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szt <Apre une lecture du Dante>
저번주에 이어 단테의 신곡 천국편입니다.
지옥 - 연옥 편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03화를 먼저 참고해 주세요!
저번편의 마지막에서 연옥의 가장 꼭대기층인 지상낙원(에덴동산)에 오른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었죠.
이곳에서는 두 줄기의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죄의 기억을 모두 지우게 해주는 레테 강이고, 다른 강물은 자신의 선행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는 에우노에 강이었습니다. 레테 강물을 마시기 전 단테는 베아트리체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단테는 자신이 지은 죄의 고통에 눌려 기절하고 말았는데요.
바로 여기서부터 그 광경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오른손이 연주하는 윗단은 불안하게 요동치는 트레몰로(한 음·두 음 또는 몇 개의 음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반복하는 연주법), 아랫단은 지옥편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형상의 그림들이 나오죠. 바로 빨간 박스, 파란 박스처럼요. (영상 재생 시간 9분 20초를 참조해 주세요)
agitato는 격하게, 급속히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마치 윗단과 아랫단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갈등하는 양상을 표현하는 것 같네요! 이와 동일한 패턴이 세 번이나 반복되는데 cresc.(점점 세게) 역시 계속해서 이어져 정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stringendo: 점점 서두르며 긴장감이 극에 달합니다. 그렇지만 지옥편과는 조금 다른 점이 보이네요.
파란색 박스에 있는 음들의 간격은 단 2도, 단 3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이란 것은 단조 음악처럼 어두운 색채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지옥편에서 나온 음형과 비슷한데, 갑자기 중간에 쉼표가 나오면서 브레이크를 겁니다. 그런 후 211마디까지 이어져 나오는 노란색 박스는 장조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조는 단조와 반대되는 말로, 단조가 어두움이라면 단조는 밝은 느낌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단테가 죄를 기억해 고백하고 뉘우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영상 재생 시간 9분 53초를 참조해 주세요)
빨간 박스의 음정도 원래는 증 4도 간격을 갖고 있었으나 지금부터는 완전 4도의 간격으로 변했습니다. 증 4도는 중세에 악마의 음이다 하여 금지하기도 했다고 저번 편에 설명드렸었는데요, 완전 4도는 말 그대로 '완전함'을 뜻합니다. 즉 증 4도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선 음정 간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세식으로 표현하자면 천사의 음이라고나 할까요.
기절에서 깨어난 단테가 레테 강으로 가자 성스러운 노랫소리가 들렸고, 단테는 레테 강을 건너 강물을 마십니다. 죄 많은 인간의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 같은 구간이었습니다. 이제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함께 (드디어) 천국으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들으면 레드카펫이 쫘악 깔리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빨간 박스 부분을 보시면, 2분 음표의 긴 음형이 연속해서 나오고 있죠? 지금까지 지옥-연옥을 거치면서 이렇게 긴 음형이 무려 세 마디나 나타난 적이 없었는데 fff(매우 매우 강하게)와 함께 천국에 온 큰 기쁨이 나타나는 듯합니다. 다 완전한 음이어서 듣기에도 무척 편하고요.
단테의 신곡에서 천국은 지구를 싸고도는 큰 둘레로 생각했는데, 겹겹이 9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밖이 신이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가, 이 부분은 마치 구름 위에 둥둥 떠있는 느낌도 들고, 우주에 나와있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을 주는 구간인 것 같아요. 물론 제 느낌일 뿐이지만요 :)
(이 부분은 영상 10분 56초 부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오른손은 계속해서 트레몰로 기법을 사용합니다. 아까도 2부 시작되자마자 오른손 트레몰로가 나왔었는데요. 거기서는 어두운 단조화음을 사용해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음악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굉장히 밝고 아름다운 화음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같은 기법도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많이 다르죠! 이 부분은 천국의 평온하고 환희가 넘치는 느낌을 보여주는 듯하네요. 특히 [그림 7]의 마지막 마디에 이르러서 고조되는 부분이 마음에 드네요. (이 부분은 13분 03초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천국의 아름다운 장면이 조금 진행되는가 싶더니 Piu mosso, stringendo가 계속해서 서두르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옥의 다급한 느낌과는 사뭇 다릅니다. 뭔가 더 활기찬 기운이 느껴지고, 밝고,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리스트는 천국을 표현하기 위해서 지옥과 대비되는 장조를 주로 사용하고, 트레몰로 효과도 주는 등 여러 변화를 주었는데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관현악적인 효과를 넣는 것이었습니다.
관현악이란 여러 가지의 관악기·현악기·타악기를 조화시킨 대규모의 합주라고 하는데, 흔히 오케스트라라고도 합니다. 이 부분을 들어보시면 뭔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현악기가 멜로디를 연주하고 타악기, 트럼펫, 트롬본이 빵빵 터지고 있는 느낌이 납니다. 외국에 천국 조각상을 보면 이런 관악기를 불고 있는 천사들이 꽤 자주 보이잖아요. 그들이 합주를 하고 있는 천국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이제 마지막입니다. [그림 9]을 보면 그래도 다른 그림들보다는 비교적 단순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중간에 갑자기 찬송가 같은 느낌도 들고, 정제된 화음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왼손은 저음역에서 트레몰로를 하며 음악의 분위기를 마치 관현악(오케스트라)처럼 이끌고 오른손은 온음표의 긴 음형을 노래합니다. 오케스트라 음악을 접해보신 분들은 음악이 끝날 때 이런 패턴으로 마무리되는 걸 느끼신 적 있으실 거예요~ 리스트 단테 소나타가 서사시를 표현하느라 처음부터 굉장히 복잡했던 것에 비해 끝에는 매우 고전스럽게 정형화되어 마무리되는 것 역시 지옥과 천국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대충 훑어봤습니다. 덕분에 저도 단테의 신곡 줄거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네요 ^^; 이미 존재하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라 연주할 때 더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더 아리송할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뭐든 연습량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 감히 함부로 도전하기 어려운 음악이죠. 저도 연주하고 싶었다면 할 수는 있었겠지만, 곡에 느껴지는 흥미와는 별개로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신곡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연주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마 너무 길어서 그런 것이겠죠.. 지금 이 시간에도 단테 소나타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네요.
다음으로 알아볼 곡은 리스트 단테 소나타보다는 훨씬 가벼운 곡이 될 예정입니다. 단테 소나타가 단지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로 덤볐다 두 편이나 고통받아야 했던 터라, 이번에는 재밌고 쉬운 곡을 선택하고 싶네요.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