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Erlkönig (the devil)
오늘은 드디어 (그냥)피아노곡이 아닌 '가곡'을 다뤄보려합니다. 가곡은 가사가 있기 때문에 곡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악보를 보면 음악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마왕은 음악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곡이죠. 문제는 가사가 독일어이기 때문에 음악을 들어도 설명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저도 가사를 모르고 들었을 때와 가사를 알고 들었을 때 느껴지는 감동(충격?)이 확실히 달랐던 기억이 있네요.
요즘에는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것들도 많아서 확실히 더 접근이 쉬워진 것 같아요. 영상이 조금 무섭지만 표현이 잘 된 것 같아서 첨부합니다.
음악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뭔가 빽뺵하죠? 빠른 템포로 (3)이라 써있는 셋잇단 행렬이 이어지고있습니다. 첫 부분만 그런게 아니고 끝까지 셋잇단음표 느낌이 유지가 되는데, 이는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옥타브 연타가 이어지는 것이 강하고 빠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에요.
이 곡은 괴테의 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첫 나레이션에서 reiten이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reiten은 말을타다, 몰다, 승마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곡을 들어보면 꼭 말이 다다다다 달리는 느낌이랍니다.
파란색 박스 부분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저는 솔라시 - 도레미로 상승하는 셋잇단이 꼭 말을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 채찍질을 하는 것 같은 상상이 드네요.
첫 부분의 피아노 반주가 곡의 분위기와 배경을 알려주고 난 후 이제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피아노 반주 부분 음표에 있는 빗금 작대기 표시는 트레몰로라는 기법인데 결국 [그림1]과 똑같이 셋잇단 연타를 하라는 뜻입니다. 피아노 연주자로서 덧붙이자면, 옥타브+셋잇단+연타는 상당히 손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데 얼마나 손목 힘을 잘 푸는 기술(?)을 가졌냐에 따라 잘 치고 못치고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전공자라도 마왕 반주는 아무나에게 맡길 수 없고, 솔직히 저는 맡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반주로서 맡기엔 좀 부담스럽달까요.
잡소리가 길었습니다. 아무튼 나레이션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이리 늦은 밤 바람 가르며 달리는가?
아버지가 아이를 품에 안고 가는구나
그는 소년을 단단히 팔에 안고
꼭 붙잡아 따듯하게 지키네
아들아, 왜 그리 두려워하며 얼굴을 숨기느냐?
아버지의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pp(피아니시모:매우여리게)가 등장하며 약간의 분위기 반전을 주고 있습니다. 비슷한 음량을 가진 소리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작아지면 그 다음소리에 더 집중이 되기 때문이겠죠? 또한 아버지의 불안한 음성이 cresc.(크레셴도:점점세게)로 인해 점점 커지는데 그 효과를 극적으로 주기 위해서 pp를 사용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1분 00초부터 들어보세요)
아버지, 저기에 마왕이 보이지 않으세요?
금관을 쓰고, 망토를 두른 마왕이?
[그림3]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들의 노래가 시작되는데 그 전에도 (pp)가 있는 거 보이시나요? 그러나 이번엔 [그림4]에 이르러서도 음량이 커지거나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의 말이 끝날때는 점점 작아지죠. 아픈 아이의 힘없는 작은 목소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 같네요. (*1분 15초부터 들어보세요)
내 아들아, 그건 안개 줄기일 뿐이란다.
[그림3]에서 처음에 아버지가 말하는 톤보다 지금 훨씬 내려가 있고 변화가 적죠. 아버지는 아들이 갑자기 마왕 이야기를 하니까 오히려 조금 침착해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애써 침착해지려 노력하면서 목소리를 깔고 낮게 말하는 것일까요? (*1분 30초부터 들어보세요)
사랑스런 아이야, 나와 함께 가자!
너와 정말 재밌는 놀이를 할 거란다.
해변에는 예쁜 꽃들이 많단다.
우리 어머니께선 금빛 옷도 많으시지.
이제 마왕이 등장했습니다. 마왕이 등장하자 피아노 반주도 약간의 변화가 보이는데요, 오른손 트레몰로 대신 쿵짝짝 쿵짝짝 하는 리듬으로 변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전 셋잇단과 비슷하게 보이기는 하는데, 들어보면 이전보다 훨씬 신나는 리듬입니다. 왼손 오른손 다 규칙적으로 나오면서 장조로 변화되어 편안하고 즐거운 반주를 타고 노래하는 마왕입니다. 정말 무섭네요... (*1분 40초부터 들어보세요)
마왕의 노래가 끝나면 다시 오른손 셋잇단 연타로 돌아갑니다.
아버지, 아버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내게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마왕이 옆에서 같이 가자고 웃으면서 속삭이는데 당연히 아이는 난리가 났습니다. 말할 힘도 없던 아이가 공포에 질려 아버지를 붙들고 묻습니다. (*2분 05초부터 들어보세요)
진정해라, 아들아. 걱정 말거라,
마른 잎새 사이로 바람이 속삭일 뿐이란다.
아버지는 진정하라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안심시키고, 빨리 어딘가에 도착하는 수밖에는요. 이부분에서 장조로 변화한 것이 오히려 더 슬프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2분 18초부터 들어보세요)
그리고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마왕이 등장하는데요. 아까 처음 마왕이 등장했을때 나온 왼손 부분과 똑같습니다. ppp(피아니시시모:매우매우여리게)로 등장한 마왕은 아주 작은 소리로 (신나게)속삭입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가야, 나랑 같이 가지 않으련?
내 딸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내 딸들이 밤마다 축제를 열자고 하는구나.
너를 위해서 밤마다 춤추고 노래를 부를 거란다.
아버지, 아버지, 보이지 않으세요?
저 음침한 곳에 서 있는 마왕의 딸들이?
아이의 음성은 [그림7]에 나온 부분보다 더 올라간 높은 음으로 표현됩니다. 또 [그림7]에는 나오지 않은 악센트(그 음을 특히 세게) 표시도 한층 고조된 음색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2분 45초부터 들어보세요)
아들아, 아들아, 내가 확실히 보고 있단다.
저건 단지 잿빛 바랜 버드나무 가지일 뿐이란다.
너무 사랑스럽구나, 너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단다.
네가 나한테 오기 싫다면, 억지로라도 데려가겠다!
다시 마왕이 등장하는데 아까와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아까 마왕의 패턴(쿵짝짝)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고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듯 합니다. (*3분 16초부터 들어보세요)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저를 붙잡아요!
마왕이 저를 아프게 해요!
마왕이 데려가겠다고 하면서 fff(포르티시시모:매우매우세게)가 등장합니다. 곡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른 것이죠. 아까 ppp가 등장한것도 마왕 파트였는데, fff도 마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왔습니다. 이 강한 대비를 통해 마왕의 무서운 면모를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네요. 그 이후에 나온 아이의 대사로 짐작컨데, 마왕이 말을 마치면서 아이의 팔을 잡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이의 음도 하나 더 올라가서 [그림7] - [그림9] - [그림11]로 이어지는, 점점 더 커지는 두려운 감정 표현을 이뤄낸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는 공포에 질려 급하게 말을 달렸네,
신음하는 아이를 팔에 안고서
고생 끝에 집에 도착했더니,
아들은 품 속에서 죽어있었다네.
이렇게 곡이 끝났습니다. 마왕이라는 게 와닿지 않으신다면 '사신'또는 '저승사자'로 대체하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이 비극적이라 인상깊기도 하고, 또 나레이션 / 아버지 / 아들 / 마왕으로 구분되는 대사가 신기하기도 한 곡이었습니다.
확실히 가사가 있는 곡은 직관적이라 더 이해가 쉬운 것 같아요. 더 재밌기도 하고요. 이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는 '협주곡도 가곡도 오케스트라도 다 다뤄봐야지!'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제일 익숙한 걸 찾게 된다고, 지금까지 피아노곡에만 손대고 있었네요~ 이 곡도 피아노 반주가 있는 거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로 다음 곡은 피아노 협주곡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협주곡으로 들어가면 사이즈가 어마어마해지기 때문에.. 사실 저도 다음 주에 어떤 글을 올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사 출처: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