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등급을 받고 토익 800-900점을 맞아도 말 한마디 못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영어 교과(한 독일 친구는 한국에서 여행을 며칠 해보고서는 한국사람들이 캄보디아 사람들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말했다.), “0포자” 양산의 대표 주자인 수학 교과,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국어 교과. 우리나라 교육 및 학교교육에서 어떤 교과, 과목의 교육이 가장 문제이냐를 두고 싸우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예술교과가 얼마나 문제인가만을 두고도 과히 밤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의 경우 예시 몇 개 보여주고는 “그려~” 하면 원래 잘 그리는 아이들은 신나게 잘 그리고, 못 그리는 아이들은 ‘나는 원래 못해’ 하며 괴로운 시간을 보낸다. 체육도 마찬가지이다. 잘하는 아이들만 날아다니는 시간이 된다. 음악은 어떤가? 노래하는 법 하나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는가? 배운 것 없이 몇 번 같이 불러보고는 그냥 시험만 보지는 않았는가? 그러면 좀 타고났거나 어디서 사교육을 받아 원래 잘하는 아이들은 A를 받고, 못 하는 아이들은 배우지도 못했는데 C를 받는다.
한편 우리나라는 문화예술 강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도 세계적이고, 대중음악뿐 아니라 클래식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콩쿠르 상을 휩쓸고 다니기도 한다. 그 아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바로 학교를 떠나서 배우고 성장했다. 나도 어릴 적 피아노를 일찍부터 배워서 오래 쳤기 때문에 피아노 선생님은 내가 전공을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이 지나면서 나는 피아노를 확실히 전공하지 않기로 하며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나는 다른 공부도 나름 잘하고 있었고 놓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음악을 전공하려면 그때부터는 다른 것은 모두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예술고등학교에 가고자 하는 친구들은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는 거짓 증서를 떼고는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입시 학원에 가서 살기 시작했다.
그럼 학교 교육으로서의 음악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사실 음악을 ‘잘하는’ 아이들의 경우 천재가 아닌 이상 대체로 ‘개인 레슨’을 통해 재능을 키운 것이다. 그럼 20-30명을 한 반에 모아놓고 해야 하는 학교 음악 교육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각국의 음악 교육의 주안점을 살펴보면, 한국과 핀란드는 음악교과를 ‘음악을 평생 즐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한 교과’로 보고 있고, 호주, 프랑스, 캐나다 BC 주는 음악을 ‘학생들의 개인적, 사회적 능력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교과’로 보고 있다. 전자는 그래도 음악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후자는 음악을 다른 능력에 ‘영향을 끼치는’, 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다른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학교에서의 음악교육은 그렇게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다. 교육과정을 가지고 좀 더 “솔직해 지자”고 하는 호소는 음악교과에서도 할 만한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 음악 교육과정의 목적에서는 음악교육을 ‘음악을 평생 즐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한 교과’로 보고 있다고 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말하고 있는 목적과 또 앞뒤가 다르다. 음악과 교육과정도 여느 교과와 마찬가지로 대학에서의 학문 및 전공 내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서양음악과 교수들과 국악과 교수들이 어떻게 서로 싸우고 있는지가 교육과정에 그대로 반영이 된다. 현실은, 서양음악 전공자들은 국악에 관심이 없고 국악 전공자들은 서양음악을 경계하며, 나머지 사람들은 둘 다에 문외한이다.
교육에서 중요한 건 교사인데, 학교의 음악 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한 교사가 모든 교과를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는 음악을 너무 모르고, 전공별로 양성되는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들은 음악밖에 모른다. 실제로 중고등학교 교사들 중에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대부분의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중1까지 피아노를 하다가 그 길로 가지 않았다고 했는데, 음악에 대한 미련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해서 대부분의 동기들이 영어나 국어를 교직 자격을 위한 복수전공으로 신청할 때 예술대학의 음악예술전공을 복수전공으로 하여 결국 음악 교직을 취득했다. 그리고 졸업학년 때 학교의 부설 중학교에 가서 교생 실습을 하게 되었는데, 지도교사와 음악교육에 대한 철학이 서로 맞지 않아 혼이 났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더욱 미성숙한 음악 교육 철학을 지니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과거에 학교 음악시간을 진심으로 즐겼던 한 학생으로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있어 학교 음악시간만큼은 정말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자신이 노래를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아이들이 목소리를 아예 닫는다.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을 평생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음악 교육의 목적이라면, 학생들이 막 사춘기를 지나는 중학교에서는 그 아이들의 목소리를 닫지 않도록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당시 만났던 나의 지도교사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거의 노래하지 않았다. 모기 목소리만 내거나 립싱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가 올바른 방법으로만 노래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노래하는 기술을 연마하려면 한 명씩 붙잡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도 않을 거면서 시범만 한 번 보여주고 그렇게 하라고 하니,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이다. 내 수업에서는 마음껏 노래할 수 있도록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수업을 마치고 그렇게 하게 하면 아이들 목 다친다며 지적을 받았다. 어차피 음악시간에 목 안 다치게 해도 노래방 가서 자기들 맘대로 다 부를 것인데… 그리고 당시 그 교사가 시도했던 것은 두성 창법인데, 아이들이 완전히 번성기가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두성을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음악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IB 교육이 비판받는 점 중에 한 가지는 예술 교육을 경시한다는 점이다. 현행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경우 고등학교에서도 미술, 음악, 체육을 그래도 한 시간씩이라도 모두 따로 배우도록 한다. 그런데 IBDP에서는 예체 영역에서 교과들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체육도 따로 없고 예술 전 영역에서 딱 한 과목만 선택을 하며, 아예 예술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과학이나 언어 등 다른 교과 그룹 중에서 하나를 더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예술은 하나의 과목으로서 전혀 배우지 않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 교육을 덜 경시한다는 우리나라 교육의 실상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다. 한 마디로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게 없다. 그런 수업이면 솔직히 안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다른 데서 배워서 잘하는 아이들만 신나는 수업이라면, 수업보다는 동아리 활동이나 창의-체험-봉사 활동에서 좋아하는 예술 영역 관련 활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진짜 학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배우고 또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표⋅그림 출처 및 참고문헌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8). 초ㆍ중등학교 교과 교육과정 국제 비교 연구. 충청북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