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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리 Oct 26. 2022

우울증 집사와 강아지의 엉망진창 동거

나와 너무도 닮아있기에 눈길을 멈출 수 없다.

옷을 입히고 놀렸더니 심기가 불편해졌다.

네 성격은 꽤나 성질 맞고 괴팍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자기주장 역시 얼마나 강하고 고집도 센지, 아무리 내가 안 된다 말해도 굽히거나 질 줄 모른다.

가끔은 네 성격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한순간도 네게서 관심을 거둬가면 무슨 일이라도 나는 듯 군다.

내게서 사생활이 없어진 건 너를 만나고부터다.


밤에 화장실도 따라와서는 졸리다고 하품을 한다.

나는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이 난다.

내 나이 12살에 집에서 나가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려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비밀 공간을 만들어 일기장이나 물건을 보관하고 커서는 책상 서랍에 직접 드릴로 자물쇠를 달았다.

방문에도 자물쇠를 달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20살이 되어서는 도망치듯 자취를 시작했고 휴학을 했을 때는 쫓기듯 외국으로 나가버렸다.


열심히 도망다니던 시절은 여권에 찍혀있다.

가족이 내 방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고 내 물건을 만지거나 무언가 공유해야 한다는 건 더욱 싫었다.

관심을 넘어선 참견과 간섭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 결과로 진정 미쳐버린 나는 병원에 다니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5년을 숨겼다.


타인의 규칙에서 벗어난 나는 이제 자신의 규칙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유와 안정에 갈증 하던 내 삶은 강박과 결벽을 가지고 싹 하나 틔울 수 없는 황무지라도 지켜보려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 역시 황무지 위에 서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채워놔도 뒤돌아서면 말라버리는 존재가 너였다.

너를 관찰하다 보니 너에게서 나를 보았다.

싹싹한 듯 굴지만, 지극히 까다롭고 예민하며 무엇보다 잔잔히도 여린 존재.

마음을 준 상대에게만 보이는 감춰놓은 성격 하며, 영역을 침범당했을 때 보이는 소유욕.


너는 분명 나와 다른 존재인 것을, 왜 너에게서 내가 보이는 건지.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너는 나를 채워줄 수 없다.

그래서 더욱이 내 삶을 너에게 바칠 수밖에 없었다.

네 성격과 기질이 너무 나와 같아서,

내가 채워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나는 지독히 이렇게 성장해야만 겨우 숨 쉴 수 있었는데, 너는 무엇이 그토록 괴로웠길래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사실 나는 개인주의적인 성격 이면에 극진히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날 숨겨놓았었다.

나라도 날 사랑해줘야 하지만, 나에게조차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었다.

네게도 널 사랑하고 아낄 힘이 없었던 것일까 무서워 나는 곱절 너를 사랑해주었다.


밥 더 달라고 밥그릇을 엎어버리는 중이다.

그렇게 사랑받고 자란 너는 지금 꽤나 제멋대로 구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는 차라리 성가신 네가 좋다.

더는 네가 나처럼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네 주장을 굽힐 줄 모르는 고집에 내 복장은 터지지만, 나는 지금의 네가, 그리고 앞으로의 네가 더 사랑스럽다.




같이 태어난 형제들은 이미 어린 시기에 다른 가족들을 만났고 전 보호자는 백설이가 유독 예뻐 보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백설이는 1살 때까지 보호자와 부모견과 살았다.

아무리 부모견과 함께였어도 백설이에게는 사람이 주는 애정이 더 고파 부모견에게도 질투를 했다고 한다.


백설이가 가진 애정의 그릇은 너무 깊고 컸던 것이다.

나 역시 백설이와 다를 게 없다.

내가 가진, 그래서 그만큼 받아야만 충족되는 애정의 그릇이 너무 커서, 나는 사랑받았지만 사랑받지 못했다.

그래서 삶의 목표는 더욱 사랑받는 거였지만, 그건 올바른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었다.


나와 닮은 존재가 또 존재한다는 건 퍽 끔찍한 일이다.

아무리 애써도 갈증만 느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삶을 사는 존재.

가엾고도 역겨운 내가 어디선가 또 있다는 게 불쌍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니, 나는 백설이의 모든 모습을 사랑해주길 택했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정도의 사랑을, 내가 꿈꾸던 사랑을, 나는 백설이를 사랑하며 과거의 나를 만족시키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꽤 많은 것들을 뺏겼고 결과는 처참했다.

내 시간, 생활, 아끼는 것들 모두 백설이가 망쳐놔도 그저 나는 사랑해줄 뿐, 그 외의 방법은 알지 못한다.

과거의 나는 그저 사랑받길 원했던 거였으니.


백설이의 전 보호자가 백설이에게 간식을 많이 주면 밥을 안 먹는다는 말을 해줬던 기억이 난다.

백설이는 당연히 밥보다 간식을 더 좋아하지만, 밥을 안 먹지 않는다.

산책 갔다 오고 놀며 에너지를 쏙 빼놔주면, 제아무리 간식을 많이 먹었다고 한들 밥도 잘 먹는다.


백설이는 그저 사랑과 관심이 고팠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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