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나의 박사논문 프로포절이 있었다. 원래는 다음 학기에 하려고 했다가, 6월 말에 갑작스럽게 이번 방학에 하기로 정해진 탓에 한 달가량 다소 벼락치기로 논문 원고와 발표 준비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화, 목마다 도서관에 갔지만 D-day가 정해지고는 한 달 동안은 매일 도서관에 갈 수 있도록 온 가족의 육아 지원을 총동원했다. 첫 2주는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격일로 와주셨고 그 후 2주는 친정엄마가 매일 와주었다. 아직 일 하는 친정엄마는 일이 끝나고 오후에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급할 때는 남편에게 오전에 집에 있어달라고 하고 오전반 남편, 오후반 친정엄마에게 아기를 부탁하고 작업을 하기도 했다. 대체인력을 구하지 않고는 결코 비울 수 없는 자리... 이번 여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프로포절 당일이 되었다. 나에게는 꽤 중요한 날이었는데, 엄마라는 위치에 자리한 이상 아무리 중요한 날이라고 할지라도 나만 신경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을 아기와, 엄마의 빈자리를 열심히 메꿔주느라 함께 소진된 남편은 둘 다 시름시름했다. 프로포절 날 아침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소아과였다. 코를 훌쩍이고 밤새 기침을 하던 아기의 진료를 보고 병원에서 시아버지와 바통 터치를 하여 아기와 남편은 시댁으로 보내고 나는 그제야 학교로 향했다.
내가 이제 학교로 가겠다고 할 때, 시아버님께서는 몇 번이고 나를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지만, 나는 몇 번의 만류 끝에 비로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물론 버스가 아니라 차를 얻어 탔다면 좀 더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었겠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버스를 타고 싶었다. 시간상으로는 분명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핸드백에 노트북까지 따로 들어 어깨가 무거울 법도 그럼에도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는 데에서 그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었는데, 나는 1초라도 빨리 그저 혼자 있고 싶었던 것이다. 차를 얻어 탄다고 해서 몸이 좀 더 편하고 좀 더 빨리 학교에 도착할지언정, 차 안에서도 나는 그날의 발표자가 아닌 아내이자, 엄마이자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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