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느린 손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번 해방감을 맛본 손은 이제 더는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의 일들로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선언이라도 할 태세였다. 하루 종일 바느질만 하고 싶다는 손을 간신히 달래 일을 하고 끼니를 차려 먹으며 골똘히 생각했다. 도시락 파우치 세트를 만들 수 있다면 다른 많은 것들도 만들 수 있다. 어쩌면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선 재봉틀부터 사기로 했다.
재봉틀은 그때까지 가까이에서 본 적이 별로 없는 물건이었다. 대학 시절 학교 앞 골목에 콕콕 박혀 있었던 수선집들에서도 눈여겨본 기억이 없었다. 10대 때 얼마 동안 집에 재봉틀이 있었지만 평소에는 어딘가 깊숙한 곳에 들어가 있다가 큰이모가 오실 때에만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재봉틀 다루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뭔가 꿰맬 것이 있으면 손바느질을 하셨다. 중 3 때부터 독서실에 다녔던 나는 몇 년 동안 우리집에 있었던 재봉틀을 겨우 두세 차례 봤을 뿐이다. 그때까지 내 기억 속의 재봉틀은 광택 있는 까만 호리병 몸체에 금박 장식이 있는 우아한 기계였다. 네 살 때 외갓집에서 본 재봉틀에 대한 기억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데서 본 이미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전적인 기계의 온갖 매력을 갖춘 내 상상 속 재봉틀과는 달리 엄마의 재봉틀은 회색인지 베이지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하튼 칙칙한 플라스틱으로 대충 만들어진 터무니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조금 일찍 돌아온 어느 날, 그 둔탁한 덩어리가 교자상 위에 놓여 있는 걸 처음 보았다. 엄마와 큰이모는 잠시 부엌에 가 계시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그 육중한 물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도무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알 수 없었다. 내 눈이 수직으로 달려 있는 바늘을 분별해낸 다음에야 어쩌면 그것이 재봉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비로소 옆에 펼쳐져 있었던 누비천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이것이 재봉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깨달음이 들이닥쳤다. 내가 느낀 충격은 결코 적지 않았다.
재봉틀을 사기로 마음먹은 날, 숨을 고르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천만다행으로 최근에 나온 제품들은 그때 나를 경악하게 했던 문제의 기계보다는 훨씬 나은 외모들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인터넷으로 조사를 한 끝에 20만 원대의 깜찍한 민트색 제품을 선택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3년 할부로 내 소유의 차를 샀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자동차에 (남들 몰래) 알료샤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처럼 재봉틀에게도 치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차 고사를 지냈던 데 반해 재봉틀 고사를 지내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페달을 밟아 본 느낌은 차선을 지키려고 애쓰며 조심스레 액셀을 밟던 초보 운전의 느낌과 비슷했다. 페달로 속도를 조절한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나에게 그 두 가지는 모두 자유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었고 흥분감을 자아냈다. 약간의 떨림, 초보자이기에 필요했던 상당히 강한 정도의 주의력과 집중력, 그리고 긴장의 지속 후에 오는 가벼운 피로감까지.
하지만 알료샤와 달리 치코의 존재는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이었다.
“얘, 작년에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혜수 결혼식에 갔잖니. 피로연에서 혜수 시누이 될 사람을 만났는데, 양말을, 양말을, 세상에, 지독히도 예쁜 양말을 수없이 떠 가지고 와서 친척들에게 선물로 나눠주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처음 보는 저에게 이렇게 예쁜 양말을 주시니 감사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예쁘신데 밖에 나가서 친구분들도 만나시고 좋은 데도 가셔야죠.’ 깜짝 놀라더니 내 손을 붙들고서 한참을 얘기하더라.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는. 3년 전에 이혼을 했댄다. 그러고 나서 우울증이 와서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서 뜨개질만 해가지고 살이 그렇게 찐 거라더라.”
언젠가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다. 이제 막 지극히 멀고 헐거운 인척 관계로 맺어진 초면의 외국인에게 첫 대면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뼈 때리는 조언을 날리는 어머니의 오지랖에 다시금 놀라면서도, 묘하게 기분 나쁜 그 스토리텔링의 구조에 묘하게 수긍이 갔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그리하여 처음부터 ⟪느린 손 프로젝트⟫는 이중의 경계심과 함께 출발했다. 스스로를 손작업에 갇히게 하지 않겠다는 경계심,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드러내 놓지 않겠다는 경계심.
1인 가구 생활자인 나에게 이 프로젝트를 비밀에 부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흥분감을 발산하고 싶은 욕구를 조금 참기만 한다면 말이다. 어쨌든 한 명의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비밀이었던 탓에 곧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욕구를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친구를 괴롭힘과 동시에 그것만으로 모자라 온라인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활발해 보이는 바느질 커뮤니티에는 모두 가입했다.
우선 결정을 해야 했다. 가장 고민되는 문제—수업을 들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사람들의 댓글을 꼼꼼히 읽으며 조사했다.
기본적인 걸 배우는 데에는 좋지만 어느 정도 배운 다음에는 어차피 혼자서 해야 돼요.
체계적으로 빠르게 배우려면 강좌를 듣는 것이 좋아요. 단, 좋은 선생님을 찾아야 해요.
원단을 가져가서 만들 수가 없고 재료비를 내고 사야 해요. 그런데 원단이 안 예쁘더라고요. 더 비싸게 파는 경우도 있어요.
강사님이 너무 무서웠어요. "다 뜯어!" …….
거기가 이마트 정류장에서 가까워요. 제가 거기 3개월 다녔어요. 아, 그런데, 도대체가, …… 제가 그거 물어봤거든요. 치마 뒤트임 할 때 공그르기 안 하고 꼬아서 박은 다음 뒤집는 거 어떻게 하는 거냐고요. 그랬더니, 글쎄, 그건 커리큘럼에 포함되지 않는 거니까 알고 싶으면 돈을 더 내래요. 10만 원을요! 3-4만 원도 아니고 10만 원을요! 거기서 가르쳐주는 건 이미 다 아는 거고, 고급 스킬을 배우고 싶어서 등록한 건데…….
무조건 기초반부터 듣게 되어 있어요. 기초반은 직선 박기 연습부터 하는 반이에요. 이미 좀 할 줄 알더라도 초급반이나 중급반으로 바로 들어갈 수 없어요. 다른 데서 배웠더라도 안 돼요.
만족스러운 재봉틀 강좌를 발견하기란 상당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리듬을 조절하는 수고를 하면서 다니고 싶은 그럴듯해 보이는 강좌를 가까운 데서 발견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나에게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의무도 없었다.
세미나의 커리큘럼을 짜고 강의계획서를 작성하는 몸에 밴 습관대로 서서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스프링 노트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가며 일회성 노트를 했지만, 곧 노트 앱을 사용해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책,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를 참고해 만들 것들을 선택하고 순서를 잡았다. 작업의 난이도, 결과물이 가진 유용성, 중요한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 재료 확보의 용이성, 참고자료의 접근성을 기준으로 계획을 짰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노트 앱에 메모하고 링크를 넣고 스크랩하고 분류했다.
재봉틀을 사고 나서 2주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재봉틀용 청소솔로 새삼스레 키보드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떨어냈다. 키보드는 자연스레 ⟪느린 손 프로젝트⟫의 주요 기자재가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