용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실행하는 의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즉, 교사들을 재교육시킨다고 변하는 문제도 아니다.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그냥 문서로만 생각하고, 학교에서 자신이 실행하는 교육과정은 교수학습 차원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셨다.


 한편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은 역량의 강조하는 것을 교육과정이 어떤 책무성을 갖고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 것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본인은 모든 교과를 혼자서 다 가르치다 보니 아무래도 평가도 좀 더 자유롭고, 교육과정 재구성도 자유로워서 스스로가 역량에 대해 아는 만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구현할 수 있었다고 하셨으며 그래서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학교급에 따라서 인식이 매우 다르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초중고의 단절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른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은 이렇게 대학원에서 교육과정을 공부하는 것은 현장에서 험난하고 외로운 길이라고 하셨다. 모든 선생님들이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면 좋겠지만, 어떤 교사는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막상 현장에서 다른 교사들은 구체적인 교수학습자료만을 요구하며 떠먹여 주기만을 바라는 것을 보면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셨다. 


 현 장학사이자 중학교 교사 한 분은, 교육과정은 문서일 뿐이고 막상 학교현장의 수업은 교수학습이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하셨다. 중학교의 경우에는 그래도 입시에 대한 부담이 덜하고 좀 더 자유로운 것은 맞지만, 중학교의 문제는 생기부의 지침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지적하셨다. 예를 들어 자유학년제를 하는 경우 과제별 세부 특기사항을 전교생을 다 다르게 써 주어야 하는데 이런 일을 할 때 교사들이 꼼수를 써서 무늬만 역량인, 글짓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변화를 귀찮아하는 점이 있다며, 어떤 변화가 있으면 교사들의 방어기제가 작용한다고 하셨다. 같은 교사로서 창피한 부분이기도 하다고 하셨다. 교육의 변화는 교사의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고 하셨고, 따라서 역량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할 일은 소용없을 문서의 생산이 아닌 교사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설득의 과정이라고 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과정이 아무리 바뀌어도 교사들의 문장 바꾸기에 그칠 것이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들을 들은 교사가 아닌 한 분은, 이런 이야기들은 비단 교사들뿐 아니라 일반 직장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 전반에 스며 있는 고질적 특징이 아닐까 하셨다. 우리나라 기업들 같은 경우도 혁신을 자꾸 주장하는 점이 있지만, 애플이나 테슬라 등 외국의 굵직한 기업들은 오히려 원형을 잘 바꾸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을 보고 오롯이 간다는 것이다. 교육과정도 국민들이 소비하는 하나의 상품으로 봤을 때, 유사한 특성이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결국 교육과정이라는 것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이 고전적이고 지겨운 말-그러나 가장 진리이며 실현되지는 않는-에 따라 아주 장기적인 시각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단기적으로 이루어지고 패기 되고 하는 낭비적인 과정이 안타깝다는 데에 우리는 입을 모았다. 아이디어 자체는 나쁘지 않을지언정 우리는 계속해서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소화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교육을 포함하여 언제쯤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것들을 소화하기 위한 절대 시간이 주어지고, ‘혁신’, ‘속도’보다 ‘기다림’, ‘섬세함’, ‘존중’과 같은 키워드가 미덕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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