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져버릴 생각은 없었다. 2월 마지막 주 토요일, 우리는 결혼을 했고, 3월 초와 4월 초, 총 2번의 생리를 했고, 세 번째 생리가 있어야 하는데 좀처럼 생리 예정일이 되어도 생리가 시작되지 않았다. 예정일로부터 8일, 9일쯤 지났을 때 비로소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생애 처음으로 약국에서 생리테스트기라는 걸 사봤다. 사실 별 것도 아닌데, 약국에 들어가기 전에 괜히 긴장을 했다. 혼자서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약사님께 임신테스트기를 달라고 했다. 집에 와 테스트를 했다. 너무나도 선명한 두 줄이 보였다. 임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흐리게 두 줄일 때부터 확실한 두 줄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확인을 하던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선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는 혼자서 너털웃음이 났다. 스스로 어이가 없어서. 무계획 임신이란 이런 것이다. 어쨌든 이를 확인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부인과에 함께 가고 싶으니 일찍 퇴근을 할 수 없느냐고 했다. 남편은 기뻐하며 바로 퇴근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산부인과라는 곳도 처음이었다. 그냥 집 가까운 곳을 갔다. 질초음파를 했고, 임신낭(태아주머니)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임신 5주라고 했다.
우리는 임신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확실한 피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계획하기보다는 자연에 맡기자고 했지만 그래도 두렵지 않은 건 아니어서 가임기에는 질내사정을 피했다. 자연피임은 피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언제든 아기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요즘 주변에 그렇게 무계획으로 임신했다는 부부를 본 일도 없었다. 대부분 임신을 해야겠다고 생각되면 병원에 먼저 가서 산전검사를 받고 숙제처럼 받은 날짜에 관계를 갖는 듯했고 그렇게 계획 임신을 하거나 아니면 그렇게 해도 잘 안 생긴다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아기가 이렇게 쉽게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에 맡긴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처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결혼 전에 인사를 다니다가 뵀던, 우리 결혼식의 대표기도를 맡아주신 교수님의 말씀의 영향이 컸다.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신다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조절"하지 말라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괜히 "피임"하지 말라며 대놓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유들이 우리가 듣기에 꽤 합리적이었던 것이다
첫째는 우리의 나이와 건강이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 같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스물아홉, 남편은 서른둘이다. 요즘엔 스물아홉에 결혼해도 일찍 결혼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사실이고, 결혼한 친구보다 미혼인 친구나 언니들이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적으로 그런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결코 일찍 결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도 신혼 즐긴다, 커리어 쌓는다고 몇 년 보내다 보면 훌쩍 노산의 나이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바였다.
둘째는 부모님의 연세와 건강이었다. 지금이야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건강하시니 언제고 그럴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 5년 후, 10년 후에도 지금과 같으실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아이를 가지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맞는 말이었다.
셋째는 우리가 계획한다고 해서 우리가 딱 계획한 그때에 아기가 생길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신의 자녀들의 사례를 들어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 생각으로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 아이가 딱 찾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축복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뉴스에 난임 부부들에 대한 기사가 종종 나온다.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라면 아이를 갖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곤 하기도 했다. 시험관 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아 보였다.
넷째는 우리의 커리어와 성취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아이가 생기면 우리의 커리어와 사회적 성취에 방해를 받을 것 같지만, 당신께서 인생을 살아오며 봐온 바로는 오히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부모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더욱 성취하게끔 만든다는 것이었다. 팀 켈러의 <결혼을 말하다>에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도 지속적으로 결혼 생활을 해온 이들이 현직에서 물러나는 시점으로 기준으로 평생 결혼한 적이 없거나 이혼한 뒤 재혼하지 않은 이들보다 재정 상태가 평균 75% 정도 더 양호하고, 특히 결혼한 남성의 경우 비슷한 교육 수준과 경력을 가진 다른 이들보다 10~40% 정도 더 많은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는 워낙에 저출산이다 보니 관련 정책이 날로 갈수록 좋아져 아기 덕분에 오히려 우리가 더욱 도움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임신을 하니 병원 진료비나 각종 검사비는 나라에서 100만 원을 주고, 임산부 교통비 쓰라고 서울시에서 70만 원을 줘서 그걸로 차 기름값을 쓰고 있고, 첫 만남 이용권 200만 원에 부모급여도 준다고 하니 실제로 그렇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신생아특례대출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아기 키울 만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우리 호강하라고 주는 게 아니라 아이 키우라고 지원해 주는 것이고, 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그걸로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경제적으로 걱정할 부분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아는 분 중에 프랑스에서 7~8년 유학을 하고 오셨는데, 오랫동안 수입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있어 육아 수당으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셔서 지금은 아이 셋 아빠이자 교수로 활동하고 계신 분도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우리는 결혼을 하고 그렇게 철저한 피임을 하지 않았고, 딱 두어 달 만에 우리에게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사실 무계획 임신을 주변에서 그렇게 좋게 보는 것만은 아니다. 처음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우리 엄마는 "이제 계획 없이 살기로 했느냐"라는 말을 했고, 나보다 두어 달 먼저 임신한 친구는 자기네들은 "계획 임신"이라 참 안정되고 좋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우리의 "무계획" 임신과 대비해서 말하는 것 같아 괜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들이 있었고, 언제든 우리의 아기천사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무계획을 계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