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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혜윰 Apr 28. 2024

미련

내가 잃어버린 건 물건이 아니었다

최근 당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것 중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면 그 물건도, 그 관계도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금방 미련을 털어버리는 편이에요. 없어진 것에 하나하나 신경 쓰고 미련을 가지다 보면 결국 제가 힘들고 더 상처가 깊어진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성향이 바뀐 것 같아요. 내면이 단단하고 의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제가 얼마 전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지금까지도 미련이 남는 것이 하나 있어요.


작년 10월, 신혼여행을 준비하면서 남미 여행에는 트레킹화가 꼭 필수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등산을 즐겨 하지도 않고, 트레킹은 가본 적이 없어서 트레킹화가 없었던 저는 이참에 좋은 신발을 하나 장만하기로 결심했어요. 예산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제 발에 꼭 맞는 예쁜 신발을 찾아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여러 브랜드를 비교한 끝에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았어요. 제 신발 중에 가장 비싼 것이었지만,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돈을 쓸 곳이 많아 제 스스로에게는 소비를 아꼈기 때문에 건강한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는 마음을 담아 스스로에게 셀프 선물을 했습니다.


트레킹화를 신고 여행을 시작했어요. 편하고 예쁜 신발 덕분에 가파른 화산도 거뜬히 올라가고, 빙하도 안전하게 올라탔어요. 그렇게 8개국을 다니고 마지막 여행지였던 페루로 가기 위해 칠레에서 버스를 탔어요. 저의 배낭에는 저와 늘 함께하던 트레킹화가 걸려있었죠. 그리고 고대하던 마추픽추 등반을 남겨놓고 트레킹화가 사라진 걸 깨달았어요. 온 가방을 다 헤집고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고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어요. 그 트레킹화는 단순히 신발이 아니라 저의 첫 배낭여행이자 남미 여행을 함께한 추억이 담긴, 제 스스로에게 준 결혼 기념 선물이었거든요. 무려 90여간 함께한 제 발의 옷이라고 생각하니 더 속상했어요. 곧 다가올 마추픽추 등반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고요. 결국 찾지 못했고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이 먹먹해져요. 저의 첫 트레킹화라 더 애정이 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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