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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씨드 Aug 01. 2022

판매자가 되다

1년쯤 바느질 도구 친구들과 함께 탐험을 계속했더니 차츰 내가 만든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보통은 줄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만들어 선물했지만, 미처 임자를 정하기도 전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붙들어 후다닥 만든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정성이 들어간 물건들이어서, 필요로 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판매가 답일 것 같았다. 일단 판매대에 올리면 원하지 않는 사람은 사 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판매자로 참가할 수 있는 지역 장터나 벼룩시장을 알아보던 중에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2018년 가을, 서울 은평구 ‘여성 1인 가구’ 프로젝트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지역 사회 기반의 참여자 주도형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그 연구 프로젝트는 이미 절반 이상 진행되어 있어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나 자신 은평구에 거주하는 1인 가구 여성이었기에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까운 곳에 사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예기치 못했던 유쾌한 행운이었다. 사업이 거의 마감되어가던 그해 11월에 연구 결과를 보고하고 후속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콘퍼런스가 열렸다. 나는 그 행사에 이중의 자격으로 참가했다. 토론장의 발제자로서, 그리고 ’N의 마켓’이라 이름 붙인 장터의 셀러로서.


내가 만든 물건들을 판매대에 올려놓고 팔게 되다니! 


토론 발제보다도, 난생처음 판매자가 된다는 사실이 더 흥분됐다. 전날 밤 발표문을 다시 한번 읽어본 다음, 스무 개 남짓한 소품을 골라 눈앞에 늘어놓았다. 이제 가격을 정해야 하는데 도대체 얼마를 매겨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 들어간 시간과 수고를 생각하면 몹시 비싼 값을 매겨야 하겠지만 그건 공론장과 커뮤니티의 형성을 제안하는 행사장의 성격에 어울리는 일이 아닐뿐더러 내가 원하는 바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날의 판매를 물건과 사람을 연결시켜줄 수단으로 생각했지, 이윤을 얻을 기회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소품 모두에 각각 3~4천 원가량의 가벼운 가격을 책정했다. 그 행사에 참여할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그동안 함께 일하고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한 이들에게 먼저 기회가 갔으면 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 친구들이 이 물건들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아마도 S씨는 이 초록색 도트 무늬 프레임 지갑에 끌리지 않을까? Y는 이 장지갑을 좋아하지 않을까? P씨는 이 안경집을, T씨는 이 빨간 꽃무늬 똑딱이 지갑을 원하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거듭해보고 있자니, 실은 나는 바로 그들에게 이 물건들을 선사하고 싶은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개코처럼 예민한 타인 취향 탐지 후각을 가졌다 자부해도 내 예상과는 달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원치 않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역시 가벼운 가격으로 판매대에 올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판매자로서 판매대 안쪽에 앉아 고객을 응대하는 일은 몹시 즐거웠다. 전날 밤 상상 속에서 이루어졌던 짝짓기는 거의 70%의 적중률을 보였다! 의외의 선택을 확인할 때마다 남몰래 놀라며 즐거워했음은 물론이다. 나의 타인 취향 탐지 데이터베이스에 소소한 수정 사항을 덧붙였음도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1시간이 채 못 되어 완판된 것보다도, 꼭 선물을 하고 싶었던 이들이 모두 내 물건을 한 가지 이상 샀다는 사실이었다. 


그날의 경험은 그 당시의 나에게는 모든 점에서 즐거운 경험으로 남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생각해보니 결정적인 잘못이 있었다. 다른 핸드메이더들을 고려할 때 낮은 가격 책정은 피해야 할 절대악이다. 가격 경쟁을 부추길 수 있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핸드메이드 제품은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반면에 합당한 가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고민이 필요하다. 그때의 나는 내 마음만 살피느라고 미처 다른 판매자들을 고려하지 못했다. 


만드는 사람들의 느슨한, 그러나 실제적인 연대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이지만 그날의 경험은 그러한 연망으로 나를 연결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한 가지는 내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한 1일 고객들의 요청으로 바느질 모임을 만든 것이다. 나는 1일 판매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격주에 1회 함께 손을 놀리는 작은 모임의 주도자가 되었다. 비록 몇 달 지나지 않아 해산했지만, 만드는 시간을 타인들과 공유한다는 것, 내가 습득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체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그때를 전후해서 소품 만들기를 차츰 접고 옷 만들기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다른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데에는 1일 판매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쌓여가던 소품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본 탓에 더 이상의 여한이 남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내 솜씨에 대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의 초입은 활기찬 따스함으로 또 다른 탐험의 숲을 내게 활짝 열어주고 있었다. 옷을 만들기 시작하자 유토피아의 시간에는 리듬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들어왔다. 변화, 활기, 고민거리, 수고로움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그 리듬의 정체는 바로 계절이었다.


2018년 봄부터 겨울까지 틈틈이 만든 소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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