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수업
12화와 이어지는 글입니다.
현존수업 1회 차, 가장 힘들었고 또 가장 열심히 하기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15분씩 호흡명상하는 것, 참 지키기 쉽지 않았다. 15분이나 눈 감고 호흡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나는 거의 5분에 한 번씩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정말 시간이 가지 않았고 15분을 채우는 게 곤욕이었다. 그리고 호흡하는 게 편한 느낌도 아니었다. 그냥 한시도 쉬지 않는 호흡을 의식하면서 할 뿐인데 왜 더 숨이 막히는 것 같을까.
잠깐씩 졸기도 하고 딴생각도 많이 들었다. 1회 차의 7주 차쯤 되자 내 밑에 가라앉아 있었던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것 같았고, 마치 끝도 없는 싸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 감정을 수용하고 수용해도 끝이 안보였다. 이렇게나 쌓여있는 기억과 감정이 많았구나. 10주 차 때는 여전한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다. 알 듯 모를 듯, 그렇게 다음을 기약하며 1회 차가 끝났다.
현존수업 2회 차, 2024년 1월 초에 다시 시작했다. 시작은 했는데 집중이 잘 안 됐지만 그냥 했다. 점점 시간이 빨리 흐르는 듯했다. 삶이 점차 단순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 단순해져서 어떤 상황에서도 평화를 누리고 싶었다. 4~5주 차가 되자 아주 예전의 기억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무척 오래된 가시를 발견했다. 너무 오래되어서 있는지도 몰랐던 감정들. <상처받지 않는 영혼>이라는 책에 나온 것처럼, 나는 내 마음속 가시를 빼버리는 게 아니라, 이 가시를 누가 건드리지 못하게 보호하기 위해 오랜 시간 애를 썼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그 감정을 인식했다고 해서 뭔가 큰 변화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자각했고, 또다시 이 감정이 올라올 때 이제 이 가시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더 내보이기를 선택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7주 차에서, 내가 항상 어딘가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이유를 알았다.
'몸 안에 현존하지 못할 때, 당신은 정신의 영역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영역에서 방황하고 있는 당신은 자기 삶의 경험이 의식 표면으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통합되지 못한 불편에 떠밀려 다니는 배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말이 정확히 내가 겪은 것과 일치했다. 내가 근 10~20년간 겪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8주 차가 되자 내가 그 전과 같은 극도의 혼란상태에서는 확실히 많이 빠져나왔다는 걸 알았다. 물론 급격히 올라오는 짜증과 저항감이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좀 더 평화로운 상태에 있을 수 있고, 현존수업을 하면 할수록 좋아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게도 이제 조금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곧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나도 알 수 없는 급격한 감정변화를 겪으며 힘들었다. 마치 내 오만한 생각에 겸손해지라고 교훈이라도 주는 것 같았다.
현존수업이 끝나도 명상은 유지를 해야 했는데, 그냥 '끝났다'는 생각에 다 내팽개쳐버리기 일쑤였다. 솔직히 15분씩 두 번 명상하는 걸 계속해야 되면 현존수업이 끝나는 게 아니지 않나? 다만 책을 안 읽을 뿐이잖은가.
그런 생각에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았고, 쉬고 싶을 만큼 쉬는 동안 다른 책을 집어 들고 읽었다.
그렇게 3회 차는 거의 두 달 간격을 두고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현존수업을 하되 추가적으로 명상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회 차에서 3회 차로 넘어가기 전, 그 두 달의 휴식기동안 명상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명상을 좀 더 습관화하면서 다른 명상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3회 차부터는 적어놓은 내용도 별로 없다. 여전히 잠깐씩 혼돈의 순간이 찾아왔고, 그걸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5주 차에 습관적으로 어깨나 눈에 힘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가 그동안 어깨가 자주 아프고 목이 뻐근하고 두통이 있고, 눈이 피곤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의식적으로 힘을 빼기 시작하자 놀랍게도 통증이 줄어들었다. 지금은 같은 일을 해도 덜 피곤하고 어깨나 머리가 아픈 일도 많이 줄었다. 내가 일상에서도 몸에 긴장을 많이 하고 살아서 그렇게 뭘 하지도 않았는데 자주 피곤하곤 했던 것이다. 어떻게 지금까지 의식도 못하고 있었는지 놀라웠다.
6주 차, '이 수업의 진척을 판단하는 것은 기분 좋음, 편안한 느낌이 아니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분명 이미 두 차례나 읽었던 말인데도 이때에는 좀 더 심오하게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불편했다. 그리고 여전히 습관적으로 감정을 차단하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특히 일적으로 막혀있는 느낌, 결핍의 상황, 답답함이 실제로 신체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10주 차를 진행하는 와중에 이사를 가게 됐다. 물론 내가 주도한 이사는 아니었지만, 정말 오랫동안 살던 곳을 떠나 더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내 삶에 큰 변화였다. 더 쾌적해지고, 넓어지고, 정돈된 곳에서 살 수 있음에 감사했다. 현존수업 3회 차가 끝나면서 내 마음도, 내 미래도 좀 더 나아졌으리라 생각했다. 앞으로 명상은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내 마음이 더 편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꽤 빠르게 현존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4회 차의 시작, 2024년 8월 1일. 여전히 사업과 성공에 대한 집착, 두려움을 느꼈다. 머리로는 이해하나 여전히 모르겠는 것들도 많았다. 그래도 예전에는 잠깐 스쳐 지나가고 말았을 생각과 감정들을 더 잘 캐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전혀 편안한 감정들이 아니었지만.
4주 차에 아직도 내 안에 비대한 뭔가를 느꼈다. 아직도 내 마음에 켜켜이 쌓여있는 묵은 것들. 나의 오래된 역사의 엄청난 부피에 한숨이 나오며 슬펐다. 그럼에도 명상은 계속됐고, 오히려 더 잘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성공의 울림/시각화/아웃풋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여전히 알 듯 말 듯했다. 그때 잠깐은 아는 것 같았는데, 돌아서면 내 '존재상태'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도저히 성공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현존'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나는 정신적 영역에서 방황 중이었다.
두려움, 저항, 혼란, 실망, 좌절, 집착, 수치심, 더 많은 통제를 하면서 성공의 마인드를 가질 수는 없었다. 당연히 나는 여전히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실패, 불만족, 더 많은 욕구, 결핍의 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분명 현존수업 1회 차 때보다는 뭔가 더 많이 알긴 아는데 항상 실천과 현실화가 어려웠다.
또 여전히 내 안에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사고가 견고함을 알았다. 판단, 그것이 문제 핵심이었다. ('문제'라는 말도 안 쓰기로 다짐했는데 습관이 무섭다) 좋다고 느끼는 것, 나쁘다고 느끼는 것, 그 어느 쪽이든 더 이상 힘을 실어주고 싶지 않았다.
곧 현존수업 시작한 지 일 년이 돼 가는 시기였다. 뭐가 좀 나아졌어야 할 텐데.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별로 변한 게 없어서 힘들었다. 여전한 혼란을 또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4회 차가 끝났다.
시간이 흘러 2025년을 맞이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특히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 하루하루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방법을 찾고 명상을 하면서 2024년의 4분기를 보냈다. 이때 본 책이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이다. 정말 지금의 나에게 걸맞은 제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으며 2024년이 지나갔다. 이때 사업적으로도 거의 끝나갔기 때문에 이제는 뭘 해야 하고, 특히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많이 생각했다. 사업은 다시 살아날 기미가 안보였으나 나는 아직도 성공하고 싶었다. 일단 내가 구한 답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4회 차에 썼듯이 부정적 원인과 부정적 결과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이 포인트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았다. 즉, '원인'을 바꾸는 것이다. 어떻게 하느냐가 원인을 바꾸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지속시키지 않으면 된다. 물론 이미 예전부터 알고는 있던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이해하지는 못해서 실천하지도 못했던 것뿐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나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느냐. 그걸 못해서 2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아니, 2년에 걸쳐 알게 됐다고 말해야겠다. 다행히 그 과정을 통해 예전만큼 자주, 오랜 시간 동안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혼란한 감정 속에 빠져있지는 않게 됐다.
다시 그런 감정이 찾아와도 (지금까지의 관찰에 의하면) 길면 하루 만에 회복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참 괴롭기도 했지만 감사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만약 내가 현존수업(명상)이란 걸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 채, 예전과 똑같이, 그런 감정에 짓눌려 살았을 걸 생각하니 진심으로 천만다행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점점 부정적 생각과 감정을 덜 하게 되고, 아무리 지금 상황이 '객관적으로' 별로라고 해도, 이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 그저 앉아 있을 수 있다. 잠시 중심을 잃어도 다시 내 책장의 어떤 책이라도 읽으면, 명상을 하면,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정말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꽤 많이 변화한 것 같다. 지금도 더 나아지는 과정에 있다. 그렇게 해서 언젠가 완전한 자유롭고 싶다. 그때도 내가 정말 모든 걸 알았다고 여길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면서 말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현존수업은 내가 새로 깔아 둔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단계. 뭐,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현존수업 6회 차, 7회 차... 10회 차의 나는 어떨까? 내년에 더 성장해 있을 내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