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다뤄보는 인견은 과연 듣던 대로 쉽지 않았다. 재단은 마치 가볍게 요동치는 얇은 물결 한 장을 가위로 자르는 일과도 같았고, 재봉은 구비구비 펼쳐진 둥근 구릉 지형을 순간적으로 평면으로 만들었다가 다시 입체로 돌아가게 하는 일과도 같았다. 종잇장과 같은 평평함을 기대하며 이미 재단 전에 정성껏 다려줬건만, 인견은 다른 원단들과는 달리 다렸다고 해서 재봉이 그다지 쉬워지는 것도 아니어서, 생각 같아서는 뜨거운 호떡 누르개라도 사용해 꾸욱 눌러 납작하고 딱딱하게 눋게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런 폭력적인 처우를 당한 원단이 무사하길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답은 그저 재봉하는 순간 때를 맞춰 팽팽하게 잡아당기기일 듯하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잡아당기면 울렁거림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피할 수 없다.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 나의 유일한 고객인 어머니께서 인견 속바지를 주문하셨다. 그동안 입으시던 면 반바지의 고무 밴드를 교체해 드리려다가 결정한 일이었다. 10년도 넘은 그 반바지는 너무 낡아서, 고무 밴드를 교체한다고 될 일이 아니겠다는 판단을 내리고서 새로 만들어드리겠다고 했더니, 이왕이면 흰색 풍기인견으로 해 달라고 하셨다. 온라인 원단 가게에서 풍기인견을 검색해 그중에서도 시원해 보이는 얇은 것 2마와 조금 더 도톰하지만 오돌토돌한 질감 때문에 피부에 붙지 않을 것 같은 ‘꼰사 인견’ 3마를 주문했다.
여름 나기 옷감의 대명사인 인견을 처음으로 다루면서 나는 제대로 여름을 맞고 있었다.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다 못해 급기야 부릅뜬 눈을 공격하고 있었고, 엉덩이는 차츰 축축하게 젖어들어 곧 땀띠가 돋아날 것만 같았다. 그렇다. 여름은 재봉하기에 가장 힘든 계절이다. 추운 겨울조차도 상당히 괜찮은데, 그것은 다림질이 몸을 데워주기 때문이다. 여름은……, 여름에도 다림질은 몸을 데워준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지 않는 이상 옷 만드는 이는 유사 지옥을 체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옷 만들기에서 다림질이 봉제만큼이나 중요하고 높은 빈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일상복 두세 벌을 동시에 만든다고 할 때 거기 들어가는 시간은 재단이 1/3, 봉제가 1/3, 다림질이 1/3일 것이다. 후끈한 다리미 열기 때문에 어지간히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아도 몸이 더워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선풍기를 틀었다가는 재단물이 펄럭거리고 실오라기가 날아다니고 재봉방에 필연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미세 먼지가 회오리를 일으키는 야단법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므로 선풍기도 사용할 수 없다.
여기서 나는 ‘설상가상으로’, 라고 쓰려다가 일단 멈춘다. 눈(雪) 위에(上) 서리(霜)가 덮인다면(加) 여름에는 오히려 환영할 일일 테니까. 자, 자, 다른 표현을 찾아보자. 여름 재봉의 ‘크리’는 더위라는 ‘엎친 데’에 여름 나기 옷이라는 ‘덮친 데’가 환상의 ‘첩첩산중’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여름옷의 재료는 대체로 얇고 섬세하고 너울거려서 재단과 재봉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시폰, 레이온, 인견은 아무리 신중하게 재단해도 모양이 틀어지게 잘리기 일쑤고, 아무리 세심하게 재봉해도 ‘퍼커링’이라고 하는, 봉제선이 우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정성껏 당겨가며 박았는데 완성된 재봉물에서 울렁울렁 울고 있는 봉제선을 보면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렇다고 봉제 시에 옷감을 적절하게 팽팽히 잡아주지 않으면 흔히 ‘씹힌다’고 하는 일이 일어나 원단이 재봉틀의 바늘 구멍에 구깃구깃 뭉쳐 처박혀버리는데, 이때 무리하게 끄집어내다가는 연약한 원단이 찢어져 완성도 되기 전에 누더기를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런 종류의 원단들은 다림질 온도를 높일 수 없어 봉제 후 시접을 납작하게 눕히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면 자연히 다림질 시간은 길어지고 바느질꾼은 그만큼 더위에 시달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림질을 최소화하고 여름 나기 반바지를 만들기로 했다. 그 비법은, 봉합 후 다리미를 대지 않고 시접을 단단히 넘겨 손으로 쓸어주면서 시접 위에 한 줄을 더 박아 눌러주는 데 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림질을 전혀 하지 않고도 제대로 모양이 잡힌 반바지들을 줄줄이 줄줄이 뽑아냈다.
지금보다 소심했던 그때의 나는 여름에도 에어컨을 팡팡 틀지 못하고 혹서와 싸우며 그 옷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얻은 것이 있었으니, 재봉 실력과 요령이 늘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와 함께,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긴장을 푸는 법을 터득했다. 열심히 하는 마음으로 박든, 대충 하는 마음으로 박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잘하려고 긴장 타 봤자 나오는 결과물은 백 퍼센트 정직하게 그동안 내가 쌓은 실력을 반영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으로 일하든 나오는 것은 내 경험치와 숙련도 이상을 능가할 수 없다! 최대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할 것들을 하면 내 실력의 최대치가 나오는 것이다. 열렬한 열심으로 열기를 뿜어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더 안 될 것도 없다. 그리고 이왕이면 열기를 뿜지 않고 시원하게 일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
그 해 여름,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최선을 다하는 노하우를 마스터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옷 만들기뿐 아니라 생업과 생활의 모든 면에서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해나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열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