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nie Oct 02. 2024

결혼식 후의 소회

결혼을 했다, 어제.


결혼식 날이 어떠했느냐 하면, 나는 왜인지 결혼식 전날 도무지 잠에 들기가 어려웠고, 일찍 자야 한다고 눕기는 10시에 누웠으나 새벽 3시 30분에 시간을 확인했으니 잠든 시간은 그 이후였다. 겨우겨우 잠에 들어 서너 시간을 잔 뒤 몹시 피곤한 상태로 결혼식날 오전을 보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해 주신 분들이 신부님은 왜 졸려하냐며 그건 아니지 않으냐 했다. 


결혼식을 겪어보니 현실은 이러했다. 신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헬퍼 이모님과 스태프분들이 하라는 대로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나 있는 것이다. 특히나 신부대기실에 낮아 있을 때는 무슨 전시장에 갇힌 원숭이나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하나 둘 얼굴을 내미는 관람객들을 맞이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웃음을 지었다. 대기실 밖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나의 혼인 날이었지만 나만 알 수 없는 그런 날이었다. 그러다 보니 금방 "입장하셔야 합니다." 했다. 


그렇게 이미 나만 빼고 시작된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식장 안에서는 주변이 다 깜깜하여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꿈속에서 간혹 그러한 것처럼 서로 관련 없는 나의 지인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이 신기하고 또 반갑고 그랬다. 


며칠 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떨리지 않느냐고들 묻곤 했는데, 워낙에 긴장을 안 하는 성격이어서인지, 혹은 그저 실감이 안 나서인지 떨리기보다는 덤덤했고, 덤덤하기보단 '몽롱했다'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한 시간 후면 신혼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할 텐데, 그토록 바라온 이 시간이 실제로 도래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렇다. 기쁘기도 하고... 아니, 이제 남편이 된 구 남자친구의 컨디션이 좋아서, 내가 알던, 사랑하던 바로 그 사람과 함께라서 무척이나 기쁘다.


결혼식이 끝난 소감은 (몇몇 친구들이 물어봐서 굳이 생각해 낸 답변은...) 그야말로 '홀가분하다'이다. 시험이 끝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시험 끝, 이제 놀자!" 이런 기분이다. 


신혼여행 중에 글을 쓸 노트를 따로 가져왔다. 평소에 쓰던 노트는 고이 두고 왔다. 현실적인 생각들은 좀 뒤로 하고 싶어서... 신혼여행 기간에는 신혼여행에만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젯밤, 식이 끝나고 시댁에서 저녁밥을 얻어먹고 남편 여행 짐도 싸고, 집에 와 신부화장을 지우고 씻은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귀하신 분이 전화를 다 했다"라고 했다. 나는 그동안 모처럼 부모님께 전화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꽤 시크하기로 유명한 K-장녀가 바로 나였다. 


엄마는 의외로 결혼식 내내 싱글벙글했다. 사진으로 본 새색시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서는. 내 눈엔 정말 가장 예뻤다. 신부인 나보다도 더. 평소에 꾸미지 않아도 예쁜 사람이 꽃단장을 하니 그렇게나 예뻤다. 엄마의 혼주 한복이 나와서 찾으러 갔을 때 한복을 입어본 엄마의 모습을 보고 너무 귀여워서 흐뭇한 웃음이 절로 나왔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귀여운 막내딸의 모습은 사리지지를 않는다. 우리 엄마는 여왕도, 공주도 아니고 그야말로 요정 같다. 만약 공주로 친다면 엄지공주.


엄마랑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아빠를 바꾸어주었다. 엄마가 말하길, "셋째 이모부가 그러는데 아빠들은 "아빠" 하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그리 기쁘시단다." 했다. 그 말을 듣고 아빠가 받자마자 "아빠, 아빠, 아빠, 아빠, 아빠~!!" 하니 정말로 "껄껄껄" 웃으신다. 고맙다고 하시며... 뭐가 고맙냐고 하니 아빠라고 불러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그것이 어떻게 고마운 일이 될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것이 꽤 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은 나를 둘러싼 분들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체감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님의 사랑은 표현할 수가 없다. 정말이지 갚을 수 없을 것이다. 


결혼식 당일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딱 2번, 눈물을 그만 참지 못하고 말았는데, 첫 번째는 영상 찍으시는 분이 인터뷰를 하시는데 신랑한테 영상편지를 쓰라고 해서 "그동안 잘 해준만큼..."이라고 말하는 순간이었고 (남편이 그간 보여준 사랑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니... 그동안 그가 보여준 마음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며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내가 그만큼 잘해주겠다고 했다.) 두 번째는 식중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전, 목사님께서 "부모님께선 지금 이러이러한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마음이실 거다"라고 말씀하실 때였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울려고 할 때 내 친구들과 친한 언니들이 키득키득거리는 게 다 느껴졌다. 놀릴 거리 준 것도 추억이니...ㅎㅎ J언니가 동생 놀리고 싶은 마음에 '뿌엥' 사진만 찍었다며 내가 우는 장면을 보내줬는데 결정적인 표정을 정말 잘 찍어서이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우는 그런 대참사는 없었기에 선방했다고 생각했는데, 짓궂은 친구들과 언니들은 고 순간 잠깐 운 걸 가지고 내가 결혼식날 '울었다'라고 그저 기억을 박아두는 것이었다. 




공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근처 카페에서 마지막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축의금 정리한 것을 보내왔다. 고마운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물질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돈에 대한 가치는 다르게 느끼긴 하겠다만... 


결혼하면서 다시 보게 된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자신은 비혼이니 축의금 돌려받을 일은 없고, 대신 노후에 외로울 것이니 내게 "친구비"라며 따로 챙겨주었는데, 친구들 중에 1등으로 가장 많은 금액을 주었다. 가장 크게 마음을 표현할 친구가 그 친구일 줄은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많이 고맙고, 그동안 미안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신혼여행지에서도 만나게 되는 우연이라니. 그리고 또 재미있던 일은 글쎄 나의 남편의 중학교 친구의 남편과 그 친구의 남자친구가 친구였던 것이다. 하여간 이번 일로 여러모로 새롭게 생각되는 인연이었다.


이외에도 정말 앞으로 은혜를 갚아야 할 수많은 인연들이 생각이 난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발리에 도착하려면 세 시간 정도가 남았다.


하여간 결혼을 하여 기쁘다. 나의 가족도, 친구들도, 친척들과 교회 어른분들까지 어찌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 몸소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세상은 아름답고 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다시금 크게 드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