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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Jan 31. 2024

20대 후반의 한국여자

(8)


7월 20일. 벌써 6일간의 여행 중 반이 지나갔다. 6일의 여행은 꽤 콤팩트하고 짧은 것이었구나. 가장 최근의 여행이었던 18일간의 유럽 여행 때의 감각을 예상하고 왔는데 그때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중국이 워낙 커서 다른 곳, 특히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지금 어떨지 모르겠지만 츠펑이라는 곳이 아직 꽤 열악해 보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다. 식당이든 병원이든 어디나 화장실에 휴지나 비누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호텔에는 청결은 고사하고 전구가 나가 있거나 수건이 없거나 콘센트가 작동하지 않거나 하여간 뭐 하나씩 빠져 있다. 그리고 거리에는 도로가 파여 있는 곳도 많고 가로등이 있어도 불이 안 들어와 있는 경우도 많았으며 주유소는 3개 중 2개 정도가 운영을 멈추고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낮기온에도 가게들은 에어컨도 선풍기도 안 틀고 있어 더위를 식히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외국인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을 보면 신기해한다. 식당 웨이터는 내가 중국어로 한 마디 해주기를 바라고, 우리 테이블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발견한 옆 테이블에서는 ‘외국인이다, 외국인이다’ 하며 수군댄다. 첫날 친구네 동네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를 구경하러 들렀었는데, 드라마에서만 보던 “한국인”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너무도 “한국인처럼" 생긴 탓에 다행히 그들의 기대를 충족해주고 있는 듯했다. ”오, 너 정말 한국인 같다!”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 가족사진도 보여주었었는데 우리 엄마가 정장을 입고 있는 사진이었어서인지 우리 엄마는 박근혜 대통령을 닮은 사람이 되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 우리는 외국에 가면 표상화된다고 했다. 우리는 외국에 가면 인종이나 국적에 따라 ‘특별하게’ 분류되지만, 일단 분류된 후에는 기호화되어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별하게 대우받은 나는 20대 후반의 한국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어쩌면 그들의 스테레오타입을 더욱 고착화시켰는지 모른다.


오늘은 ”여행 안의 여행“의 마지막 날로 오전에 순천만 습지를 연상케 한 호숫가를 구경한 뒤 다시 친구네 동네로 돌아가고 있다. 츠펑 시 안에서 이동하는 것이지만 거리로 따지면 거의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거리이다. 오늘은 확실히 나도 그렇고 모두가 한층 더 피곤해져 있다. 나도 모르게 하품을 연발하여 친구는 내가 어젯밤 잘 잔 것이 맞는지 재차 확인했고, 나는 정말로 잘 잔 것이 맞는데도 하품이 나왔다. 대접만 받은 내가 이 정도인데 다른 식구들은 훨씬 더 피곤할 것이다. 이 장거리를 운전하신 아버님이나, 중국어로 영어로 계속해서 통역하고 이것저것 설명해 주는 친구는 몇 배나 더 피곤할 것이다. 아버님께서는 점점 더 말씀이 없어지셨고 식사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나 쉬러 가시곤 했지만 그래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계속해서 내가 편안한지, 배가 부른 지, 행복한지 계속해서 물어보셨다.


츠펑시와 한국 크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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