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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Jan 31. 2024

‘여행의 이유’는 무엇일까

(10)

한국으로 잠시 돌아간다. 꿈과 같던 며칠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이제야 친구네 집의 샤워기 온도 조절에 막 적응했는데.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여러 가지가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걸 그 순간에 좀 더 잘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공항, 아니 모든 수속도 마치고 게이트 앞에 탑승 시간보다 3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이것저것 정리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져 기쁘다. 환전한 돈이 남아 면세 쇼핑이라도 마음껏 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베이징 공항은 여전히 코로나의 여파인 것인지 다른 곳에 새 공항이 생겨서인지 면세점들은 거의 영업을 하지 않고 있으며 사람 자체도 거의 없다. 그래서 시간이 더 많다. 어쩐지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어제 하루는 꽤 피곤했었으며, 친구의 실수로 집에 매우 늦게 귀가한 데다가 새벽 1시까지 그날 찍은 스냅사진을 고르는 작업을 했고, 나는 책 1권을 친구에게 주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책 필사까지 마치느라 새벽 2시가 다 되어 잠에 들었으며 오늘 아침 꽤 일찍부터 움직였는데도 말이다.


남은 돈을 세어보았다. 이렇게 환전한 돈을 남기고 돌아갈 때가 없었는데. 친구와 친구의 가족은 내가 거의 돈을 못쓰게 했다. 손님을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하는 것이 중국의 문화라면서. 숙박비, 식비, 교통비 등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역으로 상상해 보아도 나는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만큼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탑승까지 남은 시간, 그리고 비행기에서의 시간 동안 며칠 간의 이 여행기를 다 마무리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수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에는 오해했다가 여행 중에 오해가 풀린 것들이 몇까지 떠오르기에. 여행을 마치는 지금 시점에서의 해석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여행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채로 흘러갔다. 아무 계획도 정보도 없이 친구 하나 믿고 비행기표를 끊고 날아왔다. 그리고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 나는 친구에게 ‘네가 나를 처음 이곳에 초대했을 때부터 이런 여행을 예상했던 것인지’ 질문했다. 그랬더니 친구조차 사실 자신의 부모님께서 그렇게까지 해주시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중국 여행을 추천하느냐고 하면 사실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중국 자체를 그리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다만 중국의 ‘실상’을 목격하고 왔다는 생각이 더 든다. 물론 사막이라든지 드넓은 초원이라든지 대자연을 보러는 충분히 여행할 가치가 하다만, 현지인 가족 없이 나는 그곳에 어떻게 다시 갈 수 있는지를 모른다. 외국인이 묵을 수 있는 호텔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접근성을 생각한다면 아마 비슷한 자연환경을 가진 다른 곳에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5박 6일 동안 공항에서 빼고 정말 한 번도 외국인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럼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단연 “사람”이다.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하고 왔으며 왠지 갚아도 갚아도 갚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을 받고 왔다. 이런 충만한 경험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때때로 드는 회의감 따위를 분명하게 떨쳐낼 수가 있다. 친구는 베이징 기차역에서의 마지막 점심까지 사주고, 공항 수속을 밟는 곳까지 배웅해 주었다. 작별 인사를 하는데 비로소 그간 며칠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확 다가오며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어 눈물이 나려 했다.


그렇다고 여전히 여행의 이유가 확실하게 무엇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최근 예수도, 칸트도 자신의 고향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고도 인류에 보편타당한 진리를 펼치지 않았느냐는 교수님의 말씀은 나에게 강력했다. 흔한 말로 시야를 넓히고 관점을 다양화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고, 여러 나라를 경험한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넓고 다양한 관점으로 무얼 할 것인가? 보다 합리적인 선택?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진짜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결국에는 비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맥락’에 맞는 걸 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아는 것은 오히려 그런 맥락에 대한 분노만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은 실제로 나의 이십 대 초중반에 지배적이었던 사고이기도 했고…


친구네 부모님께서는 첫날에는 세계 여기저기를 활보하고 다니며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는 우리가 부럽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넷째 날 저녁인가에는 한편으로는 그러다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지는 않느냐고도 하셨다. 그러나 친구와 내가 거의 서른 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그동안 많은 경험을 통해 오히려 점차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 각자가 한국인임을, 또 중국인임을 인지하는 것, 자신의 문화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친척 어르신 중에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시는 분이 계신데 매번 어딜 다녀오실 때마다 “대한민국이 최고더라” 하는 말씀을 입에 다셨다. 한창 이 나라에서 자리 잡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는 그 말이 싫었으며 그분이 뭘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도 루이제 린저가 말한 ‘발굽으로 마구간 문을 걷어차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하는 망아지와 같은’ 젊은이의 시절을 지나 기성세대적 사고를 하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권과 휴대폰을 언제라도 꺼내기 쉽게 가방 앞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되는 나라, 화장실을 갈 때마다 비누와 휴지를 따로 챙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슝 타고 집에 도착해 좋은 기억만을 남겨 두고 그 사이사이 끼인 먼지들을 다 씻어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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