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틀을 교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매끄럽고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실상은 완전히 그 반대였다. 우선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부터가 애매했다. 간신히 자리를 마련했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새 재봉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다음이었다. 2018년 1월 말 구입 직후에는 밀린 일이 많아 그 앞에 차분히 앉을 수가 없었고, 머지않아 긴 공백이 시작되었다.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닥친 재난에 대해 언급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그것이 단지 이야기의 배경에 불과할 때, 그로 인한 상실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나치듯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잠깐이라도 애도를 표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어떤 말로도 충분하지가 않은데? 그렇다면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일까? 예를 들어 몇 개월 전에 대규모 산불을 겪은 어떤 지역의 로컬 비즈니스 현황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조사자가 있다고 치자. 재해가 할퀴고 간 흔적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보고서를 피상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신뢰도가 확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뭐, 국내고 해외고 간에 2020년부터 올해까지 제작된 드라마에서 배경에 코로나19를 삽입한 걸 하나도 못 보기는 했다. 하지만 분명 현재 이야기인데 주인공들이 마스크도 안 쓰고 활보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소격효과가 일어나더라. 어쨌든 그거야 픽션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이 글에서 내가 그 시기에 대해 쓰면서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굳이 이 글의 주제와 그 일의 관련성을 캐 들어가거나 의미를 찾아야 할까? 그래 봤자 서투르고 섣부른 감상주의가 되거나 쓸데없는 운명론으로 빠질 뿐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이렇게 요약하고자 한다. 그 시기에 나는 비일상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고,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해야 했다. 다행히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니,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응급실과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밤을 지새웠고, 입원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잤고, 구급차의 행선지를 따라 밤 운전을 했고, 규칙적으로 요양병원을 방문했고, 장례식장에서 며칠을 보냈다.
며칠이고 병원에서 지내다가 옷가지를 챙기러 잠시 집에 들르는 나날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한참만에 집에 왔는데, 커다란 구형의 묵직한 검은 물체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언뜻 보아 커다란 타조알처럼 생겼으나 분명 자연물은 아니었다. 어쨌든 타조든 시조새든 굳이 거기 와서 알을 낳았을 리 없다! 그것은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배송 신청을 해놓고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던 택배였다. 검은 비닐로 꽁꽁 싸서 보내주는 까닭에 압축된 커다란 구의 형태를 띤, 그래서 온라인에서 ‘공룡알’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원단 택배였다. 그게 대체 몇 날 몇 일 동안 거기 놓여 있었던 것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내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는 실감이 나서 가슴이 아팠고, 뒤이어, 바느질이라는 취미는 평화로운 일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그런 생각을 떨쳐내 버렸다. 퇴근 시간의 정체를 만나지 않으려면 재빨리 짐을 싸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재봉이든 또 다른 분야든 취미에 시간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그저 속 편해서 그런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나에게는 바느질을 시작한 이래 적지 않은 굵직한 일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도 하나 있다. 그런 사정은 내 운명이 특별해서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막무가내로 취미 생활을 계속하는 별종이어서도 아니다. 몇 년 동안 지켜본 바느질 커뮤니티의 지인들도 비슷한 리듬을 반복하더라. 멈춤은 우리가 지속이라고 부르는 것의 필연적이고 실체적인 구성 요소다.
DIY 드레스메이커에게 일어나는 멈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한 가지는 위에서 말한 내 경우처럼 뭔가 큰일이 닥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멈춤이다. 여기에는 농담의 여지가 없으나 오히려 사태의 성격은 분명하다. 두 번째 유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스스로 명확한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바느질에 손과 마음이 가지 않는 상태로, 전문용어로는 ‘봉태기’라 한다. 이 유형이 복잡한 이유는 봉태기를 맞은 당사자의 마음이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해야 하는데, 혹은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다. 분석해 보면 다종 다양한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정답은 없으며, 그 분석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다. 이 상태는 또 다른 전문용어인 ‘봉신’과 화용론적으로 대비된다. ‘봉신이 내리다’, ‘봉신이 오다’, ‘집 나간 봉신’이라는 표현으로 활용된다. 봉신이 내리거나 오거나 나가는 이유 또한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멈춤과 지속의 변증법은 그저 오리무중일 뿐이다.
멈춤이 영영 멈추지 않는 경우에는 결단이 오래 걸릴 수는 있겠지만 재봉틀을 팔아버리거나 작업대를 치워버리면 그만인데, 문제는 멈춤을 멈추고 손작업을 다시 시작할 때 발견된다. 고생하며 약간의 숙련을 이룩했었는데 그게 초기화되어버렸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의고적으로 말하면 ‘도루묵이 되었다’ 고도 하고, 좀 더 그윽한 표현으로는 ‘손이 식었다’ 고도 한다. 어쨌든 손기술이라는 것은 집중적으로 수행할 때는 가속도가 붙고, 오래 쉬면 휘발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다행인 것은, 완전히 날아가버린 것처럼 보였더라도 촘촘하게 다시 실행하면 빠르게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2화에서 썼듯이 나의 집에서 키보드는 이미 재봉틀과 협약을 맺은 한통속이자, 청소솔을 공유하기도 하는 내밀한 관계였으므로, 나는 곧바로 키보드에게 달려가 구조 요청을 했다. 열심히 노트해 놓은 전년도의 기록들이 그처럼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그리고 이때부터는 보통의 손기술자라면 손으로 기억해야 할 모든 소소한 스킬과 주의점들까지도 일일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력을 믿을 수 없기도 했지만 내 앞에 놓인 한 치 앞의 상황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메모 습관은 곧 일과 생활의 모든 범위로 확대되었다.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일을 한 다음 밤에 재봉을 할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주경야봉’을 선언한다 해도 작심삼일이 될 것이 뻔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지난 12월 말부터 1월 중순까지는 맘먹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열봉 모드로 지냈더니 즐겁긴 했지만 그건 오래갈 수 없는 천국이었어요. 지난 주부터 서서히 열봉 모드에서 열일 모드로 바꾸었지만 재봉을 완전히 중단하면 너무 삭막해지므로, 작업이 끊기지 않게 틈틈이 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사실 좀 어려운데, 뭐든 만들기 시작하면 빨리 끝을 보고 싶어 멈추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예 손을 놓거나 아니면 몰입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지간히 바쁜 게 아니라면 손을 놓는 건 피하고 싶기 때문에 주경야봉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 중입니다.
이 글의 제목을 "주경야봉의 나날들"이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건 그런 날들을 꾸준히 오랫동안 계속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라서 하는 수 없이 포기했어요. 어제 딱 하루 실천했을 뿐이거든요.
주경야독이든 주경야봉이든, 계획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낮 동안 일의 강도가 강해지면 저녁엔 피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의지력으로 꾸준히 해온 사람은 그 힘들었던 나날을 되돌아보며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 거죠. "주경야독으로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미래형으로, “1년 동안 주경야독으로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라고 한들 그다지 신뢰가 갈 것 같지 않군요. 그래서 처음에 이 글의 제목으로 생각한 "주경야봉을 시작하며"라는 두 번째 선택지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도무지 간지가 안 나잖아요.
(2021. 1. 26.)
돌아보니 열봉보다 멈춤이 더 길었던 것 같다. 바느질할 시간이 없는 시기에는 밤새 뭔가를 만드는 꿈을 꾸다가 눈을 뜨곤 했다. 에너지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식은 손을 다시 데우는 건 매번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주경야봉의 나날들”이라는 제목을 결코 붙일 수 없는, 끝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희한한 분투기를 쓰기 시작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