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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ie Jan 31. 2024

고향에만 오면 덜렁대는 친구

(9)

벌써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니. 내일이면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거리의 풍경이 다르게 보이고 무엇 하나도 놓치기가 싫어졌다. 첫날에도 안 찍은 거리 풍경을 마구 찍었다.


츠펑 시의 거리 풍경. 애플 옆에 삼성이 없고 스타벅스는 있지만 알파벳은 없다. 노란 수박이 있다.


친구가 나를 위해 또 특별한 경험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스냅사진을 한 번씩 찍는다. 에어비앤비 체험 섹션에 가면 각 도시마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스냅사진을 찍어주는 호스트들이 꽤 있다. 사진에 집착하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그래도 어디 가면 나는 내가 잘 나온 사진 하나씩은 가지고 싶은데 누군가에게 부탁했을 때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하고 신경 쓰일 것을 대비해 그냥 몇 만 원과 한 시간 정도를 투자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그 세션이 있으니 여행 중 딱 한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사진에 집착하지 않고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가 있다. 이런 나의 여행 방식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해서인지, 친구의 친구가 그 일을 해서인지 스냅사진까지 예약해 둔 것이다. 친구의 친구 중에 사진 일을 취미이자 부업으로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것은 내가 그동안 한 것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것이었다. 사진뿐 아니라 메이크업부터 의상까지도 다 마련된다는 것이다.


오전 7시 반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친구 집으로 왔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분은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아이도 데리고 오셨다. 곧이어 사진사 친구도 집으로 왔다. 내가 먼저 메이크업을 받았고 남이 해주는 메이크업이 혹시라도 내 마음에 안 들까 봐,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안 어울리게 될까 봐 약간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꽤 마음에 들었다. 먼저 메이크업을 마치고, 사진사가 준비한 의상도 입은 뒤 친구가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아이를 내가 놀아주었다. 그 아이와 나는 서로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꽤 잘 놀았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지만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냥 한국말로 “아~ 그랬구나~!” 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니 계속해서 말을 잇고 내 앞에서 잘 놀았다. 사진사 친구는 아이와 나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아이와 나는 서로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꽤 잘 놀았다

친구도 메이크업을 마치고, 아이는 이모들과 더 놀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엄마 손을 잡고 돌아가고, 본격적인 우정 촬영이 시작되었다. 먼저 집에서부터 소파에 엎드려 노는 모습부터, 공원에 나가 뛰어노는 모습 등. 우리는 기억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진이 기억이 되기도 한다. 많은 어릴 적의 기억이 실제로 그걸 기억하는 것인지, 좀 더 컸을 때 부모님이 남긴 사진과 비디오를 보고 그것을 기억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한국의 어떤 가장 친한 친구와도 그런 우정 사진을 남긴 적이 없는데 이렇게 친구와 엄청난 우정 사진을 남기고 나니 왠지 친구와의 우정에 더 큰 책임감이 느껴졌다.


사진사 친구는 '일본 스타일‘의 느낌을 지향했다. 최근 중국에서도 '한국 스타일‘의 촬영이 유행이긴 하지만 그 사진사 친구는 '한국 스타일‘은 너무 인위적이라며 더 자연스럽고 실제적인 느낌의 '일본 스타일‘을 지향한다고 했다. 중국에서 중국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메이크업을 받고, 일본 스타일의 촬영이라니. 왠지 찍고 보니 다소 대만의 느낌이 났다. 대만이 딱 중국에 뿌리를 두며 일본 친화적이니. 이 또한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일본감성의 한-중 우정사진


촬영을 마치고 친구와, 사진사 친구와, 사진사 친구의 남자친구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마라탕과 마라샹궈의 중간 격인 '마라반‘을 먹었다. 우리의 공식적인 일정은 정말 끝이었다. 친구는 이제 집에 돌아가 쉴까 했지만 나는 이 거리를 좀 더 즐기고 싶었고 가게들도 들어가 보고 싶었다. 나는 기념품을 사고 싶다고 했고 나의 요청 하에 기념품숍에도 들르고 슈퍼마켓에도 들렀다. 돈이 거의 그대로 남은 덕에 나는 마음에 드는 기념품과 신기한 모양과 맛의 캔디 등을 마음껏 구입했다. 확실히 거리를 직접 걸어 보니 또 느낌이 달랐다. 거리의 노점상들, 길가에서 장기를 두거나 포커를 치고 있는 아저씨들, 뛰노는 아이들이 자아내는 거리의 분위기를 나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즐겼다.


현지의 마라반/음식 남기지 말자는 캠페인 포스터


집에 돌아와 짐정리를 하며 좀 쉬다가 부모님께서 지내시는 곳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집에서 직접 만드는 훠궈가 마지막 식사였다. 훠궈에 넣을 채소들은 그곳의 옥상 정원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었고, 나와 친구는 발코니에 쭈그려 앉아 함께 채소의 흙을 씻었다. 채소를 씻으며 우리는 부모님 이야기를 했다. 친구의 부모님께서 사업을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어릴 적 친구는 부모님께서 너무 바빠 자신을 할머니에게 맡기거나 기숙학교에 보내는 등 하여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열심히 사신 부모님을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마지막 만찬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집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이런, 친구가 집 열쇠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30분을 가 키를 가지고 다시 30분을 돌아와 집에 들어갔다. 받기만 하고 있는 나는 누굴 탓할 수 있으리.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탓하는 친구의 기분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사실 친구가 덜렁대는 모습은 여행 동안 몇 번 보긴 했다.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는 대학 이래로 계속 집을 떠나 혼자 생활해 왔으며 그동안 어디서든 잘 헤쳐 나가 왔다. 그런데 츠펑에만 돌아오면 유독 덜렁댄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자신의 보호막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 편하게 있는 것이리라. 마치 나는 엄마가 없으면 아침 알람을 정말 잘 듣고 일어날 수 있는데 엄마가 함께 있으면 너무 신기하게도 아침 알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타지에 가서 잘 적응하고 편하게 생활하는 것 같아도 알게 모르게 훨씬 긴장감을 갖고 살았을 것이다. 한껏 덜렁대는 친구 모습에 오히려 한편으로는 친구가 고향에서 잘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신줄을 한국에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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