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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비 Sep 19. 2024

엘리제를 위하여? 뭐 하는 곡일까

Beethoven "Für Elise"


엘리제를 위하여, 아주 유명한 작품이죠?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어른이 지금까지도 종종 귓가에 들리는 음악입니다. 예전부터 오랫동안 듣다 보니 너무 친숙하다 못해 이제 지긋지긋하신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유명한 멜로디 뒤에 악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떻게 끝나는지는 아마 피아노를 직접 쳐보지 않고서는 보고 들을 일이 없으셨을 같아서 오늘 알아볼 작품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곡인 엘리제를 위하여를 선택해 봤습니다.


사실 이 곡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너무 흔한 곡이기도 하고 저는 이 음악이 전해주는 어떤 느낌 같은 것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그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들, 흥미로운 소재-베토벤의 사랑-가 있어 가볍게 알아보려 합니다.


Für Elise
엘리제를 위하여

이 곡의 제목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하도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소리로만 인식하다 보니, 그 말 뜻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도 어른이 되어서였는데, 우연히 악보를 보고 몇 번 쳐보고 나서 '어? 이런 곡이었나?' 싶었어요.


베토벤은 평생을 혼자 독신으로 살았으나 의외로 주변에 여자가 많았어요. 나무위키에 나오는 <베토벤의 여인들>은 무려 9명입니다. 몇 명 있는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 많은 줄은 저도 몰랐네요 :)


그렇다면 '엘리제'는 과연 누구일까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베토벤 주변에 '엘리제'라는 여인은 없었는데요, 이 곡은 베토벤의 사후에 발견된 곡인 데, 필체도 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엘리제'가 아닌 '테레제'라는 여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어요. 테레제는 베토벤이 가르치던 20살쯤 어린 귀족아가씨였는데 둘은 몇 달간 사귀기도 했다고 해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4번은 '테레제'라는 명확한 부제를 갖고 테레제에게 헌정된 곡이기도 하죠.)






결국 엘리제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랑'에 관련된 음악이라는 전제하에 이 곡은 꽤나 비운의, 저물어가는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에게 바치는 곡 치고는 어두운 분위기에 씁쓸한 기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일단 기억 속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실제 연주자가 들려주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얼마나 다른지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Beethoven "Für Elise" Valentina Lisitsa Seoul Philharmonic





그림 1

음악의 첫 시작 부분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조표가 하나도 안 붙은 a단조곡이죠. pp(피아니시모:가장 여리게)로 음악은 조용하고 차분히 시작됩니다. 단순한 3박자 계열인데, 못갖춘마디로 시작해서 앞부분을 들으면 4박으로 들린다는 게 한 가지 포인트입니다. 


실제로 제가 어렸을 때 이렇게 박자가 3박자로 통일되지 않고, 자꾸 박자감을 잃게 되는 부분이 자꾸 등장해서 악보 볼 때 꽤 까다로웠던 기억이 있네요. 박자감이 지속된다는 것은 균형, 통일성이 있고 단순하며 듣기 편합니다. 반대로 박자감을 잃게 된다는 것은 균형, 통일성이 깨지고 엉클어지며 조금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집니다. 음악이 지루하지 않게 적절히 섞어 쓰기도 하는데, 어릴 때는 이 부분이 그렇게 짜증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냥 단순하게, 쉽게 치고 싶은데 자꾸 박자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 머리가 아팠던 거죠.




그림 2

이렇게 베토벤은 이 균형을 깨뜨리고 혼란을 주는 부분을 몇 번이나 써먹었어요. 여기서도 빨간 박스가 바로 그런 곳인데요. 여기서 항상 박자감을 잃으면서 '대체 '미'가 몇 번 나오는 거야'라고 괜히 투덜댄 적이 있었네요. 



그나저나 지금까지 오른손 - 왼손이 동시에 진행한 적이 거의 없다는 거 느끼셨나요? 대부분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냥 화음을 쌓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부분을 보통 '주고받는'다고 표현해요. 어렸을 때 많이 불렀던 그 노래처럼요..


?? : 니나니나 니 고릴라야 착한 놈~ 나쁜 놈~  


안 그래도 단조의 어둡고 슬픈 분위기인데 주고받는 음형까지 있으니,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같은 페이즈인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림 3

25마디쯤 돼서야 슬슬 다른 분위기로 바뀌어가는데요, 빨간 박스의 저 세 음형이 '빰-빰-빰'하고 나오면서 반전되는 분위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고받는 것 없이 오른손은 멜로디를 노래하고 왼손은 반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치 봄바람 같은 가볍고 기분 좋은 멜로디이네요. (영상 시간 1분 28초입니다.)




그림 4

그러다가 갑자기 32분 음표가 등장하면서 곡이 한 세배는 빨라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롤러코스터라도 타는 기분이네요.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간 박스에 이르러서 분위기는 다시 다운되기 시작합니다.




그림 5

[그림 5]의 첫 부분은 약간 저항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그쪽으로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예전에 좋았던 기억을 회상하다가 현실을 떠올리면서 체념하는 그런 그림이 떠오르네요.


베토벤이 1810년 4월경에 테레제에게 보낸 편지 말미에 '이제 안녕히 계시오 테레제, 항상 좋고 아름다운 일만 생기길 바라며 나를 기억해 주기 바라오. 나보다 더 당신이 밝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거요 - 비록 그대가 신경 쓰지 않을지라도.'라는 내용을 썼는데 마음이 떠 자연스럽게 이별한 것이 아닌, 사랑하고 있음에도 이별해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테레제는 20살 남짓한 어린 귀족 아가씨이고 베토벤은 그보다 20살은 많은, 귀족도 아닌 남자였으니까요.



그림 6

이 부분은 바리톤, 테너의 음색으로 어떤 가사를 노래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그 가사란 애절함과 이별의 고통이 느껴지는 어떤 내용이죠. 자세한 내용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림 7

그리고 다시 앞부분처럼 반복되면서 끝나는데 어쩐지 더 쓸쓸하게 들리네요. 


 





정말 짧은 곡이었죠. 낙엽이 다 떨어져 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곡인 것 같습니다. 제 마음대로 해석해 본 '엘리제를 위하여'인지라 그에 적합한 Valentina Lisitsa의 연주영상을 올려놨는데, 이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영상도 꽤 많았어요. 유튜브에 검색해서 몇 개 들어보시면 이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드실 거예요. 모든 해석과 상상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몇 개 더 들어보시고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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